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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9-01-15 (화) 22:09 조회 : 76
설교일 : 2019.01.13
설교자 : 김응용 목사
본문말씀 : 마태 복음 18:21-22

용서시리즈 2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마태복음 18:21-22

 

여러분 새로 온 목사가 마음에 드십니까?

길게 봐 주시겠습니까?

 

저에게 목회 스승이 계십니다. 최응희 목사님입니다. 최목사님 밑에서 교육전도사, 부목사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목사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목사님 박권사님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그러십니다.

  김목사 길게 봐 그 교인을 안 좋아하시나?

  또 제가 다른 교인 이야기를 해도 목사님은 똑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30초반이었는 데 목사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나 이제는 이해가 조금 됩니다.

  목사의 눈은 긴 눈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누군가는 교인을 긴 눈으로 바라 봐 주어야 하는 데 그 사람이 목사여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목사조차 짧은 눈으로    보면 그 교인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결국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  언젠가 머리를 깍으러 미용실에 갔더니...

   미용실 원장이 나에게 묻는다. 목사님 같으시네요. 목사님이시죠?

   내가 그렇다고 하자.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신다.

  

   우리 부모님이요 교회를 여러 개 세울 정도로 열심인 부모님이셨어요.

   그런데 형제 중 하나가 교회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또 한 자녀가 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단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한테 이러실 수가 있죠? 우리 부모님이 한게 있는 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 마음이 떠나질 않아요...

   목사들도 제일 싫어요!

   형제 장례식장에 한 교인이 고난에는 다 이유가 있을거야라고 위로하는 데 자기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답니다. 그 교인 자녀는 그 사고 속에서 살아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말도

     싫다는 겁니다.

   상처를 쏟아내는 겁니다.

   그리고는 형제들 모두가 교회에 다 안다닌답니다.

 

   목사님이시니까 뭐라고 해줄 말씀이 좀 없습니까?

   제 머리를 깍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놓는 겁니다.

 

그 날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 날 동안 그 분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첫째, 그 분에게 일어난 일이 안타깝고

   둘째, 그 어려움 때문에 신앙을 버린 것이 더 안타깝고

   셋째, 그분이 그런 마음으로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

 

그러나 미용실 주인만 그런가?

  상처를 경험하고 거기서 멈추어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분들의 고백이 이렇다.

  하나님 살아계신 거 맞아? 그렇다면 어떻게 내게 이런 고통을 주나?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보자!

신앙을 가진다는 것이 좋은 일, 기쁜 일을 보장해주는 것인가? 고통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인가?

   교회 다니면 좋은 일만 생기고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인가? 그것이 신앙인가?

 

성경이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인가?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엇인가?

 

  오히려 신앙이란? 별의별 험한 일 일어나는 인생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닌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가?

 

오늘 말씀도 예수님께서 베드로와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사람에 대해 말씀하시려고 하신다.

 

 1.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

 

    *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묻는다.

      형제가 나에게 범죄하면 몇 번씩 용서합니까? 일곱 번까지 할까요?

       예수님 당시의 랍비들은 세 번까지의 용서를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일곱 번까지 할까요?라고 질문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칭찬을 기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왜 일흔 번씩 일곱 번을 말씀하십니까?

       이것은 용서의 회수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교 랍비들인 용서의 회수에 매달릴 때...

       예수님께는 용서의 회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이 그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너무나 많다.

       그 함정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 진에 빠져 있다.

       교회 안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목회하는 곳마다 저 사람이 이해가 안되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씀하는 분들을 봅니다. >

  

   그런데 저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분의 삶을 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서하지 못하는 사람의 삶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살아가기 위해 용서하라(Forgive to live)라는 딕 티비츠의 책이 있습니다.

    10년 남짓 깊이 신뢰하며 다녔던 회사에서 하루 아침에 잘렸던 경험이 있다. 상심이 컸지만 다시 새 직장을 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생활했는데,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고혈압으로 약물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산다는 것이 전혀 가치 없다고 느꼈고, 자신이 화났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고, 인생을 향한 에너지도 흥미도 잃고 대부분의 시간을 의기소침한 상태로 지냈다. 그러다 용서를 위한 여러 단계와 절차를 밟고난 뒤 건강과 열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성경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보십시오 -> 용서하지 사람이 되었을 때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도 바로 용서의 이야기가 아닙니까?

      어느 날, 사울이 백성들이 하는 노래를 듣는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그 소리를 들은 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미워하기 시작한다.

      그 감정에서 떠나지를 못한다. 사울은 자기 인생의 나머지 대부분을 다윗을 미워하는 데 사용합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사울의 인생이 망가집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다윗은 다르다. 사울 왕을 미워하지를 않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고난의 길을 걸어 갑니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고난까지도 지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의 삶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 때문에 인생이 괴롭다.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용서가 무엇입니까?

 * 용서는 나에게 잘못한 누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복수하고 싶고, 분노하고 있는 감정에 매인 모습으로부터의 탈출입니다.

     용서는 용서하지 못하는 삶을 나 스스로 중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용서는 나의 일이지 상대방과 관계된 일이 아닙니다.

 

  < 억지로 용서했는 데...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서 더 분노하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내가 용서했는 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는 것입니다. 더 용서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서는 상대방과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 자신과의 문제입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과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용서는 나와하는 작업입니다.

   용서가 일어든 안 일어나든 상대방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용서하십시오. - 용서하는 사람!!!

 

   몇 번씩 용서해야 합니까?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가 잘못할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번... 두 번이다. 세 번째는 혼날 줄 알아라.

      그래서 두 번이라는 아버지의 소리가 떨어지면 그 때부터 조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제 아이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겁니다.

      한 번이다.... 한 번.

      두 번이다.... 두 번

      세 번째는 용서치 않는다!!!>

 

   왜 세 번 용서입니까?

     왜 율법에는 세 번 용서를 정해 놓았을까요?

     세 번 용서는 용서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악함을 막으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이랍니다.

     최소한 세 번까지는 용서하라고 하심으로 쉽게 복수하는 인간의 악함을 막으시려는 것이 었답니다.

     최소한의 규정입니다.

     한 번도 용서하지 않으려는 인간을 하나님이 아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율법을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세 번까지 용서하고 나면 복수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세 번까지는 참지만 그 후에는 철저하게 복수를 했다고 합니다.

     복수를 하고서도 정당하게 율법을 따라 복수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율법의 원래 의도는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세 번 참고 복수를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복수를 유보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복수하는 삶으로부터 용서하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시려고 하는 데

     사람들은 그 법조차 철저한 복수의 법으로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고 있지를 않습니까?

    내가 이번은 참는다.

    내가 교회 다니니까 참는다.

    오늘이 주일인 걸 다행인 줄 알아라.

    용서입니까?

      복수 준비 상태입니다.

      언제든지 상황이 달라지면 복수하려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것이 베드로가 말하는 일곱 번이 아닙니까?

    일곱 번 정도 용서했으면 충분하지요?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 했으니... 되었지요. 내가 랍비들보다 훨씬 더 낫지요?

    내 최선입니다. 내 한계입니다.

    더는 안되요!!!! 여기까지입니다. 세 번이나 일곱 번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용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랍비들의 말을, 베드로의 말을 뒤집으십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

    무슨 뜻입니까? 무한대의 용서입니까?

    7번 가지고는 부족하니 490번 용서하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용서하는 사람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원수 맺는 사람들을 향해 용서를 알려주십니다.

 

용서는 구원입니다.

  용서는 구원의 표시입니다.

   저 사람이 구원받았다 안 받았다를 어떤 것으로 아느냐?

   용서라는 저울로 안다는 것입니다.

   용서가 있는 사람...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구원 : 이 삶에서 다른 삶으로 건져냄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시려는 구원 용서하지 못하는 어두운 삶에서 용서하는 삶으로입니다.

 

<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얼음이 녹으면 뭐가 되지요?

    선생님이 기대한 답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이요

    그런데 한 유치원생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봄이 와요.

    용서가 녹아야 인생에 봄이 옵니다.>

 

 

3. 나와 같이 너희도

 

 

그런데 우리는 용서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경험처럼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뒤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예화가 나옵니다.

  왕이  말합니다. 그 몸과 아낸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팔아 갚으라

  그러나 갚을 것이 없 빚진 자가 엎드려 말합니다. 내게 참으소서

  갚을 것이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긴 주인이 그 빚을 탕감해 줍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 큰 용서를 받고나서 길을 가다가 자신에게 400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니 용서하지 않고 목을 조르며 감옥에 가둡니다.

  왕이 그 소식을 듣고서 다시 그를 가두고 말합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저누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용서는 은혜의 순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용서란...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용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서 하는 일입니다.

   

*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 주시는 용서의 정

    나와 같이 너희도 용서하라

     나와 같이입니다.

   

* 자신은 용서 받았지만 용서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용서는 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입니다.

     용서는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길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하신 첫번째 말씀을 아십니까?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십자가에 달려서 심한 고통 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커다란 대못이 살을 찟고 뼈를 통해 나무에 박히는 말로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에...

     가시면류관과 고문의 창끝이 날카로운 신경의 부분들을 자극하며 뼈의 마디가 어긋나고 아파서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는 순간에...

    더구나 로마 병정들은 침을 뱉으며 비웃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온 말씀이 바로 용서의 말씀이었습니다.

 

용서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용서의 복된 소식입니다.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니....용서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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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A church where the spiritual growth is taking place
설교일 : 2019.02.10
본문말씀 : Luke 6:37-45
설교자 : Rev. Eung 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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