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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권세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9-03 (화) 09:57 조회 : 43
설교일 : 2019.09.01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요한 복음 4:10-14

생명 권세

요한복음 4:10~14

 

  이번 달에는 생명권세 시리즈를 통해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두 권세가 있습니다. 세상 권세와 생명 권세입니다. 세상 권세란 세상에 속한 권세를 말합니다. 생명 권세란 하나님께 속한 권세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권세에 속해 계십니까?

 

  누가복음 18장에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입니다.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 즉 세리와의 비교에서 자기를 발견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의롭고 나은 사람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세리는 다릅니다. 세리는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세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자기 삶이 부끄러워 하늘을 우러러 눈을 들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권세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 권세의 사람이고 누가 생명권세의 사람입니까?

 

  권세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생명권세를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 권세 안에서 세상 권세를 세우는 것이 우리 인생인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 권세, 생명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우리를 생명권세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여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가 속했던 세상 권세를 보여줍니다. 성경은 여자가 남편에게 다섯 번이나 버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이혼의 권리는 남자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왜 버림을 받았을까요? 여자의 비극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세상 권세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의 기준에서 부족하고, 못나고, 연약하기에 버림을 받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여자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세상 권세 아래서는 신음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여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까? 권세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는 것은 권세가 바뀌는 것입니다. 세상 권세가 생명 권세로 바뀌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은 바로 권세를 바꾸어 주시는 일입니다. 하늘의 권세, 생명 권세를 알고 따라가고 세워가는 사람을 우리는 그리스도인,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이 깨뜨리신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말씀은 예수님은 이미 그 우물가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 우물에 계셨습니까? 그 우물은 어떤 우물입니까? 여자에게는 그 우물이 목마름의 우물이었다고 성경이 말합니다. 여자는 우물에 와서 목이 마릅니다. 인생에서 넘어진 사람은 우물에 와서도 목이 마릅니다. 여자의 목마름은 인생의 목마름이며, 사람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어도 참 만족과 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우물에 예수님이 계시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우물에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것도 여자보다 먼저 그 곳에 가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우물에 계신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그 우물은 바로 우리의 우물이기 때문입니다. 여자처럼 인생에서 외롭고 지치고 낙망한 바로 나의 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우리의 목마른 우물에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만날 때 믿음을 갖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햅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우물에도 계심을 믿습니다.

 

   복음은 이런 것이 아닙니까? 세상은 목마른 사람에게 왜 당신만 목이 마르냐고 하지만 예수님은 목마른 사람보다 먼저 목마름의 우물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 우물에 계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연히 지나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물에서 하실 일이 계십니다. 여자를 만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도 하시고 싶으신 일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마리아 여자는 이방여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여자들을 만나려고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지역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이 여자는 삶에서도 실패한 여자로 사마리아에서도 따돌림을 받는 여자였습니다. 거부당하는 여자였습니다. 여자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무도 없는 시간을 선택하고 그런 시간에 우물에 간 것입니다. 여자 안에 이미 그런 절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말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왜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말을 겁니까? 여자는 자신이 세상에서 심하게 거부를 당하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런데 그런 여자를 찾아가시고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여자에게 생명권세를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여자가 따라갔고 실패했던 세상 권세가 아니라 하늘의 권세, 생명 권세가 있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여자를 만나주셨을 때 여자의 세상 권세가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 높은 것과 대단한 것 앞에 주눅 들었던 것들이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여자를 절망케 했던 것들이 예수님을 만나자 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닙니까?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3:8~9)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니 그 안에서 자랑하던 세상 권세가 다 배설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세상 권세가 다 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 세상은 깨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권세가 아무리 높아도 예수님의 권세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왜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를 생명권세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생명 권세는 살리는 권세, 일으키는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해주는 권세입니다. 반대로 세상 권세는 비교하고, 차별하고, 절망케 하는 권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여자의 권세가 바뀌었습니다. 살리고 일으키고 세워주시는 예수님의 생명 권세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일을 하시기 위해, 세상 권세를 깨뜨리시기 위해 그 우물에 가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우물에 오셔서 하시는 일도 생명권세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2. 예수님이 허무신다.

 

   예수님과 여자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합니다. 저는 이 대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여자 정도면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고 입을 열고 싶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목사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교인분들을 만날 때마다 당황한 적이 많습니다. 인생이, 세상권세가 우리에게서 희망을 빼앗아가고, 절망 속으로 몰아넣을 때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자의 입이 열리고 마음이 열렸습니다. 닫혔던 벽이 열린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음이 열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어떻게 여자와 대화하셔서 그녀의 마음을 여신 것일까요? 어떻게 깨어지지 않던 세상권세의 굳은 마음이 열린 것일까요?

 

   바로 생명 권세의 모습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1) 용납입니다. 받아들여줌입니다.

 

   예수님이 여자를 받아들이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용납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 사람과 대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용납하지 않을 때 상대방도 우리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용납한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진실로 여자를 용납하고 계심을 여자가 느꼈기 때문에 여자도 예수님과 대화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생명 권세는 용납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의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용납하시는 예수, 받아들여주시는 예수입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이던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살리고 세우시는 생명 권세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용납해주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여자가 입을 엽니다. 여자가 입을 열고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여자를 치유하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여자가 용납해주시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여자 안의 세상 권세는 무너지기 시작하고 생명권세는 세워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생명 권세는 용납하고, 세상 권세는 반대인 것입니다. 생명 권세 안에 속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권세의 사람이십니까? >

 

2) 생명으로 이끄십니다. 

 

   여자를 만나신 예수님은 여자에게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얼마나 어려운 말씀입니까? 다른 사람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저는 목회자이기에 이 단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압니다. 누구하고나 이렇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단계를 겪어내야 살아나지만 그런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직면하고 그 죄를 드러내는 것을 고통스러워합니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과 오히려 문제가 생길 때가 많습니다. 이 단계만 넘으면 살 것 같은 데 그것이 어려울 때가 참 많습니다.

 

   < 김학중 목사의 간증

      제 친구 목사인 꿈의 교회 김학중 목사 교회에 신실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너무나 신앙생활을 잘하는 집사님인데 하루는 목사님을 찾아와서 기도를 요청합니다. 목사님 제가 사업을 하고 있는 데 형편이 매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십일조를 드릴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목사님과 기도하고 다시 마음을 먹고 열심히 해 보려합니다. 목사님은 집사님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사님의 사업이 잘 되기 시작하고 십일조도 많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바빠진 집사님이 그렇게 열심히 하던 예배에서 자꾸만 빠지기 시작합니다. 새벽기도가 사라지고, 수요예배에서 사라지고, 이제는 주일예배까지 가끔씩 빠집니다. 목사님이 작정을 하고서 그 집사님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집사님 제가 다시 기도를 좀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이 집사님이 하나님께 그렇게 열심이었은데 제가 기도를 잘못해줘서 믿음 다 잃고 돈만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금 이 분의 물질을 뺏어가 주십시오. 그래서 이 집사님에게 전처럼 물질은 없어서 하나님께 신실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집사님이 울기 시작합니다. 목사님 맞습니다. 제가 변했습니다. 물질을 얻고 하나님을 잃을 뻔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주께로 돌아가겠습니다. 집사님은 다시 열심을 되찾고 지금은 친구 목사님 교회의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은 여자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남편이 없다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예수님은 왜 이런 방법을 선택하시는 것입니까? 누구도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는 생명으로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목적은 그녀를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일인데 그것은 오직 자신의 죄를 보는 것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세상 권세만 가득한 사람을 살리시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자의 죄를 그냥 넘어가시지 않는 것입니다.

 

   < 우리는 마음 닫힌 대화들을 많이 합니다. 교회에서 다툼이 났는 데... 서로 아무리 얘기를 해도 해결이 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한 집사님이 소리를 치는 겁니다. 우리 은혜 빼고, 주여 빼고, 아멘 빼고 이야기 합시다! 다들 그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다투다 말고 다들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다들 돌아갔습니다. 오히려 그 소리 때문에 다들 돌아본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데 이렇게 싸우고 있지? 나는 누구인가?  >

 

   예수님의 모습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생명 권세를 세우는 사람인가? 나는 세상 권세를 따라가는 사람인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보여주십니다. 여자가 얼마나 세상 권세를 따라간 사람인지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이 여자의 세상 권세를 허무시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세우시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깨뜨림과 허무심은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우리를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권세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큐티 말씀 중에서 우리가 잘아는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소에 친한 두 여자가 똑같이 아기를 낳고서 한 집에 지냈는데... 한 여자의 아이가 죽으니 그 여자가 아이를 바꿔치기 합니다. 그래서 재판이 열렸습니다. 솔로몬의 법정에서도 다툼이 끝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판결을 합니다. 아이를 반으로 갈라서 나누어 주어라. 그러자 진짜 아이 엄마가 말합니다. 내가 포기하겠습니다.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십시오. 솔로몬이 말합니다. 저 여자가 진짜 아기 엄마니 여자에게 아기를 돌려주어라! >

 

   여러분 무슨 말씀으로 읽으셨습니까? 솔로몬의 지혜입니까? 저는 생명 권세의 말씀으로 읽었습니다. 두 종류의 사람 이야기입니다. 세상 권세의 사람과 생명 권세의 사람입니다. 한 이야기 속에 두 권세의 말씀이 나옵니다.

   세상 권세의 모습입니다. 평소에 친하게 지냈는데 내 아기가 죽으니 다른 사람의 아이와 바꿔치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기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이까지도 죽이려고 합니다. 세상 권세가 이렇게 무섭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은 세상 권세를 사망권세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반대로 생명권세의 모습도 있습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입니다. 결국 여자는 자기 아이를 다른 여자의 아이라고 말하면서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합니다. 솔로몬은 그 여자에게 속한 생명 권세를 읽어냅니다.

 

   여러분 어찌 열왕기상에 나오는 한 여자의 이야기만입니까? 우리의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가 세상 권세의 모습일 때도 생명 권세의 모습일 때도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세상 권세가 우리를 누르고 따르게 하고 복종케 하던 시절이 있었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그런 우리를 살리시려고 예수님께서 생명권세로 오셨고, 그 생명권세로 여러분과 저를 살리고 세우시려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과 저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예수님. 여러분과 저를 살리시기 위해 자기를 십자가에서 내어주시는 예수님이 아닙니까?

 

  저는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10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나는 네게 온 하나님의 선물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여자가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여자를 살리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말씀입니다. 생명권세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선물을 주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어떤 선물입니까? 생명 권세의 선물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이라(13~14) 여자를 세상 권세에서 생명권세로 바꾸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여러분과 제가 들어야 할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이 선물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절망 중의 가장 큰 절망은 자기 절망이라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넘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 권세가 너무나 커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생명으로 다가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예수를 만나야 생명 권세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여러분의 권세를 돌아보셨습니까?

  1. 우리의 우물에 나타나셔서 생명권세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2. 예수님이 깨뜨리시려는 세상 권세를 보셨습니까?

  3. 예수님이 세워주시려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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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e Life-giving Authority (3)
설교일 : 2019.09.15
본문말씀 : 1 Samuel 17:17-27
설교자 : Rev. Eung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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