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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생자의 복음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8-26 (월) 18:37 조회 : 56
설교일 : 2019.08.25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요한 복음 3:16

복음시리즈4

독생자의 복음

요한복음 3:16

 

 복음시리즈 4번째입니다. 이번 달에 우리가 함께 복음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은 어떤 것입니까?

 

 < 제가 양평에서 첫 목회를 할 때, 사택 뒷집에 여자 무당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참 잘합니다. 음식도 갔다가 주고 자기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탁도 편하게 합니다. 한 번은 저에게 제가 안 쓰는 보일러를 달라고 하면서 그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같은 종교인끼리 서로 돕고 지내면 좋잖아요. 그 말을 듣고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나, 절에 다니는 사람이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나 다 같은 종교인인가요? 만약에 우리가 복음을 알지 못하고 교회에 다닌다면 아마도 교회를 다니는 것이나, 절에 다니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저 종교 생활을 하는 거지요. 좋은 말씀 듣고, 삶을 돌아보는 수준의 생활일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만나고 그 복음 때문에 믿음을 갖는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복음이 기준이 되는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저도 사실 복음이라는 말을 신학교에 가서 처음 들었어요. 어린 시절 다닌 교회 목사님은 복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복음이란 단어를 쓰는 것을 듣고는 오히려 제가 복음이 뭐냐고 물었을 정도였어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복음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복음을 알고 계십니까? 복음을 만나셨습니까? >

 

 오늘 말씀을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복음의 핵심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 지, 또한 그 복음이 여러분과 어떤 관계가 있는 지를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1.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님이 설명해 주시는 복음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다.라는 말로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라는 말씀에서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단어는 세상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을 사랑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하시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1) 세상이라는 단어의 의미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어떤 의미입니까?

 

    < 어떤 개척 교회 목사님에게 자식이 5명이나 있었습니다. 개척 교회를 하느라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든 데... 아이들까지 5명이나 되니 보다 못한 어떤 넉넉한 교인이 한 아이를 양자로 입양 해서 잘 키우겠으니 한 아이를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밤새 목사님과 자는 아이들을 보면서 따져보는 겁니다. 어떤 아이를 보낼까? 큰 아이는 큰 아이라서 안 되고, 둘째는 몸이 약해서 안되고, 셋째는 고집이 세서 사랑을 못 받을 것 같고, 넷째는 인물이 제일 못나서 안되겠고 막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안될 것 같더랍니다. 밥이 새도록 어느 아이를 보낼까 아이들을 쳐다보다가 목사님과 사모님은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교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 부족한 것이 많아서 어렵겠습니다.

      부모는 어떤 자식을 더 사랑합니까? 아이가 셋이 있으면 어느 아이를 더 사랑합니까? 저희 집이 그렇습니다. 제가 큰 아들이고, 여동생이 있고, 막내가 아들입니다. 여동생과 막내 동생은 부모님이 저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늘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요. 저와 여동생은 대학원까지 공부하고 둘 다 목사가 된 반면, 막내는 대학을 나오지 못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은 막내 아들을 자립시키기 위해서 여러 번 재산을 정리해서 사업을 시키셨어요. 그로 인해 재산이 작아지셨지만 개의치 않으셨어요. 늘 저와 있을 때 부모님들은 막내 걱정을 하세요. 이제는 직장도 있고, 좋은 아내도 얻었는데 그래도 늘 그 아들 걱정을 하세요. 왜 일까요? 부족한 아들이라고 연약한 아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세상이란 아직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은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알던 알지 못하던 삶의 상황 때문에, 마음의 상처 때문에, 생각의 차이 때문에 그리고 죄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세상을 사랑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 복음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하시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만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하시기에 복음입니다. 그래서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아가페 사랑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랑?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향한 사랑이 아닙니다. 이런 사랑을 자기애의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의 사랑이 그런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못한 이들을 향한 사랑이십니다. 아직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의롭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사람들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이 의미를 해석했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 온전하든 온전하지 않던, 의롭던 의롭지 못하던 모든 사람을 위한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을 다른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사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자기를 의롭게 하는 사랑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 반대입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이타적인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모릅니다. 교회가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교회 잘 나오고, 헌금 잘 내고, 교회에 충성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에 잘 나오지 못하고, 헌금도 낼 수 있는 형편과 믿음이 없고, 충성할 믿음의 깊이가 되지 못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복음적으로 살아있는 교회가 아닐까요?

      그렇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만났다면 우리에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어렵게 하는 사람, 우리를 힘들게 하는 아직은 악한 사람,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1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만나고 그 사랑을 만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말씀해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까?

     

 

 

2. 독생자를 주셨으니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두 번째 복음의 고백은 독생자를 주셨다는 표현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he gave his one and only Son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독생자를 주셨다는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셨을까요?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은 세상을 사랑한다고 하신 말씀을 위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 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랑을 어떻게 하셨느냐? 독생자를 주는 것을 통해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세상을 사랑한다고 하시고서는 어떻게 그 사랑을 표현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독생자를 주셨다는 표현입니다.

 

   < 마가복음 12장의 포도원의 비유를 아십니까?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 추수 때가 되매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종을 보냅니다. 그랬더니 농부들이 종을 때리고 그냥 보냈습니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을 보냅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머리에 상처를 내고 모욕을 주어서 보냈습니다. 다시 다른 종을 보내자 이번에는 죽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생각합니다. 내 아들을 보내면 그들이 공경하리라. 그래서 아들을 보냈지만 그들은 오히려 상속자가 왔다고 아들을 죽이면 그 유업이 자기들의 것이 되리라고 아들마저 죽여버립니다. >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포도원 주인처럼 그렇게 하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결국 아들까지 보내셨습니다. 그 아들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독생자를 주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세상 사랑을 위해서 하신 일로서 스스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인 독생자라는 표현은 마치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듯이 같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시다라는 요한 사도의 표현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그것도 가장 낮고 천한 마구간에서 보잘 것 없는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는데... 그렇게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낮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세상 사랑의 뜻과 독생자 아들의 실천적 삶이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은 성품과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듯 예수님과 하나님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일하기 시작하셨을 때 즉, 복음을 전하시고,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죄 사하시고, 구원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오병이어로 많은 무리를 먹이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중풍 병자를 치료하시고, 문둥병을 깨끗케 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 나셔서 하늘로 올리우셨을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독생자의 사역이 하나님의 약속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써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독생자로서 사시기 시작하셨을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은혜와 진리는 드러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해 주시는 복음은 말로만의 복음이 아닙니다. 생각으로만의 복음이 아닙니다. 행동으로의 복음입니다. 사랑한다고 하시고 정말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고 표현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그럼에도 독생자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이단들은 양자론이란 이론으로 예수님에 대해 말합니다. 즉 예수님이 완벽한 인간이셨는데 하나님이 그런 예수님을 양자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에비우스파와 아리우스파가 바로 그런 이단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인본주의자들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의 사고 안에서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예수님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시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러 이 땅에 오셨는데 우리는 그저 좋은 분으로만... 그저 능력있는 분으로만... 그저 따를만한 분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머리 속으로만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삶으로 오셨고,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사랑하셨는데 머리 속에만 있는 예수님을 고백한다면 과연 우리가 예수님처럼 복음적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세상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로 오셨고, 그렇게 사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광을 드러내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것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명 없는 우리를, 즉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우리를 하나님과 관계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독생자의 비밀을 복음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3.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독생자를 주신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폴레타이,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아폴레타이는 파괴되다. 멸망하다. 죽는다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런 단어들은 모두가 소망을 잃어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절망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복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멸망이고 무엇이 영생입니까?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은 로마의 기독교 승인입니다. 기원후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에 대한 모든 핍박을 멈추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고 기독교의 부흥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후대의 기독교 역사가들은 오히려 로마의 기독교 승인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아 갔다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없이 살던 한 개인이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국가 종교가 되다보니 이러한 회심의 과정 없이 누구나 쉽게 교회에 들어와 교인이 되고 교회의 지도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오히려 기독교는 그 특유의 생명력을 잃고 쇠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축복인줄 알았는데 축복이 아니라 멸망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왜 한국교회가 쇠퇴하게 되었습니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한 가지가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핍박을 받으며 순수한 신앙을 지켜내던 초기 시대가 지나고 60~70년대 부흥의 시대가 찾아왔을 때, 한국 교회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뽑으면서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을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믿음보다 사회적 지위를 기준으로 교회 지도자들을 뽑기 시작했을 때 한국 교회는 세속화되고 권력화되고 정치화되기 시작한 것닙니다. 그 결과로 기독교의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 저는 선교지 필리핀에서 목회를 하면서 선교를 오는 많은 분들을 보았습니다. 선교팀으로 와서 짧게는 일주일, 두 주일을 머물다 갑니다. 은혜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 담임목사로 가게 되면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선교를 해외에 가서 하는 것, 혹은 국내 선교를 해도 어려운 곳, 힘든 분들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선교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진짜 선교는 무엇일까요? 바로 내 주위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까?.

   한국교회는 해외선교도 열심이고, 국내선교도 열심입니다. 그런데 정작 교인들은 전도를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위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아니 복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복음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해외 선교를 가는 것보다 내 식구들과 내 주위 사람들과 복음적으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외면적으로는 한국교회가 선교사 2만명을 파송했다고 자랑을 하는 데... 아리러니하게도 그런 한국교회는 교인이 줄고 쇠퇴를 거듭합니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1)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2) 그 사랑을 위해 독생자로 오신 예수님

   그런데 이 복음은 결국 3) 이 복음을 믿는 자들을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멸망이 아니고 영생을 주는 것이 복음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멸망이고 무엇이 영생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멸망은 세상으로 남아있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 자기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 세상의 성공과 영광을 기준으로 삼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멸망처럼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멸망이라고 하십니다.

   반대로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3:16절이 말씀해 줍니다.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이제는 우리들도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을 마땅하다고 여기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생, 생명이 영원한 삶,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는 삶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무엇이 멸망이고 무엇이 영생입니까? 어떤 것이 멸망이고 어떤 것이 영생입니까? 이것이 분별되어야 우리의 삶을 축복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멸망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생명인 것이 있고, 지금은 생명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멸망인 것이 있습니다. 복음만이 우리에게 무엇이 멸망이고 무엇이 영생인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만났습니까? 여러분 중에 오늘 복음을 만나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독생자에 대해서 오늘 들으신 분이 있으십니까?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요청하시는 예수를 따라가는 사랑의 삶에 대해서 오늘 들으신 분이 계십니까?

 

   복음 앞으로 나오십시오. 복음을 경험하십시오. 그리고 복음으로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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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9.09.15
본문말씀 : 1 Samuel 17:17-27
설교자 : Rev. Eung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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