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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능력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6-24 (월) 09:51 조회 : 138
설교일 : 2019.06.23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요한 복음 13:12-20

크리스쳔 삶 시리즈 4

섬김의 능력

요한복음 13 12~20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어떤 능력이 우리에게 생기는 것일까요? 교회를 다닐수록 우리들에게 나타나야 할 진정한 능력, 즉 삶의 변화 때문에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진정한 신앙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마다 그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삶은 달라지지 않고 신념만 바뀐다면 과연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신념이 아니라 삶이 달라져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신념, 즉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강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다른 사람을 향해서 자꾸만 틀렸다고 생각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비판하고 결국 상처도 받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판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신념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적용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자신은 자기가 옳다고 하는 대로 살고 있을까요? 아니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신념에 대해서 말씀하시지를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삶을 보여주십니다. 제자들과의 3년 동안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왜 삶을 보여주셨을까요? 삶이란 신념이 추구하는 세계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삶이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서 예수님의 삶을 보았기 때문에 내가 바뀌어 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나와 하는 싸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신앙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신념입니까? 삶입니까? 저는 교회에서 자라면서 신념 때문에 사람들이 다투고 상처 받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싸우는 것을 너무도 많이 봤습니다. 오래된 교회일수록 성도들 간의 상처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그림자 교인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한 교회를 다니지만 서로 무시하고 없는 듯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목회하면서 더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지시기 하루 전에 행하신 일에 대한 것입니다. 아마도 그 날에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중대사를 앞에 두시고 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일을 하셨을까요?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싶으신 크리스쳔의 삶에 대한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은 분명 제자들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가장 알려주고 싶은 것이 계셨고 그 일을 위해 제자들을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보여주시려는 삶은 섬김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제자들에게 섬김의 삶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섬김의 삶이 무엇입니까? 섬김을 말씀하면 많은 교인들은 교회에서 하는 봉사를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들 말씀합니다. 저는 성가대를 20년 했어요. 저는 주방팀에서, 저는 방송팀에서, 저는 주차팀에서, 저는 새가족팀에서 봉사합니다.

 

 그러나 봉사는 섬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는 것도 봉사가 아니라 섬김입니다. 봉사와 섬김이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예를 들어서 교회와 세상 단체에서 똑같이 저개발국에 우물을 파준다고 합시다.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 세상 단체에서 하는 봉사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신념을 따라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들의 기준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 신념이 맞는 사람들만 모여서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그러한 봉사가 아름다운 것이어도 결국은 자신들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섬김은 다릅니다. 섬김은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이 우물을 파도 우물을 파주는 이유가 다른 것입니다. 섬김은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시는 일이기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섬김에는 내 뜻과 내 신념과 달라도라는 말이 들어있습니다. 신념으로 하는 봉사는 자기 뜻과 달라질 때 중단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섬김은 나의 뜻과 달라도 중단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10:45)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섬기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요한복음의 말씀을 통해 그 섬김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하는 일이라고 알려주십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6:39)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제자들의 삶이 되도록 하시려는 섬김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섬김의 핵심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없이는 자신의 신념을 이루는 봉사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섬김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부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서도 낮고 천한 자들, 죄인들과 만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신 것입니다.

 

  진짜 섬김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자기 부인이 있습니다.

 

  지난 주간 묵상한 레위기 20장의 말씀에는 몰렉에게 자식을 바치는 인신제사를 하는 사람들을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들어있습니다. 왜 인신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을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인신제사는 번영을 위해서 자식까지도 제물로 바치는 애굽의 풍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언약을 주시면서 그런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처형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배반하는 자들을 처벌하라고 하시는 그저 무서운 법만이 아닙니다.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번영을 꿈꾸며 자식까지도 희생하던 애굽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거룩한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거룩한 삶을 위해 이전에 살던 삶에 대한 자기 부인을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부인하는 일이 있어야 그것이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섬기기 위해서 부인하는 것이 있어야 크리스쳔의 섬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섬김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섬기기 위해 여러분이 부인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섬김은 씻겨주는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 대야를 드시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나타나셨을 때 아마도 제자들은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섬김의 삶을 가르치시려는 예수님과 달리 제자들은 아직까지도 누가 크냐?는 문제를 가지고 갈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상이몽이란 말을 아시지요? 같은 이불을 덮고 자지만 다른 꿈을 꾼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아닐까요? 20장을 보면 제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나는 주의 좌편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앉게 해주십시오라고 요청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면서 다른 제자들이 화를 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같은 제자이면서도 예수님의 제자들 안에는 경쟁과 상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모습과 우리들의 모습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같은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제자들의 모습과 같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 나타나신 것입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서 베드로가 묻습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베드로가 이 말을 한 것은 발을 씻기는 일이 가장 낮은 종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말은 제자들의 마음 상태를 대변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낮고 천한 종이나 하는 일을 왜 예수님이 하시려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신념에 예수님이 하시려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7)고 말씀을 하셔도 베드로는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신념에 그런 일은 예수님이 하실 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막아섭니다. 절대로 안 된다고 예수님을 가르치려 합니다. 

 그 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해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는 말씀입니다. 자기 신념으로 씻김을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씻김없이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80살이 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유명한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왜 모세라는 사람은 광야에서 40년을 살았고 이제는 80살이나 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을 하고 또한 고난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냐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것을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살인하고 광야로 도망간 모세를 40년 만에 찾아가셔서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3:4-5)고 말씀하십니다.

 

 40년 만에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해 주시는 말씀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왜 신을 벗으라고 하셨을까요? 유대인들이 신을 벗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인도를 받겠다는 절대복종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단순히 신고 있는 신을 벗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모세가 가던 길(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로 나오라는 말씀이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가 가던 길을 아시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야 40년 동안에 하나님은 모세의 길을 지켜보고 계셨고 그의 길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세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로 나아가자고 요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지난 40년의 시간들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 외로움의 시간들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자기 혼자 걸으며 견뎌왔던 고독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네 길을 보고 있었다고 하시니 그 말씀 한 마디에 모세는 지난날의 상처와 아픔들이 다 씻겨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그 시간들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셨다고 하실 때 모세의 상처가 다 치료된 것입니다. 그 씻겨주심이 결국 모세를 새로운 삶으로, 새 신을 신는 삶으로 인도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러한 하나님의 씻겨주심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머지 삶40년을 순종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모세를 사용하시기 전에 먼저 씻겨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찾아가시고 만나주시는 섬김을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섬김을 보여주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마음인지를 모르시지 않으시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씻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씻김이 어떤 능력인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씻김을 받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씻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씻김으로 섬겨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앞으로 어떻게 주님을 위하여 쓰임을 받을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 길은 다른 사람을 씻겨주는 길, 다른 사람을 섬기는 길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먼저 베드로가 철저히 씻겨지는 경험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네가 모르지만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신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씻김의 경험이 결국 순교의 길까지 베드로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씻기는 사람으로 살게 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들이 이런 섬김의 능력을 깨닫고 서로를 씻기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섬기는 삶에는 세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섬김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씻겨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섬김으로만 세워지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씻겨주시고 섬겨주실 때 베드로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섬기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섬김을 통해서 세우시는 것이 있습니다. 섬김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 가운데 만들어가는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 섬김은 하나님의 일을 만듭니다.

  우리는 어떻게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섬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두 가지를 알려주십니다.

  1)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16)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자기가 한 일에 도취되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인 섬김을 하고서 자기를 높이려는 우리들의 죄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섬김이 진짜냐 가짜냐는 섬기는 사람이 누구를 섬기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섬기면서 결국 자기를 섬기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 연말만 되면 교회는 항상 시험에 듭니다. 임직 때문입니다. 권사가 되지 못한 분들, 장로가 되지 못한 분들이 단골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교회를 섬겼는데 내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해봅니다. 무엇을 섬긴 것일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처럼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고 하셨는 데 우리는 섬김의 결과로 내가 높아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봅니다. 섬김의 열매는 하나님을 세우고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2)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18)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측근이었던 가롯유다의 배반을 이미 알고 계셨고 그것이 시41:9 말씀대로의 성취인 것을 아셨습니다. 다윗도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서 가장 가까운 측근이었던 아히도벨에게 배반을 당한 것처럼 예수님도 가장 가까운 측근에게 배반을 당하실 것임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발까지도 씻기셨습니다.
   진짜 섬김은 내 뜻으로 판단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섬김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섬김이지 판단이 아닙니다. 섬김을 받을 사람을 내가 정하고서 하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섬김은 감당할 수 없는 일까지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섬김은 어떤 모습입니까? 세워지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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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e eager expectation of God
설교일 : 2019.08.18
본문말씀 : 1 Samuel 9:11-27
설교자 : Rev. Eung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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