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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처럼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1-21 (월) 20:29 조회 : 56
설교일 : 2019.01.20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요한 복음 21:15-18

190120 주일설교(용서시리즈3)

 

용서처럼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요한복음21:15~18

 

용서는 어떤 윤리적 행동이 아닙니다.

용서는 영성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우리가 어떤 법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세 가지 법이 있습니다.

세상의 법, 도덕법, 하나님의 법입니다.

세상 법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양평에 첫 목회를 나가서 전도를 나갔더니 동네 주민 분이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갈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그 법 없이도 살아간다는 사람도 도덕법을 들이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모님을 정말로 공경합니까?라는 도덕적 질문 앞에서 세상 법 아래서 의롭다던 사람은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은 세상 법보다도 도덕 법보다도 더 높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도저히 할 수 없는 수준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속할 때에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법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 김현석 교수님 이야기

  신학교 교양 영어를 가르치시던 교수님이 계셨다.

  대머리에 인자한 미소를 가지신 목사님이셨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해 주신 자신의 이야기가 평생 내 마음에 남는다.

  공부 잘하는 신학생으로 군목 시험에 합격하고 군목이 되셨단다.

  선발 집단이라는 생각에 자만심이 높으셨단다.

  군목으로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입대해서 새부대에 배치를 받으셨단다.

  그러나 군목으로 사는 삶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삶이셨다.

  군대 목사가아니라 정훈장교로서의 삶이었단다.

  사병들의 상태를 보고하고 상담하고 지휘관 회의에서 부대의 한 부서인 정훈 분야를 맡은 장교로서의 삶이셨단다.

  그러던 어느 날... 부대에 또다른 군목이 왔다.

  이 군목의 모습은 놀라운 것이었다.

  계급장을 떼고 그 자리에 십자가를 달았다. 분명 군목인데 그 모양이다.

  인사도 거수 경례를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할렐루야를 외친다.

  누구를 보아도 할렐루야. 부대 책임자인 연대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불편했단다.

그러나 그가 오자 부대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군목은 어느 곳에서나 아무하고나 누구에게나 기도해주는 사람이었다.

  지휘자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작하시지요라고 연대장에게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부대원 모두가 그를 군목이 아닌 목사님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연대장도 지휘관 회의 때 목사님... 먼저 기도해 주시지요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단다.

  김현석 교수님은 아닌 김중위였던 우리 선생님은 너무 당황했다고 한다.

  자신은 여전히 거수경례하고 정훈 장교로 지내는 데 나중에 온 그 목사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선생님에게 인생을 바꾸는 일이 되었다고 하신다.

  그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

 

용서를 여러분과 나누면서 용서를 세상의 법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용서를 도덕적인 윤리로 말씀드릴 수도 없습니다.

용서는 오직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영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구원의 모습이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바로 그 용서를 알려주십니다.

 

 

1. 찾아가시는 예수

 

   예수님이 베드로를 찿아가십니다.

   그 베드로는 누구입니까?

   14:66~72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에 끌려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을 이끌었던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였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기대와 달리 그곳에서 너무나도 초라하십니다.

   심문을 당하고 모욕을 받습니다. 빰을 맞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기대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절망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베드로를 알아본 대제사장의 여종이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그 다음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베드로가 부인한 것입니다.

    이 부인은 여종의 질문에 대한 부인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이제까지 믿어왔던 것, 따라왔던 것에 대한 부인입니다.

 

    세 번째 질문에는 베드로의 영혼이 다 털렸습니다.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했습니다.

   

    엄밀한 배교입니다.

    예수님께 가장 사랑을 받았던 수제자 베드로가 배반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배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못난 베드로입니까? 그렇지 어부 출신이라서 그래!라고 생각하실 것입니까?

    저는 베드로의 배반이 우리의 실존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베드로처럼 죽음 앞에서 연약할 수밖에 없는 두려워하는 인간이 아닙니까?

    나의 이익 앞에서 믿음을 내려놓는 연약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이 찾아가시고 계십니다.

    배반 당하신 예수님이 배반한 베드로를 찾아가시고 계십니다.

    상처 받으신 예수님이 상처를 준 베드로를 찾아가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과 반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용서입니다.

 

   < 한국 기독교150년 역사에 역사 속에 슬픈 두 가지 일이 있다.

     이 때문에 한국 교회가 분열의 아픔을 겪었다.

     (1) 일제 시대의 교회의 신사참배 문제

     (2) 6.25 동란 때 교회를 지킨 이들과 교회를 떠나 피란을 갔던 이들의 문제

    

     (1) 일제 시대가 끝나고 신사 참배를 한 목사들과 그렇지 않았던 목사들이 갈라졌다.

     (2) 피란을 갔던 목사들과 남았던 목사들이 갈라졌다 >

 

   한국교회는 이 문제들로 갈라지고 분열했습니다. 용서하지 못함의 비극입니다.

   역사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용서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가십니다.

   배교한 자를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온전하지 못한 자, 오히려 배교하고 돌아서 있는 자를 찾아가십니다.

 

그래서 용서는 위대한 발걸음입니다. 우리가 용서의 발걸음을 뗀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법 아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2)

   예수님 스스로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물으시는 예수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그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왜 이렇게 물으셨을까요?

 

   1) 왜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셨을까요?

      왜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으셨을까요?

 

      베드로는 지금 자존감이 아주 낮은 상태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반한 뒤입니다.

      예수님을 뵐 면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 어떤 신학자들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는 부름이 베드로의 모습에 대한 지적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옛 사람으로 돌아간 베드로의 모습에 대한 지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해석이 복음에 어긋난다고 봅니다. >

 

    예수님이 시몬아...라고 부르시는 것은 내가 다시 너를 부른다는 뜻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이 부르실 때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죄하기 위해 찾아가셨다면 주님은 가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로 하여금 주님이 처음 부르셨을 그 때를 생각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 마음이 뜨거웠던 그 때를 생각하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너의 실패한 모습, 넘어진 모습이 아니라 너의 은혜받은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 죄 지을 가능성과 은혜 받을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을 붙드시는가?

       예수님은 은혜받을 가능성을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주님의 생각 때문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찾아가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 예수님은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까요?

       네가 왜 배반했느냐?고 물으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배반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질문을 하십니다.

 

       세 번씩이나 같은 질문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 예수님은 이렇게 물으시는 것입니까?

 

       이 질문을 받는 베드로는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래서 베드로는 주여 아십니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책망하시고 배반자라고 하셨다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책망대신 사랑을 묻고 계십니다.

 

       왜요? 왜 예수님은 사랑을 물으십니까>

       목적이 있으셔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베드로의 회복입니다. 베드로의 일어섬입니다.

 

    베드로를 일으키시는 것은 책망이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어떤 미국 선교사님이 한국에서 추운 겨울 다리를 건너는 데 다리 밑에서 아이 울움 소리가 들립니다. 선교사님은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놀라운 광경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어떤 여자가 발가벗은 채 자신의 옷을 다 아이에게 돌돌 감아놓고는 얼어 죽어 있는 겁니다. 선교사님은 그 여자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이 아이가 사춘기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선교사님을 괴롭힙니다.

        우리 엄마는 어디있느냐고 날마다 묻습니다.

        20살이 되면 이야기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20살이 되었습니다. 약속한 때가 되었다고 아이는 또 선교사님을 조릅니다. 선교사님은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리로 갔습니다. 아이를 다리 밑으로 데리고 가서 한 무덤 앞에서 아이에게 엄마 이야기를 해 줍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아이는 선교사님에게 이야기 합니다. 멀찍이 떨어져 있어 주세요. 선교사님이 멀리 떨어져서 보니... 아이가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합니다. 하나씩 벗어서 엄마의 무덤에 덮습니다. 다 벗어서 엄마에게 덮습니다. 엄마 얼마나 추웠어? 엄마가 나를 버린 줄 알고 너무 힘들게 살았는 데 이제는 괜찮아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는 위대한 엄마예요!

   아이는 미국에 돌아 와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최선으로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를 감동시키십니다.

예수님은 책망 대신 용서를 선택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베드로를 만든 것입니다.

 

용서는 사람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3.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말씀입니다.

    넘어져 있는 자에게 찾아가신 예수님이...

    그를 용서하시며 그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가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용서하신 이유입니다.

 

    그것도 어린 양입니다.

     어린 양은 성숙하지 못한 양입니다.

     매일 같이 돌보아주고 먹여주어야 하는 양이 어린 양입니다.

 

    이 놀라운 사명을 누구에게 맡기시고 계십니까?

     부인하고 넘어졌던 베드로입니다.

     실패하고 낙담했던 베드로입니다.

    그 베드로에게 어린 양을 맡기는 중대한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 어린 양을 맡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누가 교회 안의 연약한 성도를 맡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떤 사람이 연약한 자들의 아비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넘어졌던 자입니다.

     용서받은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용서받은 자가 연약한 자를 돌보는 것입니다.

 

잘 난 사람이 아닙니다.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용서받은 자가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는 위대합니다.

예수님의 용서에는 우리가 꼭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용서를 통해서 베드로가 일어난 것만이 아닙니다.

용서를 통해서 예수님은 또 다른 용서를 만들고 계십니다.

용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가시고 베드로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선택이 남았습니다.

용서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계속해서 비난하시겠습니까?

아직도 저에게 오셔서 그 사람 어떻다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 앞에 가셔서 용서하겠다고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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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A church where the spiritual growth is taking place
설교일 : 2019.02.10
본문말씀 : Luke 6:37-45
설교자 : Rev. Eung 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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