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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10-07 (월) 10:40 조회 : 95
설교일 : 2019.10.06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창세기 12:1-9

아브라함 시리즈 설교 1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창세기12:1~9

 

우리는 1월에 창세기 말씀을 큐티했었습니다. 아브람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1)   아브람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2)   아브람의 이야기는 하란 사람 아브람을 가나안 사람 아브라함을 만드시는 이야기입니다.

 

하란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하란은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우상 장수를 하면서 살던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땅, 말씀이 들리지 않던 땅을 말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부르시기까지 그런 하란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가나안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아브람을 가나안으로 가나안 사람으로 부르십니다.

 

가나안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가나안 사람은 가나안이라는 지역에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하는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미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부자에게는 없고 나사로에게는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이름입니다. 왜 부자에게는 없고 나사로에게는 있을까요? 부자는 하나님께 의미가 없는 인생이고 나사로는 비록 거지로 살았지만 하나님께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목회하던 교회에 네팔에서 NGO활동을 하던 권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어느 날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네팔에는 히말라야 산맥이 있고 8천미터 이상의 산들이 많다고 합니다. 안나푸르나와 같은 대표적인 산들이 있다. 그래서 네팔에서는 6천미터가 안되는 산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답니다. 3 4백미터가 되는 산도 산이 아니라 ‘힐’, 언덕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너무 흔해서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강이 너무 귀해서 사철 물만 계속해서 흐르면 강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유명한 요단강도 건기에는 폭이 1m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이 흔한 나라에서는 강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도 이스라엘에 가면 강이 된다는 것입니다.

 

의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람이란 하란 사람을 하나님과 관계하는 의미 있는 인생으로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부르시는 가나안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아브람의 이야기가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1. 말씀입니다.

 

하란 사람 아브람이 가나안 사람이 되는 방법은 바로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난 1월부터 창세기 큐티를 했었는데 아브람의 이야기를 읽다가 보니 아브람의 이야기 속에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브람이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이야기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1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을 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가나안 사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출현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읽으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는 장면이 나오는 데, 아담을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 흙으로 형상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아담이란 흙에 생기, 즉 영이 들어간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흙만 있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란 것입니다. 생기, 영이 있어야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living soul)이 된지라’ ‘생령’, 즉 살아있는 영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란 영이 살아있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과 함께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영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말씀이 사라진 것입니다. 말씀 없는 백성, 즉 하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란 사람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람을 통해서 다시 시작하시려는 새 창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을 만드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아브람은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와 우상을 만들어서 팔던 사람, 즉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말씀이 들리니까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람은 말씀을 따라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납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입니까? 미국에 와서 살면서 우리가 늘 느끼는 감정이 있습니다. ‘불안함입니다. ‘불안함은 과연 이곳이 우리에게 영원한 땅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일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이곳에 왔지만 만약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얼마나 불안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창세기에서 아브람의 인생을 읽으면서 그의 모습 속에서 두 가지를 발견합니다.

1)   말씀을 듣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2)   말씀 없이 자기가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람도 말씀을 따라서 가나안까지 왔지만 그에게서 말씀이 사라질 때 그는 다시금 하란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아내도 잃어버리고 이스라엘도 낳는 실수를 하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그에게 말씀이 살아있는 가나안 사람의 모습 일 때는 소돔과 고모라까지 가서 조카 롯을 구해오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란 사람입니까? 가나안 사람입니까? 말씀이 들리고 그 말씀을 따르고 말씀의 역사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말씀없이 여러분의 계획과 판단과 지식으로 일하고 계십니까?

 

 

2. 떠남입니다.

 

   아브람의 이야기를 정확히 읽었다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부르심과 아브람의 계속된 실패라는 점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만난 사람, 그런데 그 사람이 자꾸만 실패합니다. 왜입니까?

 

Calling이란 단어를 아시지요? 부르심이라는 단어입니다. 특별히 이 단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뜻할 때 사용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서 1학년 때 전교생 수련회를 갔는데 거기서 저녁 때 한 사람씩 자신의 calling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그 시간이 참 놀라운 시간이었습니다. 나만 calling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도 많은 신학생들도 하나님의 calling을 받았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12 10절부터의 말씀을 보면 아브람이 가나안에 흉년이 들자 가나안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나안에 와서 가나안 사람의 삶을 시작했지만 흉년이 들자 아브람은 말씀도 없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하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브람은 언약의 후손을 낳을 아내를 잃어버릴 뻔 하였습니다.

 

말씀이 사라진 아브람의 삶의 위기는 한 번만이 아닙니다. 아브람의 이야기 속에 말씀이 없어서 일어나는 위기가 계속됩니다. 이런 아브람을 가지고는 하나님께서도 가나안 사람을 만드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셔야겠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과 아브람의 실패! 하나님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시느냐는 것입니다.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란 사람 아브람을 가나안 사람으로 만드셨는 지에 대한 비밀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떠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실패할 때마다 나타나셔서 떠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의 이야기에는 수많은 떠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도 아브람의 떠남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떠나라고 하십니다. 왜 정들고 익숙하고 친구가 있는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이것은 장소적 의미가 아닙니다. 단순히 이곳에서 떠나서 저리로 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2 10절 하반절을 다시 봅시다. 하나님의 계획과 아브람의 실패의 대표적 이야기가 아닙니까? 하나님은 아브람을 가나안으로 부르셨는데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아브람의 잘못된 결정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틀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하란 사람인 아브람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이 무너지려 합니다.

  그러나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떠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다시 애굽을 떠납니다. 가나안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인생이 잘못될 때마다 나타나셔서 다시금 떠나라고 하십니다.

 

< 하나님의 모략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모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지 않고는 못배기도록 만들어 가시는 방법입니다. 모략이란 말은 원래 속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략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결국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떠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모략입니다. 그래서 결국 가나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신앙 여정에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떠남입니다. 떠남이 이루어져야 우리도 하란 사람에서 가나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말씀하시는 떠남에 대해서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옮겨 놓으시기 위해서 오늘도 떠남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3. 예배입니다.

 

어떻게 하란 사람 아브람이 가나안 사람이 되었는가?

세 번째는 예배입니다.

 

아브람의 이야기 중에 나타나는 특징이 있어요. 아브람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그 때마다 아브람이 하는 행동이 있어요. 바로 그곳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 행동이 아브람을 하란 사람에서 가나안 사람으로 만드는 비밀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란에서 가나안까지의 여정은 결코 짧지를 않습니다. 아브람의 전 생애가 걸린 일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람이 의지하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여러분이 아브람의 실패 이야기를 읽으면서왜 이 사람은 금방 하나님을 만났으면서도 또 금새

잊어버릴까? 이렇게 생각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아브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브람의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라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러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도 금새 잊어요. 바로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기억입니다

 

여호수아서 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첫 발을 디딘 후에하나님께서 요단강 한 가운데서 각 지파 별로 택한 열두 사람으로 하여금 열두 돌을 취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길갈이라는 곳에 세우라고 하세요. 그리고 후손들이 물으면 그 돌이 왜 그곳에 있는 지를 설명하게 하십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기억입니다. 우리는 잘 잊어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그가 어떻게 그렇게 실패하면서도 결국은 가나안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기억의 행위, 예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지나간 곳에 단들이 세워지고 예배가 드려졌어요.

 

예배가 무엇입니까? 거룩한 기억입니다. 한 주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떠나게 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아있어야 우리는 하란 사람을 벗고 가나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어떤 분이 그럽니다. “매 주일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내 신앙은 견고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필요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하니 예수님은 필요도 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 분에게 예배는 어쩌면 형식이라고 생각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고백인 동시에 우리의 연약함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것이 계속해서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하란 사람을 벗고서 가나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바로 그것을 합니다.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란 사람에게서는 없던 것이 생겼습니다. 예배입니다.

 

여러분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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