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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하나님이 계신 관계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1-28 (월) 08:22 조회 : 123
설교일 : 2019.01.27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빌레몬 서 1:8-14

용서시리즈 4

용서, 하나님이 계신 관계

빌레몬서 1:8-14

 

 

잘산다!

무엇이 잘사는 것입니까?

잘 산다는 것은 사이가 좋다는 것! 관계적인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넉넉해도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면 잘 산다고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물질적으로 조금 어려워도 부부 사이만 좋다면 잘 산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잘 산다?

어떤 관계 안에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보고 잘 산다고 합니까?

물질적으로 넉넉한 사람입니까? 건강한 사람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잘 산다는 정의를 그렇게 내리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잘 산다는 것은 우리 사이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사이에 계실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를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 필리핀 목회 3년차 즈음에 저는 허리가 몹시 아파서 두 달을 누워있었습니다.

  예배가 있으면 잠시 일어나서 예배를 드리고는 다시 사택에 와서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허리 고통이 말도 못할 정도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지만 일어나고 누울 때, 차를 탈 때와 내릴 때 그 고통이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러던 때에 초교파 연합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교인들을 모시고 가야해서 큰 밴을 몰고서 교인들을 픽업하고 집회 장소로 가야했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교인들을 픽업해서 집회에 도착을 했더니... 부흥 강사의 모습을 보고서 저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얀 양복에 빨간 넥타이 머리는 올백으로 넘기고 흰색 구두를 신은 목사님이 그 날 강사였습니다. 저는 기대를 접었습니다. 설교 내용도 좋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설교를 다 끝낸 목사님은 부흥사들의 레파토리대로 아픈 부위에 다 손을 얹고 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앞에 앉은 교인들이 다 저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저는 허리에 손을 대고서 기도를 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어떻게 운전을 해서 집에 왔는 지 모릅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려고 땀에 젖은 옷을 벗는 데 갑자기 아내가 당신 허리 좀 봐요라고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저의 허리에 면도칼로 선을 그은 것처럼 빨간색 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피가 맺혀있었는 데 건드리면 곧 터질 것 같았습니다. 어쩐 일인가 놀라기는 했지만 조심스레 샤워를 하고 잤는 데... 놀라운 일은 그 다음 날부터 허리가 전혀 아프지 않은 겁니다. 정확히 일주일만에 딱지가 떨어지듯이 그 빨간색 줄이 떨어졌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부터 흰색 양복 입은 부흥사들을 조심합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사실 저의 진짜 체험은 허리가 낫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체험은 저로 하여금 제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고백을 가지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제 안에 계심을 분명히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보십시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세 사람의 이야기, 즉 주인의 돈을 훔쳐 달아난 노예 오네시모와 주인 빌레몬, 그리고 사도 바울의 이야기입니까?

단순히 사도바울의 권면으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했다는 이야기입니까?

아닙니다.

세 사람의 이야기 속에 있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관계입니까? 그들은 어떤 관계입니까?

저는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용서 시리즈를 나누고 있는 데... 용서가 무엇입니까?

용서, 하나님이 계신 관계입니다.

 

용서를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 달 동안 용서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용서하냐는 것이지요? 왜 용서해야 하냐는 것이지요?

 

용서는 우리들의 삶에 용서보다 더 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빌레몬이 어떻게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었는가?

  빌레몬 속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용서를 말하는 자가 되었는가?

  사도 바울의 인생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놀라운 일이 그들로 하여금 용서의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용서입니다.

 

그들 안에 찾아가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일으키신 일 때문에 그들은 용서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이 이 갈등의 문제를 풀어가면서 고백하는 세 말씀을 유심히 들어야 합니다.

 

 

1. 나는 사랑을 인하여 간구합니다.

 

  사도 바울과 빌레몬의 관계 교회 개척자와 성도의 관계입니다.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명령할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또한 마땅한 일이기에 명령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일이 그렇게 다루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사랑을 인하여 간구한다.(9)

   무슨 사랑을 인하여 간구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이 바울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오히려 예수를 대적하던 바울을 변화시키신 사랑입니다.

     바울은 그 사랑 때문에 사울의 삶을 버리고 바울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만난 예수님의 사랑은 오히려 넘어진 자를, 쓰러진 자를 일으키는 사랑입니다.

     바울은 그 사랑에 대해서, 자기를 일으킨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변화시키고 빌레몬을 변화시킨 그 사랑을 인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것, 빌레몬 안에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인하여 간구한다는 것입니다.

  오네시모의 일도 그렇게 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오네시모 안에 들어가셨으니 오네시모도 그런 눈으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용서는 이런 것입니다.

  용서할만하기 때문에 하는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할 수 있기에 하는 용서가 아닙니다.

  나도 변화시키신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그 사랑으로 누구나 변화될 수 있다고 하는 고백이 있다고 믿기에 주님께 맡기는 것이 우리의 용서입니ㅏㄷ.

 

결국 내 안에 무엇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바울과 빌레몬은 자기 안에 계신 예수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곳에 나면서부터 못 걷는 이가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합니다.

  아무도 그 사람을 일으킬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말합니다.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나 혼자의 능력으로, 내 경험으로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시는 이의 능력으로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고 있는 용서도 바로 그런 사람들의 것입니다.

  용서, 하나님이 계신 사람들의 것입니다.

 

 

2. 나는 무익에서 유익을 바라봅니다.

 

11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답니다.

 

  밥 콘이란 사람의 정의입니다.

  거미와 같은 사람, 개미와 같은 사람, 꿀벌과 같은 사람입니다.

   1) 거미와 같은 사람 남을 이용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2) 개미와 같은 사람 일은 열심히 하지만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3) 꿀벌과 같은 사람 열심히 일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전에는 무익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주인의 물건을 도둑질해서 배반하고 또 잘못을 저질러서 감옥에 갇힐 정도로 사람

  유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입니다.

  죄 가운데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무익하던 사람이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 안에 일어난 유익을 보라고 말합니다.

  자신도 빌레몬도 예수를 모시기 전까지 무익한 사람이었는 데... 유익한 사람이 된 것처럼

  오네시모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레몬아! 오네시모를 용서해!가 아닙니다.

  빌레몬아! 오네시모 안에 일어난 하나님의 일을 보라!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무익을 보는 분들입니까? 유익을 보는 분들입니까?

    이상하게 무익한 것을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자회를 합시다. 그랬더니... 목사님 해봤는 데 잘 안됩니다.

    뭐가 안되었습니까? 그랬더니... 수익이 별로 없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결국 교인들 주머니 털기에요.

    우리가 애쓰고 우리 돈 쓰는 겁니다. 사람들은 잘 오지도 않습니다. 무익해요!!!

    그래서 안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유익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바자회하느라고 함께 어울리지 못했던 선교회원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어서 유익하고

    바자회하느라고 함께 준비하고 땀을 흘리느라 보람을 나눌 수 있어서 유익하고

    바자회하느라고 찾아와주는 한 영혼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을 수 있어서 유익하고

    유익을 따지자니 한도 없습니다. >

 

  그런데도 무익을 보는 분들은 늘 있습니다.

   

  용서란 무엇입니까? 유익한 것을 보는 일입니다. 즉 소망을 보는 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 안에 일으키신 소망을 보는 눈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에게서 하나님이 일으키신 소망을 보았습니다.

  오네시모 안에서 일하시기 시작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 눈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아십니까?

 

  < 사춘기 자녀를 둔 한 집사님 저에게 그럽니다.

    목사님 아이가 너무 상처주는 말을 했답니다.

    아이에게 뭐라고 했더니 아들이 그러더랍니다.

    엄마나 잘 해요! 너무 속상하더랍니다.

    시간이 좀 지났어요. 제가 물어봤습니다

    집사님 아직도 많이 속상해요. 그랬더니 그 집사님이 그럽니다.

    네 뭘요 목사님 벌써 다 잊었습니다.

    왜 그렇게 빨리 잊습니까?

    교인에게는 잘못된 말 한마디만 들어도 몇 달을 가는 데... 내 자녀에게 들은 말은 왜 그렇      게 빨리 잃어버립니까? 소망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유익을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소망을 보는 사람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용서는 잘못한 사람이 찾아와서 우리에게 용서를 빌기에 해주는 용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삶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 소망을 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용서입니다.

 

 

3. 나는 억지가 아니라 자의로 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세 번째로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14이 모든 일이 억지가 아니라 자의로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일에는 억지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용서는 누가 억지로 시켜서 될 일이 아니란 뜻입니다.

  그래서 자의로라는 말을 합니다.

 

자의로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빌레몬 안에서 어떤 일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 역사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 전북 김제 금산교회

   1905년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였던 테이트의 김제 선교 마을 유지 조덕삼의 영접

   양반에다 부농이었던 조덕삼은 토지를 내놓고 헌금을 해 교회를 지었다.

   교인이 없어 조덕삼은 집안의 식솔들과 하인들까지 데리고 출석을 했다.

   시간이 지나...교회가 부흥되고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지게 되자 장로를 선출하기로 했다.

   장로 후보로 두 사람이 추천되었다.

   한 사람은 조덕삼집사, 한 사람은 조덕삼의 마부였던 이자익집사였다.

   그런데 투표에서 그만 이자익 집사가 조덕삼집사를 누르고 장로로 선출되었다. 이변이었다.

   조삼교회의 재정의 대부분은 조덕삼 집사의 헌금으로 유지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조덕삼 집사는 이자익 장로를 깍뜻이 장로로 모셨다.

   "우리 금산교회 성도님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         영수(장로보다 낮은 직분으로 교회의 행정과 설교를 맡아서 하는 직책)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훨씬 높습니다. 그를 장로로 뽑아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당시에 하인이란 하인의 자식은 팔아도 되고, 첩으로 삼아도 되고, 죽여도 별 문제가 될 것     이 없는 시대였다.

   그러나 조덕삼 집사는 자신의 집 마부를 장로로 존중하며 온전히 순종하였다.

   나중에 이자익 장로가 신학을 공부하고 그 교회의 담임목사로 오게 되었을 때도 조덕삼 장     로는 이자익 목사를 진심으로 섬겼다. >

 

  조덕삼 집사는 국회의원 조세형의 할아버지입니다.

  이자익집사는 나중에 총회장까지 지낸 유명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자의로?가 무엇입니까?

  자의는 하나님이 시키시는대로 하는 것입니다.

  자의는 내 뜻대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빌레몬이 결정하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신 자로서 빌레몬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하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당부를 우리들 모두에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입니까?

  용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용서가 무엇입니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로 하게 하시는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 한국 기독교인들

    세로 십자가, 즉 하나님과 나 사이의 문제에 있어서는 놀랍도록 은혜가 있습니다.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 특별기도회에 열심히 참석합니다.

    나의 문제, 가정의 문제, 사업의 문제를 놓고서 작정으로 기도합니다.

    수직적인 문제에 있어서 늘 은혜 받기를 사모하고 은혜의 자리에 나아갑니다.

    최고입니다

 

  그런데 한국교인들이 잘 못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세로십자가입니다.

    관계의 문제입니다.

    잘 못합니다. 어려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

 

우리의 관계 속에 예수님을 모셔들이십시오.

  우리의 관계 안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하나님이 이끄시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이 이끄시는대로 가십시오. 용서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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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Jesus comes to us, riding on a donkey
설교일 : 2019.04.14
본문말씀 : Matthew 21:1-11
설교자 : Rev. Eung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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