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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사랑의 능력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6-10 (월) 09:25 조회 : 112
설교일 : 2019.06.09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누가 복음 6:27-38

크리스쳔 라이프 시리즈2

원수 사랑의 능력

누가복음 6:27-38

 

  이번 6월에는 크리스쳔 라이프 시리즈 설교를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어떤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지난 주에는 소망의 능력을 갖는 것이라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원수 사랑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원수가 있으십니까?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고 예수를 믿으면 원수가 당연히 없어야 할 것 같은 데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원수가 있고 원수를 맺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 부흥회에 오신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원수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랬더니 어떤 노인분이 손을 드셨습니다. 목사님이 그 노인 분에게 대단하시다고 칭찬을 하고서는 물었습니다. 어떻게 원수가 없을 수 있으세요? 그랬더니 노인분이 대답하셨습니다. 다 죽고 없어요 >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들 위하여 기도하라(27~28)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축복하고 기도까지 해주라고 하십니다.

 

  왜 예수님은 원수 사랑의 말씀하실까요? 27절 말씀의 앞 부분에는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원수 사랑의 메시지를 누구에게 주시고 계십니까? 듣는 자라고 하십니다. 원수 사랑은 말씀을 듣는 자, 즉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온 자들을 향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오셔서 그러십니다. 목사님 구약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이 있다는 겁니다. 그 분의 말씀은 하나님도 받은 만큼만 갚는 것은 허락하신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랍비들은 레 24:20을 근거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리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러니 당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원수에게 자신이 당한대로 갚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도 여겼을 것입니다. 원수 갚음이 끊어지지를 않았겠죠. 보복과 갚음이 서로 서로에게 얽혀 있었을 것입니다. 원수지고 원수 갚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당한 것보다 더한 것으로 앙갚음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답니다. , 눈은 눈으로만 이는 이로만 갚도록 하기 위한 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율법은 실제로 그렇게 갚으라는 율법이 아니라 원수 진 사람에게 원수를 갚을 때에 원수보다 더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을 경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원수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예수 만나고 교회를 다니면 원수 사랑의 능력이 생겨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런 삶을 살고 계십니까?

 

 

1. 원수가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저는 목회하면서 성도님들에게 원수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성도들에게서 듣는 이야기가 사랑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데 의외로 원수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원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도님들이 들려주는 자신의 원수 이야기를 듣다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원수들은 한 때는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껴주고 서로 친밀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로 인해서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주게 되었습니다.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기록처럼 새겨진 아픈 흔적을 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가깝고 사랑했기에, 믿고 신뢰했기에 그 아픔이 더 큽니다. 그래서 그 원수 이야기를 하면서 여전히 마음 아파하는 분들을 봅니다.

 

  그래서 원수 이야기를 하는 분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원수 이야기를 합니다. 여전히 미워합니다. 배신감을 쏟아냅니다. 과거의 일을 마치 어제 오늘 일어난 것처럼 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매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원수에게 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 이야기를 하고, 원수를 미워하고, 원수에 매인 삶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예수 믿고 교회를 다녀도 예전의 모습이 우리들 안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세상적인 사람으로 여전히 살고 있는지를 아십니다. 예수를 만나고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았어도 우리가 원수 맺는 일에 얼마나 약한지를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과거에 만난 원수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주시려는 새로운 삶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려는 새로운 삶은 원수에 매인 삶이 아니라 사랑에 매인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앞의 원수를에 강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뒤의 사랑하라에 강조가 있습니다.

 

  원수와 얽힌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사랑하는 삶으로 나의 삶을 바꿀 것이냐?에 대한 것입니다.

 

< 연회에서 어떤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은 저의 신학교 1년 후배입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나이보다 늦게 입학을 해서 저보다는 나이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저와는 아무런 교제가 없는 사이이지요. 그런데 그 목사님이 저와 아내를 보자마자 다짜고자 반말로 인사를 하는 겁니다. 아내와 저는 많이 놀랐습니다. 그러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서로 존중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기분이 나쁘던지요. 열이 확 올라옵니다. 기분이 상합니다. 그 목사님의 태도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습니다.

   제 방에 돌아와서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나를 존중해 주지 않은 것에, 내가 누군데..라는 제 마음 속의 교만이 저를 화나게 한 것입니다. 내가 아직도 많이 교만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목사님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얼마나 반가우면 그러셨을까? 30년 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표현한 반가움이었겠구나... 이해가 됩니다. 다음 날 다시 그 목사님을 만났을 때에는 제 안에 미움이 아니라 이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원수 맺기는 참 쉽습니다. 여러 원수가 우리 앞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십니까? 진짜 원수는 바로 나입니다. 내 안에 엣 사람이, 내 안의 미움이, 내 안의 자존심이, 내 안의 가짜가 사실은 진짜 원수입니다.

 

 < 목사님 나는 교회 안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 싫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봅니다. 대부분 그 분들이 목소리가 큽니다. 사람이 참 이상합니다. 교회 안에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잘 생각해 보세요. 교만한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이 싫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데 인정받는 사람이 싫어요. 내가 가장 큰 원수입니다. >

 

  진짜 원수를 알기 시작할 때 우리의 영적 눈이 열립니다. 내 안의 원수를 발견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무엇을 미워하고 무엇을 사랑할 지를 분별합니다. 내 밖의 원수보다 더 큰 원수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내 밖의 원수를 미워하며 살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원수와 싸워야 함을 깨닫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내 안의 원수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밖의 원수보다 더 큰 원수가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할 때에만 우리는 밖의 원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29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도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예수님 자신에 대한 말씀이신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원수에 매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서, 진짜 원수는 알지 못한 채 원수 맺는 삶을 중단하지 않는 우리를 위해 뺨을 맞으시고, 우리 때문에 속옷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거부하는 우리를 사랑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원수 사랑입니다.

 

 

2. 받고자 하는 대로 살아 보시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우리들의 삶이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도 자신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할 줄 알고, 선대하는 사람에게는 선대해 줄 줄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그들과 같다면 우리가 그들과 다른 것이 무엇이며, 과연 하나님 믿는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세상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는 세상적인 삶에서,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과는 원수를 맺는 세상에서 우리들에게 다른 삶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세 가지로 말씀해 주십니다.

  1)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32)

  2) 자기에게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는 것(33)

  3) 받기를 바라고 빌리는 것(34)

 

  한 마디로 내 욕심대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대로 사랑해주고, 내가 바라는 대로 잘해주고, 내가 받기를 원하는 대로 받아야 하는 삶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과 상대방이 원하는 삶이 똑같으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삶이 되지 않으면 원수를 맺는 것입니다.

 

 < 촌년 10만원이란 수필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아들을 키워서 판사까지 만든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유일한 자랑거리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농사지은 것을 아들에게 가져다주러 아들 집에 갑니다. 아들 집에 도착해보니 며느리는 없고 집 안은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습니다. 기쁜 마음에 어머니는 아들 집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구경합니다. 안방에 가보니 역시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는 데 화장대에 며느리의 가계부가 보입니다. 모든 항목들이 잘 기록되어 있어 역시 며느리가 살림을 잘하는구나 마음이 뿌듯합니다. 그런데 잘 보니 매 달 눈에 들어오는 항목이 있습니다. 촌년 10만원이라는 항목입니다.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가 하였지만 금방 그 뜻을 알고서 어머니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습니다. 어떻게 돌아왔는 지 모르게 시골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시골집으로 돌아가버린 어머니를 통해 그 이유를 알게 된 아들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크게 사과를 하고는 결국 어머니의 용돈을50만원으로 올려드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역전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원리와 다른 말씀입니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아 원수를 맺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원하는 삶을 다른 사람에게 먼저 해주라고 하십니다. 받고자 하는 대로란 나의 기대, 나의 소망, 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먼저 해주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원하는 삶을 먼저 해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 무엇입니까?

  1)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2) 이해받기를 원합니다.

 

  왜 이런 말씀이 나옵니까? 바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해 주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를 이해해 주십니다. 그런데 인정과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것이 안 되서 원수를 맺습니다. 목사와도 원수를 맺자는 분들이 계시니 할 말이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목회하면서 이런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 제 얘기 어떻게 아시고 제 비밀을 설교 때 얘기하실 수가 있나요?라는 말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 사실이 아니라고 변명도 해 보았습니다. 아니 제가 어떻게 그 분 개인의 비밀 하나를 다루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을까요? 수많은 교우들 다 놔두고 그 분만을 위해 그것도 그 분을 공격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해드립니다. 제가 집사님 한 분만을 위해 집사님 한 분에게만 메시지를 드리기 위해 설교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집사님이 그렇게 들으셨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기 위해 들려주시는 소리가 아닐까요? 그러나 저의 바램과는 반대로 저의 그런 말을 듣고서 네 목사님 알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상처를 받았다고 하시고, 상처가 씻어지지 않는다고 하세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받고자 하기만 했지 받고자 하는 대로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원수가 깨어지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잠언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잠언 25:21-22)

  히브리어 표현 아무개의 머리에 핀 숯을 올려놓다라는 말은 아무개를 몹시 부끄럽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로부터 보복이 아닌 선대를 받을 때 그 가해자는 차라리 보복을 당하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은 심정이 될 것이므로 그러한 선대는 그 가해자에게는 견딜 수 없는 심판과도 같을 것이란 뜻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9-21)

 

  사도 바울은 마지막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보여주셨고, 제자들이 따라갔고, 초대 공동체 전체가 그렇게 살아냈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고 계십니다.

 

 결국 받고자 하는 대로 누구에게 받고자 하는 대로입니까? 원수에게서요? 아닙니다. 진짜는 하나님에게서입니다. 사람에게 받고자 하는 대라 해주는 삶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는 삶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행동은 하나님께 받고자 하는 대로여야 합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받고자 하는 대로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못했을 때 용서해주고, 우리가 약하더라도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원수에게 그렇게 하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3. 원수 사랑의 새로운 능력, 헤아림의 변화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가운데 38절의 중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느냐? 이 말씀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헤아림에 따라서 우리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원수로 헤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수를 만들며 사는 사람입니다. 나하고 맞지 않아서, 나를 반대해서, 나를 거역한 사람들과 원수를 맺습니다. 원수 맺기가 끝이 없습니다. 헤아림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다.

 

 헤아림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과 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과 같은 사람입니다.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과 싸웁니다. 다윗을 꺽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반대입니다. 사울과 싸우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람과 싸우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싸웁니다. 하나님과 문제를 풀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람과 싸우십니까? 하나님과 싸우십니까? 사람과 싸우는 사람은 사람과 싸우면서 해결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해결은 일어나지 않고 다툼과 절망만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싸우는 사람은 하나님과 싸우면서 경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보고, 자신의 약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싸우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해결이 아니라 변화를 경험합니다.

 

  헤아림이란 하나님과 헤아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서 내 생각으로 해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싸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싸우는 자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38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     겨주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헤아려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헤아림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헤아림에서 하나님의 헤아림으로 변화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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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e Good Detroiters
설교일 : 2019.08.11
본문말씀 : Luke 10:30-37
설교자 : Rev. Eung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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