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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권세 (4)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9-23 (월) 19:20 조회 : 106
설교일 : 2019.09.22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마가복음 7:31-37

생명권세 4

마가복음 7 31~37

 

 

  지난 주 야고보서 큐티를 하다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주신 우리들의 두 가지 약함에 대한 말씀때문이었습니다.

  첫째가 바로 형제를 비판하는 약함입니다. 성도들 중에서 형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는 하나님만이 하실 일인데 우리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은 형제 비판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는 자기 의가 문제입니다.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잘못되었다는 자기 의를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의를 붙잡는 일입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의 의를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 때문에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를 여전히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면 세상 권세가 바뀌어야 하는 데 아직도 여전히 세상 권세 아래 있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둘째는 허탄한 자랑을 하는 약함입니다. 물질에 대한 자랑, 성공에 대한 허탄한 자랑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성도가 해야 할 자랑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성도의 자랑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서 선한 일을 하는 자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허탄한 자랑이 일어납니까? 세상 권세 아래 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두 가지 약함은 바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여전히 비판이 멈추지 않고 나는 옳은 데 다른 사람은 잘못되었다는 교만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잘못된 자랑이 나에게 있음을 봅니다. 세상 자랑이 아직도 내 안에 있어 내가 세상 권세 아래 있는 사람임을 보여줄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갈릴리 호수 마을에 예수님이 오시자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예수께 데리고 나왔습니다. 귀먹고 어눌한 자가 오늘 말씀의 주인공입니다. '귀먹고 어눌한 자'는 누구입니까?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말할 수도 없게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육신의 병? 귀머거리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의 문제 때문에 모든 삶의 자리가 어두워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인생이 참 이상합니다. 하나의 문제가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하나가 모든 삶의 자리를 어둡게 만듭니다. 그래서 삶이 다 어두워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우리 사이로 들어오세요. 왜 그러실까요?

  오늘 본문이 그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1. 무리 밖으로 따로 데리고 나오신 예수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33)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신 예수라는 말씀이 너무나 좋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를 무리에서 떼어 데리고 나오셨을까요? 귀머거리 병자의 삶을 이해하시는 주님입니다. 군중 속에서 귀머거리 병자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군종 속에서는 그를 진짜로 만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군중 가운데서 그는 의미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권세 아래에서 그 사람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 누가복음 삭개오의 이야기에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여리고의 세관장이었던 삭개오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대 도시의 세관장까지 올라갔으니 관료로서 높은 지위까지 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세관 앞에 홀로 앉아있다고 말합니다. 대도시 여리고의 세관이면 굉장히 큰 건물이고 사람들의 왕래도 많았을 것인데... 왜 삭개오는 거기에 홀로 앉아있었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말씀하지 않고 삭개오의 다음 행동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삭개오가 나무에 올라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야겠다!는 갈급함이 아닐까요? 세상에서 많은 가지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삭개오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삭개오를 알아보셨고 그가 올라간 나무 아래에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많은 군중이 거기에 모여있었는 데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가셔서 그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

 

   우리는 생각합니다. 군중 속에서 고치셔야지 좋지 않을까요? 군중 속에서 만나주셔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사람들이 알아주고 전도도 되고 좋은 일이 많지 않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목적이 다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고 인기가 예수님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귀먹고 어눌한 자의 세상 권세를, 삭개오의 세상권세 그리고 우리의 세상권세를 바꾸어 주러 오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무리 밖으로 따로 데리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군중 가운데서 데리고 나오신 예수님은..."손가락을 양 귀에.. 침을 밷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병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만지시는 예수입니다. 병의 근원에 손을 대시는 예수입니다. 부정하기에 손을 대면 같이 부정해진다는 율법의 가르침을 예수님이 뒤집으십니다. 만지십니다. 만져주십니다.

 

 < 이중표 목사의 아버지 이야기

    이중표목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술꾼 아버지 때문에 매도 많이 맞고 친구들에게 창피도 당하고 가정이 어려워 학교도 다닐 수 없는 실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매일 술에다 폭력을 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중표 목사님이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지워지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런 아버지와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를 하셨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길에 쓰러져있다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아버지에게 간 목사님은 술 취에 길에 쓰러진 아버지를 업게 되었습니다. 평생 한 번도 업어본 적이 없지만 술에 취해 쓰러져 있으시니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업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업고 보니 아버지가 너무나 가볍더랍니다. 무서운 아버지, 두려운 아버지였는 데 그래서 가까이 갈 수도 없는 아버지였는데 아버지를 업고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이제는 늙어서 너무나도 가벼워진 아버지 힘없는 노인이 되어 있는 아버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중표 목사님의 책에 이런 고백이 쓰여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엎고 걷는 데 그 미움은 다 사라져 버리고 힘 없어져버린 아버지에 대한 연민만이 가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심을 합니다. "아버지 이제는 아버지 힘으로 살 수 없으니...내가 잘 모실게요"  약한 아버지를 만질 때 이중표 목사의 아픔이 다 날아가 버렸던 것입니다. >

 

   예수님의 귀머거리 병인의 치유는? 만지심이었다.

    예수의 만져주심으로... 병자는 하나님의 깊으신 손길을 만났던 것입니다.

    예수의 만져주심으로... 자신을 깊이 바라보셨던 하나님의 눈길을 만났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만지기 시작하실 때 병자의 모든 병이 낫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오셔서 우리를 아시며 우리를 깊이 만져주시는 분입니다.

그 때 우리의 세상 권세가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2. 탄식하시는 예수님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34)

 

   오늘 우리는 탄식하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병자를 고치시면서 왜 예수님은 이렇게 장탄식을 하셨을까? 무엇에 대한 탄식입니까?

 

   1) 듣지 못하는 귀

        듣지 못하는 인생에 대한 탄식입니다. 무엇을 못 듣는다는 말입니까? 단순히 육신의 귀에 대한 말씀만이 아닙니다.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는 심령의 귀가 없는 인생에 대한 탄식입니다.

 

   듣지 못하는 귀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듣고 계십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들리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들리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 안산동산 교회 김인중 목사님

   너무나 가난했던 목사님은 가난한 집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부모님의 형제들의 기대가 얼마나 컷겠습니까? 그런데 CCC의 전도를 받고서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신학대학원에 가서 목사가 되기로 한 것입니다. 너무 가난해서 군용잠바를 물들인 남루한 옷을 입고 배고파서 학교 벤치에 앉아있던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찾아와서 예수님의 복음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CCC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청년이 세상이 달라진 것입니다. 최고 대학에 들어갔으니 졸업하고 식구들 잘 먹이고 성공한 삶을 살려고 했는 데... 놀라운 예수님의 사랑을 만나고서 눈이 띄인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서 그런 사랑을 만났으니 목사가 되겠다고 하자 난리가 났습니다. 제일 어려운 사람이 형이었는 데 형의 반대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신학대학원에 들어간 동생을 형은 아주 못마땅해 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의 전도를 받고서도 형은 절대로 마음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해 명절에 형의 집에 가서 자다가 김인중 목사님은 새벽에 눈을 떳습니다.  새벽기도하는 습관 때문에 눈이 떠진 것입니다. 형님 집 거실에서 자던 목사님은 거실에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형의 가정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데 하나님이 뜨거운 마음을 주셔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가슴을 부여잡고 형의 가정 식구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를 기도했을까... 안방 문이 열리면서 형수가 나오더니 식사를 준비하러 부엌에 갑니다. 목사님도 기도를 중단했습니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는 데... 형이 말을 합니다. 인중아... 우리 가정을 위해서 언제부터 그렇게 기도했냐? 침묵이 흘렀습니다. 형이 다시 말합니다. 인중아... 우리도 이제 교회에 가도록 하겠다>

 

  인생의 풍년은 물질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2) 말하지 못하는 입

 듣지 못하는 사람은 말하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귀먹고 어눌하니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말하지 못하는 입이 되었을 것입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자신의 의사도 표시하지 못하고 해야 할 말을 못하니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런 병자의 모습을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에바다라는 말씀입니다. 에바다는 열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의 형편을 아시고 그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열리는 축복입니다.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열리기를 원합니까? 무엇이 열려야 구원입니까 무엇이 열려야 축복입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귀가 열리고 입이 열려야 그 사람에게서 생명 권세가 시작 될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은 생명권세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귀가 열려계십니까? 어떤 말이 열려계십니까?

 우리에게 정말로 열려야 할 귀와 말은 어떤 것입니까?

 

< 박은숙 집사님이 다시 백혈병이 재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병원에 갔더니 집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두려운 게 있어요. 내가 하도 거지같이 신앙생활을 해서 천국 못가면 어떻게 하지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누가 그래요 집사님? 그랬더니 자꾸만 그런 생각이 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집사님 누구도 자기 공로로 천국 갈 사람이 없어요. 우리가 다 거지같이 신앙생활을 해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셨잖아요. 자기 행위로 천국 갈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직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렸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만 천국에 가지요. 그랬더니 집사님이 그 말을 듣고서 웁니다. 맞아요 목사님...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셨어요. 제가 다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집사님, 마귀가 하는 소리 듣지 마세요. 마귀가 네 신앙이 거지같다고 해도 믿지 마세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세요. 난 예수님 보혈을 믿어!>

 

  여러분 박집사님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은 듣지 못하고 해야 할 말은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생명권세의 귀와 말이 열려야 그것이 진짜 축복입니다.

 

 

3. 경계하시는 예수님

 

 

   "예수께서 그들을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36,37)

 

    예수님이 병자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예수님이 그러셨을까? 예수님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사람들을 하나 하나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이것을 방해하는 것들을 막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바 된 자를 찾아서 구원하려고 오신 것이지, 사람들의 갈채를 얻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생명권세의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 그래서 예수님은 군중을 만나시는 일이 없다. 군중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으신다. 오병이어를 일으키시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놀라운 환호를 보냈는데도 예수님은 그들 곁에 계시지를 않습니다. 다시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을 찾아가십니다. >

 

  하나님 나라의 방식, 생명권세의 방식이 이런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주시고 듣게 하시고 말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새벽에 기도하면서 우리 교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생명권세가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주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귀와 입을 열어주옵소서! 그래서 우리 교회가 생명 권세의 문이 열린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지난 주에 새신자 환영회를 했는데 새가족팀에서8월말까지 우리 교회에 50가정이 등록을 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과연 우리가 진짜 생명권세 안에 있어서 새로 오는 가족들을 예수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되면 하나님이 아무리 많은 식구들을 보내주셔도 안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셔도 오히려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고 합니다. 생명권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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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9.11.17
본문말씀 : 2 Corinthians 2:5-11
설교자 : Rev. Eung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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