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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으로 소망을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6-07 (금) 09:53 조회 : 191
설교일 : 2019.06.02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마가복음 5:25-34

소망으로 소망을

마가복음 5:25~34

 

 

< 몽골에 갔더니 몽골 사람들의 눈이 엄청나게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좋은 것이 아니라 탁월하게 좋습니다. 1.5, 2,0 이런 것이 아니라 5.0, 10.0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눈이 좋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몽골 사람들은 유목민으로 양과 염소, 소를 키우면서 늑대같은 동물들의 습격을 대비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위험이 있는 지를 보기 위해 멀리 산등성이를 보는 습관들이 있다는 겁니다. 늘 멀리를 보다보니까 자연히 눈이 좋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멀리 보는 능력이 그들의 눈을 좋게 했다는 것입니다. >

 

 저는 몽골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눈이 좋은 사람이 있고, 눈이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멀리 보는 사람이 있고 멀리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일어나는 작은 일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눈이 나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눈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또한 자기 눈으로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이 나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눈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야 합니다. >

 

< 사무엘하를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동생 다말 때문에 다윗의 장자 암논을 살해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압살롬은 왜 그렇게 원수를 갚으려고 했을까요?사무엘서를 보니 압살롬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이러한 외면과 달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암논을 살해하고 맙니다. 압살롬은 길게 보지 못했습니다. 눈 앞의 원수를 갚은 일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다윗의 마음을 조금만 헤아렸다면 어땠을까요? 그런데 압살롬은 그러질 못했습니다. 길게 보는 능력이 압살롬에게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의 비극은 동생 다말의 강간 사건이 아니라 멀리보지 못함 때문입니다 >

 

< 여러분과 저는 어떻습니까? 멀리 보고 계십니까? 길게 보고 계십니까? >

 

  신앙생활은 멀리보기 훈련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배우고 그 눈으로 우리 인생을 다시 보는 것이 신앙훈련입니다. 길게 멀리 보는 훈련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바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 12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마가사도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과 함께 멀리보십니까?

 

   우리가 여자의 이야기에서 발견하는 것은 절망입니다. 여자의 절망의 이유를 성경은 자세히 말씀합니다. 제가 묵상해보니 이런 이유입니다.

 

   1) 12년이 되었습니다.(25)

      긴 시간입니다. 잠간 절망이 아니라 오랜 절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절망이 깊으면 어떻게 됩니까? 소망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여자의 상태가 이렇습니다.

 

   2) 노력의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26)

      여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노력했습니다. 의사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여러 의사를 찾아가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의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오히려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나빠졌다는 것입니다.

 

   < 제가 위기 부부를 상담할 때마다 상담의 고통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입니다. 목사님 나아지질 않습니다. 목사님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상담하던 저도 아픔을 느낍니다. 상황이 나쁜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절망입니다. >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여자의 삶에 충분한 절망의 이유와 조건이 충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여자가 스스로 자신을 보기에는 어떠해야 합니까? 이 정도 상황이라면 여자는 완전히 포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27절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여자는 돌에 맞을 각오를 하고 사람들 가운데로 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것입니다. 율법에 부정한 여자는 돌로 치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여자는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서 예수님의 옷을 만지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소망입니다. 여자는 자신의 상황을 절망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삶에서 소망을 봅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났고 그렇게 실패했지만 여자는 소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 보는 것이 그 사람의 삶입니다. 이번에 엠마오에 가서 그리고 연회에서 많은 목사님들을 만났습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깨닫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떻게 보느냐가 그 사람의 목회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회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을 때 어떤 목사님은 부정적인 이야기만 합니다. 물론 부정적인 것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목사님을 보면서 그 분의 눈을 생각합니다. 반대로 어떤 목사님은 자기 목회의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교인이 몇 명이냐고 물었더니 13명이랍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제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 눈동자가 살아있습니다. >

 

  소망이란 그저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소망은 자기 인생에 대한 해석이며 자기가 보는 것에 대한 고백입니다. 우리가 여자에게서 배우는 것이 이것입니다. 여자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절망대신에 소망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해석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오늘이 아니라 멀리 하나님이 일으키실 미래를 바라봅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소망과 희망의 차이를 배웁니다. 희망은 막연한 기대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희망입니다. 안 일어나면 말고!!!라는 마음이 들어있어요.

  그런데 소망은 다릅니다. 소망은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소망은 하나님과 함께 멀리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내 삶에서 작동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 자신의 상황과 환경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에는 구체적인 행동이 있습니다. 결단이 있습니다. 여자의 모습을 보십시오. 여자는 소망으로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서 예수님의 옷을 만집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희망의 사람이십니까? 소망의 사람이십니까?

 

 

  

 

2. 소망으로 이기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소망이 하나님의 눈으로 멀리 보는 것이라면 소망을 단순히 보는 것이라고만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에서 소망은 이기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기지 못하는 사람을 소망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소망의 크기가 클수록 이기는 능력도 커야 합니다.

 

  여자도 이긴 것이 있습니다. 절망적 상황입니다. 어려운 자신을 상황과 환경을 이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정말로 이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입니다. 본문의 여자의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그런 말씀입니다. 여자가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이었을까? 그랬을 것입니다. 혈루증은 단순한 병이 아니라 사람들 곁에 가까이 갈 수 없는 병입니다. 예배에도 나갈 수 없는 부정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혈루증이 나을 때가지 사람들 가운데 있을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느꼈을 여자의 어려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충분히 사람들이 참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진짜로 어려운 것은 사람들보다 아마도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 여자의 마음에 소망이 일어났지만... 그 소망대로 움직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가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믿음대로 했다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자가 가장 두려운 것은 아마도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 제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 교회 청년 중에 경찰 시험에7번을 떨어진 자매가 있었습니다. 필기는 항상 다 붙습니다. 체력장에서 떨어집니다. 남들하고 반대지요. 그런데 타고난 체력이 약하니 잘 안됩니다. 사람들이 그럽니다. 이번 그만 포기해! 그 소리듣기가 정말 힘들었다는 겁니다. 8번째 시험을 보는 데 사람들이 또 그럽니다. 어머니까지 그럽니다. 그만두어라! 너무 보기 안쓰럽다! 그런데 자매가 정작 힘든 건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소리였답니다. 이번에도 안되면 어떻게 하지? 자기하고 싸움이 제일 힘들었다고 고백합니다. 드디어 8번째 시험에 붙었습니다. 시험에 붙고서 자매가 한 말이 있습니다. 붙은 것보다 나를 이기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

 

  오늘 말씀이 10절인데... 그 중에서5절이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자신을 이길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찾으시기 시작합니다. 누구냐?는 것입니다. 내 옷에 손을 댄 자가 누구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까지 당황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으냐고 물으십니까?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에 손 댄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소망으로 자기를 이겨보려는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옷에 손을 댄 자가 아니라 자신의 절망의 상황을 넘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를 아시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는 자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은 이기는 훈련을 포함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진짜 소망이 있다면 여러분은 이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거룩한 삶을 살려고 했다면 여러분에게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가졌다가 쉽게 내려놓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겨야 하는 것을 이기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런 소망을 우리는 가짜 소망이라고 부릅니다. 소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소망이 아니라 막연한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희망은 언제나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진짜 소망을 이기는 것입니다. 성경도 바로 이 싸움에서 이긴 자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여자를 향한 예수님의 칭찬으로 끝납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소망을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짜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망으로 이겨야 하는 것을 이기며 사는 삶이 진짜 믿음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3. 소망의 근육을 키우고 계십니까?

 

  소망도 습관입니다. 소망하는 사람은 늘 소망을 합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절망하는 사람은 늘 절망합니다. 소망의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 있고, 절망의 습관이 몸에 배인 사람이 있습니다.

 

  < 지난 주에 엠마오 캠프에 가서 어떤 청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 청년이 간증을 하면서 그럽니다. 작은 교회에서 홀로 사역하는 것이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는데 이곳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자기만 혼자서 사역한다는 외로움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괜찮아졌다는 것입니다. 그 청년의 간증을 들으면서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청년인데 아직 자기 신앙도 세우기 힘든 나이인 데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그 청년은 그런 체험 때문에 앞으로 많은 날들을 이겨나갈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에 넘어지지 않고 일어나는 습관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근육이 생긴 것입니다.  >

 

  그러나 자신의 상황에 쉽게 절망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조그만 상황에도 낙담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소망의 근육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근육은 훈련을 통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번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하고 이겨보고 또 다시 소망하고 이겨보는 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망하는 근육을 키우는 것입니다.

 

< 프로 운동 선수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운동은 근육을 만드는 작업이란 것입니다. 평소에 그 운동에 맞는 근육을 키워놓으면 실전 경기에서는 그 근육대로 하게 된다는 겁니다. >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망도 근육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소망하는 훈련을 해놓은 사람은 그 근육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도 소망의 사람으로 서는 것입니다.

 

< 사울과 다윗의 근육 >

  사울 왕 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소망의 근육이 없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절망의 사건에도 크게 낙담을 합니다. 그리고는 넘어집니다. 반대로 다윗 같은 사람을 보세요. 뭐가 다른 겁니까? 소망의 근육이 달라요? 왜 다를까요? 사울은 쉽게 왕이 되었습니다. 외모가 잘나서 운이 좋아서 왕이 되었어요. 고난의 시간을 지나면서 소망의 근육을 키울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역경이 닥쳐왔는데 소망의 근육이 없으니 버텨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달라요. 소망의 근육이 있어요. 버틸 힘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소망을 내려놓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예요. 그런데 그런 일을 겪으면서 다윗에게는 근육이 생긴 겁니다. >

 

 <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나자 다윗은 예루살렘 성에서 나와서 피난 길에 오릅니다. 주위에 군사도 많고, 천혜의 요새 예루살렘 성도 있고, 하나님의 법궤도 있고 무엇보다 아직 백성들이 다윗을 따릅니다. 그런데 다윗이 법궤도 다시 예루살렘으로 보내고... 군사들도 돌아가게 하고, 광야 길로 행합니다. 왜 그럴까? 이것이 다윗의 근육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일어난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근육으로 자신의 고난을 통과합니다. 이것이 사울과 다윗의 다른 점입니다. >

 

  여러분은 어떤 근육을 키우고 계십니까? 절망의 근육을 키우고 계십니까? 비판의 근육을 키우고 계십니까? 소망의 근육을 키우십시오. 믿음의 근육을 키우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에게 진정한 축복의 삶을 선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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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Our worship should be lifted up
설교일 : 2019.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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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Rev. Eung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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