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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안식일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7-29 (월) 06:31 조회 : 64
설교일 : 2019.07.28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마태 복음 12:1-8

보이지 않는 안식일

마태복음 12:1~8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나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안식일이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의미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금요일 저녁에서 토요일 저녁까지의 시간을 온전히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으로 안식일은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이 있다면 유대인이고, 안식일이 없다면 유대인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을 주신 것도 그런 의미였을까요? 하나님의 목적이 안식일 잘 지키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었을까요?

 

  우리들도 어려서부터 주일성수라는 말을 들으며 신앙생활을 배웠습니다.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것,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되는 것으로 주일성수를 배웠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안식일을 어기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믿는 부모들은 모두 자식들에게 주일성수라는 말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런 안식일을 요구하시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보이는 안식일을 가르쳐 왔고 배워왔습니다. 보이는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느냐?가 우리들의 관심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다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을 보고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시비를 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의미, 즉 보이지 않는 안식일입니다. 어떻게 지키느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셨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신 이유를 세 가지로 살펴봅니다.

 

 

1. 안식일은 쉼입니다.

 

  안식일은 샤바트라는 단어로 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2장에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도 안식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피곤하셔서 7일째 되는 날에는 쉬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냥 쉰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과 우리들의 차이가 그것이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이 6일을 일하고 주일까지 교회에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안식일이 의미하는7일째의 쉼이란 6일 동안의 노동으로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원래대로 돌려놓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6일의 창조를 마치시고 7일째에 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패턴을 말하는 것입니다. 6일의 노동 때문에 피폐해진 채로 살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삶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을 주시고 안식이 있는 백성으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패턴대로 살아야 하나님의 백성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쉼이 있는 삶 즉, 6+1의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패턴, 희년 사상입니다. 6일 일하고 안식일에 쉼을 갖고, 6년 동안 농사지은 밭은 7년째에  안식년을 갖습니다. 그리고 49년이 지나면 희년이 돌아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원래의 질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종 되었던 자도 풀어주고, 빚도 탕감을 해주어야 하고, 잃어버렸던 땅도 돌려주어야 합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세우신 질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께로 나와서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질서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백하고 지키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이러한 삶의 패턴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은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쉼을 모릅니다. 쉬어도 쉬는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6일 동안 일했으니 놀러간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에 참 안식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안식은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것인데 그런 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일(안식일)은 하나님 안에서 쉼을 경험하는 날입니다.

 

  쉼이란 무엇입니까??

    1) 멈춤

    2) 돌아봄

    3) 물음

 

   멈춤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달려가기를 멈춘 것입니다.

   돌아봄 멈추고 하는 일은 돌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다시금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물음 6일의 삶을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주어지는 6일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이것이 물음의 의미입니다.

 

  이런 세 가지가 있을 때 우리는 그런 안식일을 쉼이 있는 안식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주일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그런 패턴으로 사는 사람들을 자기 백성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주일에 나오셔서 이런 세 가지의 모습이 있으십니까? 보이는 안식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안식일을 보내고 계십니까?

 

 

 

2. 안식일은 회복입니다.

 

  오늘 말씀 후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자 유대인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노동하지 않는 날인데 예수님이 사람을 고치는 노동을 하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어기신 것이라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일하지 않는 날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하지 않는 정도, 일함의 정도를 정해야 했습니다. 39가지의 규정을 만들고 또 그것에서 파생되는 391가지의 세부 사항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규정을 지키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안식일을 노동하지 않는 날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등잔을 옳기는 것, 아기를 들어올리는 것, 두 글자 이상 쓰는 것을 노동이라고 규정했기에 안식일에는 그런 일들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의 문제가 안식일을 어떻게 어기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목사님 주일에는 외식도 하면 안되는 데... 목사님은 너무 자유롭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로교에서 오신 교인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두 가지를 느꼈습니다.

 1) 감리교에서 자란 저는 주일에 외식을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을 처음 보았습니다

 2) 그런 분들에게 예배 후에 나누는 성도와의 교제가 얼마나 기쁜 것인지, 가족과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외식보다 교제의 즐거움이 얼마나 더 중요한 지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질문도 던집니다. 틀리다는 것이지요. 자기들의 생각에 예수님은 율법을 어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악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라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의미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예수님께 안식일은 일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오히려 일하는 날입니다. 어떤 일입니까? 회복의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바로 그런 날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의 키워드는 회복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오히려 회복을 위해 일하는 날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6일을 살다가 진짜 중요한 하루, 즉 안식일에 우리는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회복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나의 회복, 가정의 회복, 이웃의 회복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두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가데스 바데아에서 지파별로 1명의 정탐꾼을 선발해서 가나안 땅을 보고 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보고 온 정탐꾼들의 보고가 놀라운 것입니다. 그 땅 사람들과 우리를 비교해 보니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 메뚜기, 보잘 것 없다는 것이지요. 그들의 성, 그들의 무기, 그들의 도시, 그들의 외모를 보고 우리를 비교해보니 한심하다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40년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왜요? 원망해서요? 아닙니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40년이 시작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고 실망해서 교회에 온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실패했어요. 망했어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러면 제가 성공 비법을 알려줘야 합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가르치셨습니다.

  1) 말씀, 계명을 주셨습니다. 말씀으로 너희의 기준을 삼아라!는 뜻입니다.

  2) 예배, 성막을 주셨습니다. 예배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백성임을 알아라!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가르치시기 위해 하나님은 광야 학교를 여셨고, 이스라엘은 그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말씀과 예배가 있는 백성이라고 정의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가나안 거민과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일이 회복을 위해 일하는 날이 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 고백하게 될 때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안식일에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3.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안식일은 쉼이고, 안식일은 회복이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안식일에 대해서 돌아보아야 할 것은 주인이라는 단어입니다. 안식일은 주인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안식일이 주인이신 하나님께 속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 안식일은 주인의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내 뜻대로가 아닙니다. 주인 맘대로, 주인의 원하는 대로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니 안식일은 예수님의 뜻이 일어나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1) 먼저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말라기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3)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5)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없고 죽은 제사를 드리면서 안식일을 지켰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까?

 

< 예배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3.1절에 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배 축도 후에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란 겁니다. 예배 안에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분들은 찬송가를 안 부르고 복음성가를 많이 부른다고 예배가 싫어졌다고 하시는 분들을 봅니다. 그 찬송가들도 한 때는 복음성가였던 것을 모르시나 봅니다. 예배는 나의 취향이 반영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영혼이 구원받고 있는가? 우리의 예배를 통해 죄가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우리의 예배를 통해 섬김과 사랑의 결단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런 것이 우리가 돌아보아야 하는 우리의 예배가 아닙니까? >

 

   안식일을 향하신 주인의 뜻이 무엇입니까?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제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은 예배,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죽은 신앙, 형식의 예배가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신앙, 생명의 예배란 무엇입니까? 주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멕시코 선교대회를 다녀왔습니다. 선교지에 가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선교지에 가서 여러 사역을 하면서 계속해서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부족하고 저런 것이 부족하고, 이런 준비가 안되어 있고, 저런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말씀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선교지에 옵니까? 내 눈으로 보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

 

   저도 신학교에서 두 과목 강의를 했습니다.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6시간 강의를 했는데요. 강의를 하는 데 한 자매가 계속 눈에 들어옵니다. 마리아나라는 자매였는데 너무 어려보여서 눈에 들어오는 자매였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에 가지 못하고 한인식당에서 일하는 자매였습니다. 계속해서 제 마음에 그 자매를 도우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그게 맞는 지 아닌 지 생각하다가 도울 기회를 놓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제 수중에 100불이 있었는데 그것조차 주지 못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후회를 했습니다. 제게는 아무 것도 아닌 돈이지만 그 자매에게는 얼마나 귀한 것이었을까? 내 뜻과 생각에 집중하다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치 못한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

 

 

2) 나는 자비를 원하고입니다.

 

   호세아 6:6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사랑과 서로 사랑의 계명을 따라 살아내기를 원하셨습니다.그것이 그들이 드려야 할 진짜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은 잃어버리고... 어떤 안식일을 지켰습니까? 보이는 안식일입니다. 절기를 지키고, 엄청난 예물을 드리고, 호화로운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예배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런 보이는 안식일이 아닙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어떤 모습을 보이셨습니까? 만왕의 왕이 되시고, 세상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면서 그 주인의 권리를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주셨습니다. 오히려 창녀를 만나주시는 데에 사용하셨습니다. 넘어진 자를, 죄인을 만나주시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예수님을 복음. 복된 소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예수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살아나고 구원을 얻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안식일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이 일어나는 날입니까? 그래서 주일, 주의 날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어떤 안식일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보이는 안식일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지 않으십니까? 보이지 않는 안식일, 안식일의 주인을 가르치고, 주인의 뜻을 가르치는 안식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설교를 들으시고 안식일을 형식적으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으로 해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형식 안에 내용을 담자는 말씀입니다. 나는 이제 안식일의 진짜 뜻을 알았으니 형식적으로 안식일을, 주일을 지키는 것은 의미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을 따르는 것이며 그것을 더 잘 따르기 위해 보이는 안식일에 보이지 않는 안식일을 더하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에 보이지 않는 안식일의 세 가지 쉼, 회복, 주인의 모습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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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e eager expectation of God
설교일 : 2019.08.18
본문말씀 : 1 Samuel 9:11-27
설교자 : Rev. Eung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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