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610건, 최근 2 건

예수가 보여주시는 길, 진리, 생명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7-08 (월) 10:27 조회 : 172
설교일 : 2019.07.07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요한 복음 14:1-6

예수가 보여주시는 길, 진리, 생명

요한복음 14:1~6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구원 받으셨습니까?(아멘! 하지 말고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레위기를 통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추수 때에 너희의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아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고아, 과부, 나그네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을 듣고 밭 모퉁이를 남겨두는 행위를 하는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았다고 말로 고백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을 따라가는 입니다. >

 

<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대화입니다.

   예수님이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내가 아버지께로 가리니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러자 도마가 말합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 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도마의 고백은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데 어떻게 믿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세계를 말씀하시고 도마는 아는 세계, 보이는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도마는 계속해서 그런 믿음을 보여줍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지 못하자 내가 그 손을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던 사람이 도마입니다.>

 

   ( 도마처럼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하나님을 보면 신앙생활 잘할텐데요. 저도 체험을 하고 싶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런 도마에게, 그런 신앙인들에게 주신 말씀이 오늘 6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길을 보여달라고? 내가 바로 그 길이다. ( a way가 아니라 the way인 것입니다.)

   진리를 보여달라고? 내가 바로 그 진리야!

   생명을 보여달라고? 내가 바로 그 생명이다!

 

  내가 바로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이란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삶으로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말로가 아닙니다. 삶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삶의 패턴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삶이 달라지는 신앙에 대해서 길, 진리, 생명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1.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길

 

   인생의 문제는 자신이 가는 길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길을 가고 있긴 한데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사마리아 수가성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남자와 살아봐도 모르겠고, 또 다른 남자와 살아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섯이나 바꾸어봤는데 그런데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의 인생은 이제는 남편이라고 정식으로 결혼도 하지 않는 상태로... , 이제는 기대도 없이 그저 같이 사는 남자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길을 가고 있긴 한 데 길이 맞는 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우리가 가는 길을 정확히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길을 모르니 오늘 말씀처럼 근심과 염려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입니까? 예수님이 길을 보여주시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인도 선교사였던 스텐리 존스의 길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한 번은 처녀림이 울창한 어느 오지 밀림지역에서 선교를 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감각을 되살려 길을 찾아 헤매었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목은 말라 갈증이 나고, 배는 고파서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사나운 맹수가 달려들어 잡혀 먹힐 것 같은 불안과 공포,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렇게 헤매다가 나무를 베고 있는 원주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스탠리 존스는 너무나 반가워서 원주민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나는 지금 길을 잃었습니다. 나에게 마을로 돌아가는 길을 좀 가르쳐 주시지 않겠소. 나무를 베고 있던 원주민은 길을 가르쳐 달라는 선교사의 요청에 좀 기다리시오.라는 말만 남기고선 계속 나무를 베었습니다. 무려 8시간이 지났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나무 베는 일을 끝내고 나를 따라오시오.라는 말만 남기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원주민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때 원주민이 선교사에게 말했습니다. 이곳에는 길이 없습니다. 내 발을 내딛는 곳이 곧 길입니다. 그리고 원주민은 쉬지 않고 앞만 향해 나갔습니다. 마침내 선교사는 원주민을 따라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왜 원주민은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일까요? 만약 선교사에게 길을 가르쳐 주었더라면 선교사는 밀림과 정글지역에서 계속 헤매다가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설령, 길이 있어서 가르쳐 주었더라도 정확한 길을 찾지 못할 경우엔 더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밀림 지역에는 정상적인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원주민의 방향 감각으로 가는 길이 곧 길이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이야기가 아닙니까? 우리 인생의 이야기와 같지 않습니까? 인생의 길을 알아서 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길은 홀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홀로 걸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길은 인생의 어떤 순간도 혼자서 가지 않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길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가시는 길입니다. 사역의 시작부터 사역의 마지막까지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부터 겟세마네까지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의 교만은 언제나 혼자서 가는 길, 혼자서 성공하는 길, 혼자서 앞서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깨닫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벙어린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시자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쫒아내지 못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그동안 저는 기도하는 능력이 귀신도 쫒아내는 것이라고 이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 능력이 없나? 그런 능력은 어떤 기도를 해야 받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기도의 능력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능력을 주셔서 그 능력으로 귀신을 쫒아내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능력을 소망합니다.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찾아갈 것입니까? 예수님은 그런 능력은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만 나타나는 것이라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에 보여주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의 길은 어떻습니까?

  혼자서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 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을 걷고 있습니까?

 

 

 

2.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진리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삶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삶이 진짜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삶은 달라지지 않고 생각만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신앙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삶이 달라져야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삶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진리다라고 하십니다. 내가 진리다는 것이 어떤 뜻입니까?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진리는 삶으로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그 진리를 말씀으로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예수님 스스로가 그렇게 살아내신 진리입니다. 이 땅의 낮은 자리로 내려오시고, 죄인들을 사랑해 주시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성육신(incarnation), 사랑의 삶, 십자가,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예수님이 실제로 사셨고 보여주신 진리입니다. 그렇게 살아내신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진리가 예수님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진리 때문에 삶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말씀사역, 큐티를 7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큐티하십니까? 우리 성도님들이 큐티인을500권 구입하는 바람에 서점에서도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는 거지요. 갑자기 디트로이트 교인들이 왜 그렇게 규티책을 사느냐고 물었답니다. 교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물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무슨 일입니까? 우리는 큐티를 통해 무슨 일을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변하는 것을 기대합니다.

 

  큐티는 말씀 묵상만이 아닙니다. 큐티는 큐티 라이프를 시작하는 것, 즉 삶의 스타일을 바꾸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삶의 스타일이 달라져야 큐티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들으려는 삶으로, 또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순종하는 삶으로 나의 삶을 바꾸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속회 모임에서 함께 나누면서 다른 사람의 변화된 삶을 함께 보는 것...그것을 큐티 라이프라고 합니다.

 

  이번 주간 고린도전서를 큐티할 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왜 큐티를 해야 하는 지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제게 다시금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네 파로 나뉘어 시기하고 분쟁을 하는 데 그들을 향해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오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 3:3)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신앙은 밥을 먹는 어른이 되는 것과 같이 스스로 말씀을 읽고 성령이 주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을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먹여주는 신앙의 수준, 즉 스스로 말씀을 먹지 못하는 수준이라 젖을 먹듯이 누군가가 떠먹여주는 말씀을 먹는 수준이었습니다.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역사가 아니라 음성이 없으니 자기 생각과 주장 때문에 서로 달라서 자기와 다르면 시기하고 분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큐티를 하는 데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까? 젖이 아니라 밥을 먹는 것처럼 말씀을 먹는 자가 많은 교회로 세우라는 주님의 뜻이 아닙니까? 말씀 때문에 삶이 변하고 순종하며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교회로 세우라는 뜻이 아닙니까?

 

  오늘 말씀의 앞 부분에 예수님의 새 계명이 나옵니다. 이런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게에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4~35

 

  세 단계의 말씀입니다.

  1)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3)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을 하는 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한 것처럼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 어떤 사랑입니까? 어떤 진리입니까? 자격 없는 자를 사랑하시는 사람입니다. 헤세드라고 합니다. 긍휼의 사랑입니다. 자격 있고 능력이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사랑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향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이 진짜 사랑임을, 진리임을 보여주시기 위해 사랑받을 자격 없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진리입니다. 자격 없는 자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삶입니다. 그러니 이런 예수님의 진리를 만난 사람들은 세상이 하는 것처럼 자격 있는 자를 향한 사랑으로부터 자격 없는 자를 향한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기 시작해야 제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이 진리다 저것이 진리다고 참 많은 말들을 합니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교회가 이래야 한다. 교회가 저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예수님의 진리는 스스로 살아내시고 보여주시는 진리입니다. 사랑한다고 하시고 정말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요구하시는 진리입니다.

 

 

 

 

3.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생명

 

  오늘 말씀에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이 묵상 가운데 마음에 남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란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겟세마네의 마지막 기도에서 예수님은 이런 기도를 하십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예수님은 왜 이런 기도를 드리셨을까요? 육신의 예수님께서 그 고난의 잔을 마시기 전에 하나님께 드리는 이 호소는 그 십자가가 얼마나 모욕적이며 비참한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꼭 이 방법이십니까?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다른 수많은 방법이 있는 데 꼭 십자가여야 하십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하나님의 방법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지만 막상 그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예수님처럼 그런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오자마자 어떤 분이 그러셨습니다. 목사님 나는 목사님이 2년 만에 교회를 사임하고 왔다는 소리를 듣고서 목사님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못합니다. 그 소리를 듣는 데 얼마나 마음이 아팟는지 모릅니다. 제가 미국으로 오기로 결정을 했을 때 주위의 많은 목사님들이 제게 해준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힘들어 할거야. 김목사 욕 많이 먹을거야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라고 왜 모르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시간 고민했는 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특별한 마음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 때 드린 기도가 예수님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기도를 영광의 기도라고 부릅니다. 진짜 영광이란 내가 원하는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만 사람과 세상은 참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보여주신 마지막 순종, 십자가의 모욕이 아니라 아버지가 받으실 영광이 있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시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생명이란 목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생명은 예수께서 요한복음10:10에 말씀하셨던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인 생명은 하나님과 우리가 연결된 상태, 즉 영적 교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깊이 관계된 삶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하셨습니까?

  예수님처럼 삶으로 나타내는 진리를 살고 계십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과 깊이 연결된 생명의 삶이십니까?

 


   

총 게시물 610건, 최근 2 건
번호 설교일              제목 본문말씀 설교자
610 2019.11.17  This is the Christianity 2 Corinthians 2:5-11 Rev. Eungyong Kim
609 2019.11.17  이것이 기독교 입니다. 고린도 후서 2:5-11 김응용 목사
608 2019.11.10  The Two Boats Luke 5:1-8 Rev. Eungyong Kim
607 2019.11.10  두 배 누가 복음 5:1-8 김응용 목사
606 2019.11.03  Serve the Lord with passionate zeal! Romans 12:3-13 Rev. Hoon Kyoung Lee
605 2019.11.03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십시요 로마서 12:3-13 이훈경 목사
604 2019.10.27  보고 따라가고 믿는 삶 창세기 18:1-15 김응용 목사
603 2019.10.20  The Ideal of Abram, the Ideal of God Genesis 15:1-21 Rev. Eungyong Kim
602 2019.10.20  아브람의 이상, 하나님의 이상 창세기 15:1-21 김응용 목사
601 2019.10.13  'Divine Yes' Genesis 13:1-13 Rev. Eungyong Kim
600 2019.10.13  Divine Yes 창세기 13:1-13 김응용 목사
599 2019.10.06  From Haran to Canaan Genesis 12:1-9 Rev. Eungyong Kim
598 2019.10.06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창세기 12:1-9 김응용 목사
597 2019.09.29  The Life-giving Authority (5) Luke 20:19-26 Rev. Eungyong Kim
596 2019.09.29  생명 권세 (5) 누가 복음 20:19-26 김응용 목사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

제목 : This is the Christianity
설교일 : 2019.11.17
본문말씀 : 2 Corinthians 2:5-11
설교자 : Rev. Eungyong Kim
하이게이밍
클럽골드카지노
top카지노
탑카지노
안전놀이터주소
온라인카지노
우리카지노

HOME

교회소개

환영의글
담임목사 소개
비전과 사명
섬기는 사람들
예배시간&오시는 길

말씀

주일예배설교
수요예배설교
새벽예배설교
목양칼럼
읽는말씀(English&Korean)
Bible Time
성경필사

양육

유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한국학교
하람 청년부
소망대학
Troy Hope
KKCA

선교

선교통신
  • 몽골선교
  • 방글라데시선교
  • 아이티선교
  • 과테말라선교
  • 볼리비아선교
  • 베네수엘라선교
  • 아프리카선교
  • 터키선교
  • 기타선교권
  • 선교역사관
  • 나눔터

    공지사항
    찬양영상
    사진 게시판
    새가족 사진게시판
    새땅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