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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ine Yes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10-14 (월) 08:47 조회 : 82
설교일 : 2019.10.13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창세기 13:1-13

Divine Yes

창세기 13:1~13

 

아브라함 시리즈2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던 하란 사람 아브람이 가나안 사람 아브라함이 되었을까?”

지난 주에 아브람의 삶에 세 가지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나누었습니다.

1)    말씀 하나님의 음성

2)    떠남 하나님의 모략

3)    예배 기억과 기념

세 가지가 일어날 때, 아브람은 하란 사람에서 가나안 사람으로 살기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나눈 세 가지를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아멘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멘, 하나님의 모략에 아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아멘입니다. 아멘하는 능력이란 하나님을 긍정함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그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75세에 말씀에 아멘하고, 떠나라는 모략에 아멘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아멘하면서 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람을 하란 사람이 아니라 가나안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신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긍정함이 아닙니까? 아브람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것이고 그것이 결국 하란 사람 아브람을 가나안 사람 아브라함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1장에 무슨 이야기가 나옵니까? 다니엘이 하나님을 긍정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바벨론까지 끌려갔습니다. 황제의 성적 노예로 선발되어서 다니엘은 바벨론의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그 음식을 거부합니다. 음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이 긍정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버리지 않으실거야!’라는 긍정입니다. 환경이 상황이 사람들이 모두 다니엘에게 이야기 하는 소리가 있지만 다니엘은 하나님을 긍정합니다. 다니엘에게 하나님을 긍정하는 일이 일어나자 하나님은 멸망을 당해 바벨론으로 끌려간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로서 나라를 다스립니다.

하나님을 긍정함이 이런 것입니다. Divine Yes입니다. 상황이 좋고 환경이 좋고 사람이 좋아서 하는 yes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가나안 사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말씀도 바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왔지만 가뭄이 들자 아브람은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내를 누이로 속일 수 밖에 없었던 삶의 고난에서 아브람은 오히려 하나님의 개입으로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신 역전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경험 후에 아브람에게 롯과의 사이에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아브람과 조카 롯의 재산이 많아지자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생긴 것입니다. 하란 땅에서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조카 롯과의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난 것입니다.

 

Divine yes하면서 하나님만 긍정하며 살기를 원하지만 삶이 우리를 그렇게만 내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사람과의 갈등, 환경의 문제, 상황의 고난이 우리들의 삶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삶의 한 가운데서 다시금 도전을 받습니다. 과연 정말로 하나님을 긍정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삶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래서 하란 사람이 가나안 사람이 되는 것은 한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시간 동안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하나님을 긍정하며 살아갈지를 결단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브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람의 모습을 통해서 divine yes를 배워봅니다.

1.    사람들의 소리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아브람에게 일어난 문제 가운데서 아브람이 가장 먼저 듣게 된 소리는 사람들의 소리입니다. 목자들의 불평과 모함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어떤 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지난 주간 신명기 4장을 큐티하면서 두 가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1)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되 가감하지 말라는 음성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가감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규레와 명령을 들었을 때 내 뜻대로 내 상황대로 해석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래 말씀하신 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가감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다는 것입니까? 우리의 성향과 죄성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기보다 내 뜻대로 해석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제가 목회하면서 보니하나님의 규레와 명령을 내 뜻대로 해석하는 사람은 사실 그 해석조차도 따르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생각에 옳은 해석만 할뿐 내려놓음도 순종도 헌신도 기도의 자리에도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규레와 명령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가감없이 지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나의 견해와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면서 오히려 순종합니다. 오히려 내려놓습니다. 하란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차이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느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2)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우상을 만들거나 숭배하는 것을 싫어하실까요? 우상을 만들지도 말라고 하셨는데사실 아브람은 우상장수의 아들이 아닙니까?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은 단순히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 속으로 들어오시고 말씀하시며 만지시고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들과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죽은 하나님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런 신앙은 버리고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교제는 사라지고 만남도 역사도 없는 죽은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단순히 우상을 숭배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살아있는 신앙을 죽은 신앙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시는 뜻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이 음성을 큐티 중에 들었을 때저는 나의 하나님이 이곳 디트로이트에 올 때 기도 중에 주셨던 말씀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이사야 43:19)라는 말씀입니다.

 

    이 음성이 다시 제게 일어나자 저에게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리를 이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이곳에 보내신 사명을 다시금 생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란 사람, 사람들의 소리에 이끌리던 사람이 가나안 사람, 하나님의 소리에 이끌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기 목자들의 불평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소리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따라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무엇을 따라간다고 하는 것이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들을 만들어 냅니까?

 

29장에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라헬의 미모에 반합니다. 말씀이 없어서 자신의 눈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던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무려 14년의 시간을 외삼촌의 집에서 종으로 지냅니다. 따라감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소리는 사람들을 따라가게 하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의 소리는 환경을 따라가게 하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의 소리는 상황을 따라가게. 하는 소리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서 분별되기 시작할 때 여러분은 하란 사람이 아니라 가나안 사람으로 살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2.    나의 소리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아브람은 목자들의 소리를 듣고서 조카 롯을 부릅니다. 그리고 롯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할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지 말자”(8) 아브람은 사람들의 소리를 듣지 않고 멈춥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멈추는 것입니다. 환경과 사람에게 이끌려 가던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왜 멈춤이 중요합니까? 우리가 멈추어야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멈춤이 신앙입니다.

 

< 멈춤이 없는 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상처가 멈추지 않습니다. 분노가 멈추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들을 봅니다. 절망이 멈추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멈추지 않으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위해 일하실 수 없습니다. >

 

그러면서 아브람은 롯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는 말입니다.

멈추면 방향이 보이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사람들의 소리를 따라 가지 않고 멈추자 아브람은 방향이 보입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어떻게 해야할 지가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그런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서 멈추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럴 때 우리 안의 하란 사람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지어주시는 가나안 사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하란 사람 아브람에겐 없고 가나안 사람 아브람에게 있는 것 바로 이것입니다. 그 전에는 멈출 줄도 모르고 하나님이 주시는 방향도 없었는데 이제는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Divine yes입니다.

하나님을 긍정하자 사람들의 소리에도 끌려가지 않고 멈출 수가 있고 눈을 들어 새로운 곳을 바라 볼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조카 롯은 아브람의 말을 듣자마자 세 가지의 모습을 보입니다.

1)    눈을 들어

2)    보기에 좋은 땅을

3)    자신을 위해서 선택한다.

 

롯은 왜 이러한 행동을 합니까?

집안 어른인 아브람에게 의견도 묻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보기에 좋은 요단 동편을 얼른 선택하는 롯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나의 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나의 소리는 사람들의 소리보다 더 무서운 소리입니다. 나의 소리는 욕망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내 필요와 욕구대로 보이는 것을 따라가는 소리입니다. 내 소원대로 되는 것이 제일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런 기도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아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롯의 이러한 선택의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롯이 선택한 곳은 바로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좋고 화려한 곳이었지만 그곳은 세상 문화만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롯은 거기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나 자신의 소리를 따라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사람의 모습이 되어 버립니다. 롯이 조금만 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그는 눈을 들어 세세히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자신이 선택하려는 땅의 외모가 아니라 그 땅에 사는 거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소리를 분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소리를 따라가는 롯에게는 멈춤도 없고 방향도 잘못됩니다. 하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믿음 생활을 하고 가나안 사람이 되는 것은 내가 보기에 좋은 곳을 원하고 바라는 나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의 소리를 찾아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Divine yes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소리를 따라갑니다.

 

16장을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주님이 말씀하시기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고 하십니다. 너에게서 소리가 나왔으나 그 소리는 너에게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란 뜻입니다. 분명 베드로가 말했지만 주님은 그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라고 해 주십니다. 베드로에게서 하늘의 소리, 하나님의 소리가 일어났다고 칭찬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소리는 신령한 음성이 아닙니다. 우리의 귀에다

대고 말씀하시는 어떤 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리란 믿음의 소리입니다.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있어 그 믿음을 가지고 소리를 낼 때 그 소리를 하나님의 소리라고 해주시는 것입니다.

 

Divine yes의 소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의 소리를 들으시고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음부의 권세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권세가 아닙니까?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긍정하는 소리, 믿음의 소리, divine yes의 소리가 일어나면 그것은 세상 권세도 이길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소리라고 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람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고 말을 합니다. 믿음의소리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갈 때 어리석은 자기의 지혜를 꺽으시고 아브람을 살리신 하나님을 경험하고서 나온 믿음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성품이 좋고 사랑이 많아서 조카 롯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알려주신 믿음의 소리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란 사람인 우리들이, 즉 믿음의 소리가 하나도 없던 우리들이 가나안 사람의 소리, 즉 믿음의 소리는 내는 것입니다.믿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어떤 소리가 있습니까? 사람들의 소리입니까? 나의 소리입니까? 하나님의 소리입니까? 믿음의 소리 하나님의 소리가 왜 중요한지 아십니까? 우리에게서 그런 소리가 나오면 우리들의 삶에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체험해 본 적이 없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면 먼저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소리가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소리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말씀 1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이 나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는 영원히 이르리라

 

하나님이 롯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아브람에게만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브람이 하나님의 소리를 만났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소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주시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리가 우리에게서 일어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하나님이 주신 소리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소리에 응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믿어지십니까? 그래서 제가 아브람 시리즈 설교를 통해 여러분께 그런 말씀을드리는 것입니다. 하란 사람 아브람이 있고, 가나안 사람 아브라함이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 안에 두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하란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까? 가나안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여러분을 돌아보셨습니까? 여러분 안의 소리들을 돌아보셨습니까? 하나님을 긍정하는 divine yes의 소리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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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Rev. Eung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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