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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 하라"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9-25 (화) 06:25 조회 : 65
설교일 : 2018.09.23
설교자 : 신태규 목사
본문말씀 : 야고보서 5:7-11

“주님 오실 때까지” (약 5:7-11)


큰 어려움을 뚫고, 사업을 재기한 한 사업가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자가 비결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업가는 품안에서 아내의 사진을 꺼내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기자가 대뜸,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극복하신거군요?”라고 물었습니다. 사업가는 정색을 하면서, “무슨” 화를 내면서 대답합니다. “나는 항상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이보다 더 큰 시련은 없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인내”입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동안에 인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길지 않거든요.

“인내” 인내라는 말은 인생의 경험담이나, 혹은 스스로 다짐하는 의미로 사용할 수는 있어도,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게 “인내하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말을 위로나 권면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아마 남의 일이라고 말 쉽게 한다고 느끼지 않을까요? 

“인내”는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귀에 별로 반가운 주제가 아니죠.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생각해 보죠.

우리가 사는 세상은 편한 것을 추구하죠. 빠르고, 쉬운 것을 추구합니다. 광고 중엔, “더 이상 참지 말라”고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도 있습니다. 고통없고, 불편한 것 없는, 한마디로, 내 맘대로 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격이 급해서, 기도도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 저는 성격이 너무 급해서 탈입니다. 저에게도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세요. 지금 당장  주세요.”

생각해 보세요. 왕은 인내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 물론, 신하들의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맘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데, 굳이 인내가 필요하겠습니까? 다른 비유로 설명한다면, 슈퍼맨이 꾹 참고 인내해야 할 일이 있겠냐는 것이죠. 

결국, 인내라는 단어를 교훈적인 경험들에 사용해서 그렇지, 실은 내가 불편한 상황을 견디라는 말이거든요. 그러니 “인내하십시오”라는 말은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야고보는 행하는 믿음으로 “인내하라” 권면합니다. 

신앙적으로 인내는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는 성품입니다.

제 큰 아이가 5살정도 되었을 때, 교회가는 차안에서 갑자기 물어요. “아빠, 아빠 차 나중에 나 가져도 돼요?” “그럼, 물론이지!” 그랬더니 신나서 “언제 줄건데요” 간단히 끝나지 않을 태세로 묻습니다. 어설프게 대답했다간, 귀찮겠다 싶어서 아예, 포기하게 할 답을 주었습니다. “아빠가 하늘나라가면!” 그랬더니, 제 아이가 뭐라 했는 줄 아세요? “아빠 빨리 하늘나라 갔으면 좋겠다.”

아이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죠. 또, 아이는 왜 기다려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야 할 문제도 아니고, 아빠와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젠데, 왜 지금 할 수 없는지 불만이 생기죠. “아빠 천국에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말은 그냥 아빠 차 빨리 갖고 싶다는 단순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차만 생각하느라, 그 말이 왜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즉, 아이는 잘 몰라서, 그리고, 경험이 없어서, 인내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아이가 인내한다는 것도 정상은 아니겠죠. 배고프면 울어야 할 아기가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봐가면서 배가 고픈데도 울지않는 것은 인내가 아니라, 어디 아픈 겁니다. 이렇듯, 인내심은 아이와 어른의 차이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야고보가 인내하라는 것은 영적으로 아이가 아닌 이제 그럴 능력을 갖춘 성숙한 성도에게 당부하는 권면으로 들어야 합니다. 


야고보는 3가지 예를 들어 인내를 설명합니다. 

1. 농부의 인내

첫째는 농부의 인내입니다. 농부는 수확의 열매를 기대하기 때문에, 기꺼이 감내하는 인내입니다. 마치, 고3학생이 대학합격이라는 열매를 위해 많은 시간들을 견디며, 공부하는 것처럼, 첫번째 인내는 결과를 얻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 끓는 것을 생각해 보죠. 물은 섭씨100도에서 끓죠. 불켰다고 끓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100도가 되어야만 보글보글 물이 끓죠. 만일, 하루종일 끓인다고 해도, 온도가 99도를 넘지 못한다면, 결국, 물이 따뜻하지만 끓지 않습니다. 이 때, 딱 1도만 더해지면, 팔팔 끓습니다. 99도까지 사용한 에너지와 보낸 시간은, 마지막 1도 올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지만, 마지막 1도를 완성해야 이전의 99도까지의 수고가 비로소 의미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 원리를 응용해 보죠. 팠다하면 우물을 내는 우물파기 달인의 비결은 뭘까요? 그렇죠! 물이 나올 때까지 파는 것이죠. 결과를 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야고보는 믿음의 형제들을 격려합니다. “주의 강림하실 때까지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2. 선지자의 인내

두번째 야고보가 언급한 것은 선지자의 인내입니다. 선지자는 농부처럼 기다릴 열매도 없습니다. 언제 선지자가 등장하나요?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거나, 불순종할 때,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하여 등장합니다. 환영받았을까요? 물론, 선지자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선지자가 가지고 온 메시지를 싫어했습니다. 그러니, 선지자를 거짓 선지자라는 핍박하고, 아예 완악하여 하나님 말씀을 대적했습니다. 

야고보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권면하길, 서로 원망하지 말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선지자는 자기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기 때문에, 선지자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반면, 함께 하기 싫은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내가 싫다고 외면하지 않고, 싫더라도 함께 성도의 교제를 나눈다면, 내가 지는 건가요? 오히려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주님의 뜻이 이뤄진 것 아닌가요? 내가 좋아하는 것도, 심지어 불편한 것마저 내려두고, 하나님을 뜻을 따르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래전 서부 카우보이들이 야생마를 길들이는 방법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초원으로 야생마와 당나귀를 함께데리고 나가서 함께 묶어 둡니다. 그리고는 고삐 없이 풀어 주는 것입니다. 처음에 야생마는 이리저리 뛰어오르면서 힘없는 당나귀를 끌고 다닙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기력한 당나귀를 끌고 지평선 너머로 유유히 사라집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면 자취를 감췄던 야생마와 당나귀가 나타납니다. 둘은 여전히 함께 묶여 있지만, 그 모습이 이전과는 다릅니다. 당나귀가 앞장을 서고 야생마가 그 뒤를 얌전히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당나귀를 떼어놓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내며 날뛰던 야생마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매달려 있는 당나귀에게 반항하기를 포기하고 결국엔 지쳐서 얌전해집니다.

자기가 가진 재주만 믿고 야생마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듯 보이지만 당나귀처럼 뚝심과 인내하는 사람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말입니다.


3. 욥의 인내

세번째 언급한 인내의 모델은 욥입니다. 욥은 너무도 유명한 고난의 인물이죠. 욥이 고난의 상황을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욥 2:10 “주신 분도 하나님...” 당연히 하나님께서 도로 가져가실 수 있다 고백했고, 욥 23:10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완전히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했고, 그 결과 이전보다 2배의 복을 받았습니다.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여 이겨낸 예를, 우리 교회 초대 목사님이신 윤영봉 목사님의 유명한 생선가시 이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월남하기 전 북한 감옥에서 겪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아침 형무소에서 나눠준 주먹밥을 먹고 있는데 그 속에 새끼손가락만 한 생선가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생선가시를 손에 들고 ‘버리느냐 먹느냐’를 생각하다가 가시를 입에 넣고 먹기 시작했다. 생선가시를 입 속에 넣고 2시간을 녹이고 또 녹였습니다. 드디어 생선가시를 가 모두 녹여 삼키셨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께서 발견하신 은혜는 목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와 같은 일을 경험하시는데, 생선가시처럼 다루기 힘든 성도를 만나도 오래 참는 것이 목회라는 것을 아신 것이죠. 생선 가시를 두 시간 씹어 소화할 수 있는 양분으로 변환시키는 인내의 진리는 목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할 교훈입니다.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중략)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인내는 하나님께 맡길 문제입니다. 

사실, 인내가 성도의 신앙생활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것, 거듭났다라는 말은 한마디로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라는 말입니다. 내 고집을 내려두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내 맘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하는 인내의 훈련입니다. 아마, 그런 삶은 싫은데요?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데요? 하며 당황스러워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제가 드리는 말씀도 결국은 “성도님들이 원래 기대하셨던 것, 아니 그 이상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뜻을 내려두고, 하나님 뜻대로 한다는 것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 아기처럼 앞뒤 알지 못하면서 지금 당장 달라고 내 욕심부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유익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편할 땐, 주님 찾지 않다가, 인내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에 주님을 찾죠. 그래도 주님은 우리를 맞아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지금 우리 교회는 야고보가 말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적용해보죠. 먼저, 언제까지 인내해야 합니까?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또, 우리는 담임목사님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의 열매를 얻을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처럼,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해선 시간이 많이 걸리듯, 늦어지는 것을 실망하기보다는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위하여 보내실 목사님을 준비시키시는 중이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과정이 맘에 들지 않을 때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서로 원망치 말아야겠습니다. 심지어는 문제가 있어도, 내 판단을 내려두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이끄시는 역사를 순종할 때, 우리 교회는 똑똑한 사람 혹은 정의로운 사람의 교회가 아닌, 내 맘엔 안 들어도 주님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고난 중에도 욥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순종했듯, 모든 과정을 관찰하시고, 하나님께 올릴 감사의 제목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준비된 담임목사님 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잘 준비된 성도로 우리 교회에 맡기신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줄 믿습니다. 


인내하십시오. 주께 맡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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