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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8-05 (월) 23:11 조회 : 159
설교일 : 2019.08.04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누가 복음4:16-19

복음시리즈 1

누가복음4:16~19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이번 8월 달에는 복음이라는 주제로 시리즈 설교를 나눕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높음을 갈망합니다.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귀한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높음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높음은 반드시 깊음을 필요로 한다고 말씀합니다. 깊어져야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참 오랜 시간 깊어지는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도망다니고 배반당하고 모함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 시간들이 다윗을 깊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깊어지자 하나님은 다윗을 높이실 수 있으셨습니다.

 

  여러분 높음을 갈망하십니까? 깊음을 돌아보셔야 합니다. 노인과 어른의 차이를 아십니까?노인은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랍니다. 나를 돌아보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높은 사람을 추구하는가? 깊은 사람을 추구하는가? 나는 어른인가? 나는 노인인가? 인생의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인생이 어떠해야 인생이냐를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만 생각하던 인생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성숙한 인생이 될 수 있느냐의 이야기입니다.

 

  33살 예수님은 청년입니다. 장가도 가지 않으셨으니 정말 청년이 맞습니다. 육체적으로만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입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시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만 생각해주시니까 분명히 예수님은 가장 큰 어른이십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생각해 주시는 그 다른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늘 말씀이 가르쳐 주십니다. 가난한 사람이랍니다. 가난은 물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을 설명하는 이사야 61 1~2절은 가난한 사람을 그릇을 던져서 깨어진 상태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깨어진 인생, 회복 불가능한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난한 사람을 마음이 상한 자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상한 것이 가장 문제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어지는 것이 가장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그런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혁명입니다. 잘난 사람, 깨지지 않는 사람만이 대접을 받는 세상의 가치를 완전히 뒤집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깨어진 사람, 회복 불가능한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오신 소식은 복된 소식, 복음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가난한 자를 세 종류의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입니다. 이들을 생각해 주시려고 가장 큰 어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1.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포로된 자란 누구입니까? 무엇에 매여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인생의 어떤 상황에서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이 포로입니다. 포로에게는 그래서 전혀 자유가 없습니다. 스마트폰 포로 시대라고들 합니다.스마트폰에 자기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알코올에 포로가 된 사람, 도박에 포로가 된 사람, 고집에 포로가 된 사람, 미움에 포로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움에 포로가 된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미워죽겠습니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포로입니다. 그런데 진짜 포로는 자신이 포로가 된 줄도 모릅니다. 미움의 포로가 된 사람은 그 미움이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고 있는 줄을 모릅니다. 미워하는 동안 바로 자신이 그 미움의 포로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다 망가지고 있는 데도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로가 되면 기쁨도 잃어 버립니다. 사랑은 기쁨을 주지만 미움은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사랑하라고 지어진 존재가 미움의 포로가 되었으니 기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고집의 포로가 된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섬김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나눔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왜 기쁨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지으신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포로의 또다른 놀라운 특징은 포로가 되면 자유조차 갈망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움 때문에 상처 가운데 있는 사람을 찾아가보면 뭐라고 말합니다. 놓아두라고 말합니다. 회복해야 하는 데 뭐라고 합니까? 제발 놓아주라고 합니다.  포로된 상태에서 머문다는 것입니다.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아시지요? 쇼생크 탈출에는 상반된 두 사람이 나옵니다. 앤디와 브룩스라는 사람입니다. 브룩스라는 할아버지 죄수는 수감 50년 만에 사면을 받아 출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나가기가 두렵습니다. 죄수 생활 50년이 익숙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동료 죄수를 죽이고 감옥에 더 오래 있으려고 합니다. 결국은 출소하고 나가서 자유가 되었는 데 목을 매 자살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앤디는 어떻습니까? 포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렇게 말해보겠습니다. 알콜 중독이 된 사람에게, 스마트 폰에 포로된 사람에게, 미움에 포로된 사람에게. 고집에 포로가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유를 주십니까?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니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시고 자유케 하시려고 십자가까지 지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 영의 공식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얽매인 것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포로되었던 우리가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눈먼 자는 누구입니까? 보지 못하는 자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눈먼 자란 육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보는 자, 관점의 이야기입니다. 잘못 보는 자가 눈먼 자입니다. 인생은 인생 속에서 눈먼 자가 됩니다.

 

   < 모세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삽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살인을 해서 도망자가 되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더 본질의 문제가 있습니다. 잘못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을 애굽 사람들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은 그들이 종 됨은 그들이 그렇게 가나안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보질 못한 것입니다. 괴롭히는 원수 애굽만을 생각했지 이스라엘의 죄를 생각할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관점이 잘못된 자...눈먼 자였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40년 동안을 광야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절망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기까지 말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신 사건은 그래서 기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모세는 눈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기억하고 계셨음을.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보고 계셨음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을 때 모세는 다시금 보게 되었습니다. 이 다시 봄이 모세의 모든 것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나머지 40년을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먼 자에게 찾아가시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다시 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체적 눈의 회복이 아닙니다. 영의 눈의 회복입니다. 관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필립 얀시는 그의 책에서 고통의 구원이란 말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기 위해 고통을 주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고통은 없어져야 할 것이 됩니다.  그러나 얀시는 고통 자체가 우리의 삶을 유익하게 만들도록 하기 위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도 잘 보면 우리 인생에 유익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통이 결국은 우리를 우리 인생에서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있기 때문에 다시 보게 되고 다시 돌아보게 됨으로 인생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우리 인생에 없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울의 말씀도 같습니다.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 예수님은 우리를 다시 보게 하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3. 눌린 자에게 자유를

 

   언젠가 깜짝 놀랄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 목사가 목사를 칼로 찔러죽였다는 뉴스였습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인터넷 댓글들이 얼마나 많이 달렸는 지 모릅니다. 우리도 그 목사들을 정죄하고 비판해야 합니까? 잘못된 목사야라고 해야합니까?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건을 보면서...죄악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누가 죄를 이기며 누가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그들도 그랬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인생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어느 덧 물질이 목사조차 그렇게 만드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섭습니다. >

    

  눌린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눌린 자란 말 그대로 무엇인가에 눌린 사람을 말합니다.

말 한마디에 평생을 눌려서 살아가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말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담고는 그 상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약해서 그렇습니다. 이길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눌린 자란 비교급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쁩니다. 그런데 더 이쁜 여자에게 눌리는 거예요. 날씬합니다. 그런데 비교도 안되게 날씬한 연예인을 보니 눌리는 겁니다. 재벌 회장이 자살을 하고, 연예인이 자살을 하고, 연예인이 도박에 빠지고...왜 그렇습니까? 눌려서 그렇습니다. 중압감. 열등감, 소외감입니다.

   

 < 이카부족 이야기>

   이카부족에게 선교사들이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부족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죄에서 떠나 변화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습관들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이제는 지도자를 뽑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물었습니다. 여러분 누구를 여러분의 지도자로 뽑기를 원하십니까?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우리 중에는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없습니다.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술을 마시고 술주정을 하는 사람이 있나요? 또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선교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아무 일도 안하고 여자들에게만 일을 시키고 게으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또다시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손을 들면서 낙담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자 제가 다시 말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거짓말을 하다가 더 이상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몇몇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선교사가 또 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술을 마시다가 더 이상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몇몇 사람이 그렇다고 또 손을 들었습니다.  선교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자기 고집만 피우다가 더 이상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몇 몇 사람이 다시 손을 들었습니다. 선교사는 말했습니다. 훌륭합니다. 바로 그 사람들을 여러분의 지도자로 세우십시오. 그들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그들이 매여있던 것에서 자유하게 되었든 지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로 말미암는 자유는 우리를 하나님의 창조물로 온전케 하시는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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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is is the Christianity
설교일 : 2019.11.17
본문말씀 : 2 Corinthians 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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