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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가운데에서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9-10 (월) 22:52 조회 : 54
설교일 : 2018.09.09
설교자 : 신경림 목사
본문말씀 : 요한 복음 9:1-7

고통 가운데에서 (요한 복음 9:1-7)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나? 기쁘고 행복한 적도 많았겠지만, 때로는 힘들었을 때도 많았을 것이다. 나도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일들을 다 헤쳐 나왔나, 어떻게 아직도 멀쩡하게 제 정신으로 살아있나 신기할 정도로 어려운 일들도 많았다.  지금의 나를 보는 사람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았다.  힘든 날들이 오래 계속될 때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다가 어느날 울고 싶은데도 눈물이 안 나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너무 지쳤을 때는 트럭이라도 들이받고 싶었다.  그러면 쉴 수 있을거 같아서더군다나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었던 아픔과 억울함과, 슬픔등을 생각하면 이 세상 사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이고, 나보다 훨씬 더한 고통들을 겪은 분들도 많았으리라.  또 이 순간도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겪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또 오늘은 괜찮지만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  모든 어려움이 다 예고하고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편안하다 할지라도, 앞으로도 영원히 평안할 것이라는 보장은 아무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삶에 “drug free”는 가능할 수 있어도 “pain free” 혹은 “problem free”는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살다가 고통이 닥치면 우리는 흔히 “Why Me?”라고 묻게 된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닥치냐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이런 나쁜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가?  그토록 건강에 신경 썼는데, 왜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었는가? 난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날벼락을 맞게 된 것일까? 나보다 덜 노력하는 사람도 다 잘 사는데, 왜 나는 죽어라고 노력하는데도 이렇게밖에 안 되는 것일까? 9/11때 죽어간 그 수천명의 가족들 모두 왜 우리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닥쳤을까 하는 질문을 해 보았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Leslie Weatherhead라고 하는 신학자는 인생은 축구 게임 같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축구를 하다 보면 아무리 조심을 해도 부상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러나 부상을 당했다고 해서 게임에 지는 것은 아니다. 또 멀쩡하다고 해서 게임에 이기는 것도 아니다. 부상을 당하든 안 당하든 간에 우리 팀이 이기면 이기는 것이고, 우리 팀이 지면 지는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없이 팀에 속해있다. 모두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실수로 우리가 다치게 될 때도 있고, 반면에 다른 사람이 잘했기 때문에 우리가 덕을 보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나쁜 일이 생겼을 때만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불평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공동체 안에서 살다 보면, 의외로 덕을 보게도 되고, 뜻밖의 해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이나 고난을 만나게 될 때 또 갖게 되는 질문은 '세상에는 왜 고통이 있는가? 왜 병이 들어야 하나? 왜 늙어야 하나? 왜 죽어야 하나?' 또는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죽음은 또 무엇인가등이다.  사람이 평안하고 배가 부르면 생각도 몽롱해져서 더 잠잘 생각, 더 먹을 생각, 더 쉴 생각만 하게 되지만 고독하고 억울하고 병들고 실패하고 낙심하게 되면 자연히 생각이 깊어지고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본문을 보자.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신지라.”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 얼마나 억울한 사람인가? 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는 사람! 얼마나 슬픈 삶이었을가? 날 때부터 한 번도 부모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 얼마나 안타까운 삶이었을가?  날 때부터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는 사람! 이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태어날 때부터 평생을 앞을 못보며 고통당하는 이 사람, 얼마나 억울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런데 그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그의 고통에 대한 주위의 태도였다.  이 불행한 맹인을 본 제자들은 그의 고통이나 불행에 관심을 가지는 대신 그의 맹인됨이 누구의 죄인지에 먼저 관심을 가졌다. "선생님,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그 부모니이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난과 병에 대해 두 가지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인간 고난의 문제가 죄 때문에 온다'는 것이다. 의롭게 사는 사람은 형통하고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문둥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기보다는 업신여기고 경멸하기까지 했다. '얼마나 큰 죄를 지었으면 저런 병에 걸렸을까?'하고 무조건 죄인 취급을 했다.  가난한 것도 죄의 결과라 여겻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자는 다 의로운 사람들이고 병들고 고통당하는 사람은 다 죄인이라 보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야고보서 25절에 보면 "세상에 대하여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믿음의 풍성함을 주셨다는 말, 가난한 자를 귀하게 여기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난하고 병드는 것이 일단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견해는 '고난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125절 이하에 보면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여기서 채찍질은 죽으라고 때리는 매질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람되라고, 바로 깨달으라고 하는 목적으로 징계하시는 것이다. 이 징계에 대해 우리가 택해야 할 두가지 태도는 첫째는 그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는 낙심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우리도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바르게 키우려고 혼도 내고, 벌도 준다. 벌주기를 즐기는 부모는 없다.  제정신이라면. 싫지만, 바로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혼을 내고 벌을 주게 되는데, 이럴 때 우리는 섭섭해하지도 말고, 가볍게 여기지도 말고, 또 낙심하지도 말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재난을 당한 사람은 욥.  그는 그의 고통을 이렇게 이해했다.  욥기 2310절을 보자. "나의 갈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  지금 고난 가운데에 있다면 이런 마음을 갖기 바란다.  삐지지 말고, 낙심하지도 말고,  고난에 굴복 당하지 말기 바란다. 그래서 오히려 성숙해지고, 따라서 더 큰 축복을 받게 되기 바란다. 

 

예수는 제삼의 견해를 소개한다.  어떻든 그 맹인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었으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니냐고, 그들의 에 관심을 가지는 제자들에게 예수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고 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맹인 자신이나 그의 부모에게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단지 소경된 이 사건이 꼭 죄 때문만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자기들이 배우고 아는 고통의 원인과 자기들 눈 앞에 보이는 고통의 현상에만 관심갖는 제자들에게 예수는 지경을 넓혀, 그 가운데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신다.  우리도 고통의 원인과 현상에만 관심을 가지면 당연히 낙심할 수 밖에 없고, 억울해하고 분해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고통이 찾아올 때, 그 고통에 얽매이지 말고, 고통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게 우리를 드리고, 우리의 고통을 드려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무릎 꿇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역사에 사용되게 된다.   이 맹인은 날 때부터 맹인된, 그 시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불쌍하고, 불행하고, 멸시받는 사람중의 하나였지만, 예수를 만남으로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도구로 쓰임받게 되엇다. 


어떠한 고통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기 바란다.  절망하지 말기 바란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모든 악조건들이 오히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절망의 조건, 최악의 조건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워싱턴 감리교회에 조용하고 얌전한 집사님이 계셨다. 교회에 잘 알려지지 않고, 영향력도 많지 않은 분이었는데 갑자기 암에 걸리셨다.  정말 뜻밖이었다. 그런데다가 그 속도가 빨라서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다.  이런 교인 심방가는 것이 정말 어렵다.   심방가면서 차에서 그 안타까움을 서로 나누며, 가서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하나 걱정하면서 갔다.  그런데 쭈빗거리는 우리에게 집사님이 먼저 말을 거셨다.  모두 잘 지내냐고.  신앙 생활 잘 하냐고.  물으시더니, 본인이 후회되는건 건강할 때 왜 신앙생활 더 잘 하지 못했나, 그게 한이 된다고.  그러면서 우리들 손을 한 사람씩 잡아 주시면서 격려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날 뿐이 아니고, 교인들이 심방 갈 때마다 그렇게 잔잔한 음성으로 어려운 일은 없나 물으시고, 신앙 생활 어찌 하고 있나 물으시고, 그리고는 위로하고, 격려하고온 교회에 소문이 나서 너도 나도 심방가고, 특히 아픈 분들이 많이 갔고, 갔다오면 그 은혜를 나누어 건강하실 때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끼치다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직도 그 분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아직도 우리들에게 도전과 격려가 되고 있다. 

 

고통과 고난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런데 그 고난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정말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고통과 병, 즉 현상에 집중하여 더 불행해지지 말고, 내가 병들었다면 병든 사람에게 전도할 수 있는 사명이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자.  남달리 외롭다면, 이제 외로운 사람들의 심정을 알고 그들을 위로해야 할 사명으로 받아들이자.  고린도후서 14절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 시로다."고 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처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기회임을 믿자.  고난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 그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 복음을 받을 수 있는 기회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원망하던 고난의 순간이, 뒤늦게라도 깨닫고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지금 문제를 가지고 잇는가? 하나님에게 쓰임받기 바란다.  고통가운데 있는가? 하나님의 기적의 도구가 되기 바란다.  빌립보서 112절에서 바울은 외치고 있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로마의 감옥에 지금 갇혀 있는 일이 오히려 복음을 더욱 빨리 전하게 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나면서부터 소경 되었던 자가 예수를 만나 눈을 뜨게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을까?  우리 교인들은 고난을 당할 때, 선교적인 차원에서 볼 수 있어야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아픈 것이, 내가 고난 당하는 것이, 복음의 진보와 가족구원의 기회가 된 것을 너희가 알기 원한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하나님의 선교 사업에 진보가 된 것을 너희가 알기 원한다"고 간증할 수 있는 체험의 신앙인, 믿음의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들어 쓰실까? 그 당시 소경들이 많았을텐데, 왜 이 소경이 쓰임을 받았을까? 6-7절을 보자.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순종의 사람이 쓰임을 받는다.  여기 '순종'이란 의미가 이해할 만한 명령에 대한 순종이 아님을 주목하자.  아무리 소경의 눈이지만 침으로 개어서 진흙을 눈에 바른다는 것이 말이 되나? 물에 씻으라는 명령은 또한 얼마나 엉뚱하게 느껴지나? 멀쩡한 눈 진흙과 침으로 더럽게 만들어 놓고, 이젠 씻으라니, 더군다나 아무데서나가 아니고, 실로암이라는 못에까지 가서 씻으라니, 사람 놀리는거냐, 뭐냐, 당연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지만, 그는 순종했다.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주님이 말씀하실 때 순종했다.  순종이 기적을 경험하게 한다. 의심이 생기더라도 순종하면 그것이 믿음이요, 순종하는 믿음에 기적이 일어난다. 여기 소경의 순종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혹은 밖에서 무슨 일을 할 때, 우리는 이것이 합리적인가 불합리한가를 묻는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점검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불합리해 보여도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순종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라면 따르고,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일이라면 기꺼이 행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기적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소경은 순종함으로 눈이 밝아졌고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학식이 많거나, 똑똑하거나, 말 잘 하거나, leadership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비록 소경이라도, 절망한 자라도, 지식이 없는 자라도, 지극히 부족한 자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쓰시고, 그런 사람과 함께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그 분의 능력과 지혜를 소유하게 된다. 그래서 세상에서 약해 보이는 사람이 강한 자를 넘어뜨리고, 세상에서 미련해 보이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 중요 한가지.  순종하려면, 그 뜻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너무 우리의 고통에 집중하면 그 분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는 현상에 얽매이지 말고, 눈을 들어 우리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고, 그 분이 사용하실 수 있도록 우리를 드리자.   고통과 불행가운데 있던 맹인을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그 분이 지금 당신을 주목하고 계신다. 그리고 당신을 초대한다. 이제 그 분 앞으로 나아가자. 문제가 생길 때,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으로 부터 숨으면, 그 분에게서 멀어지면, 교회를 떠나면 문제와 고통이 우리를 삼켜 버린다.   그러나 힘들어도, 괴로워도, 섭섭해도, 억울해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고, 하나님의 역사에 우리 자신을, 또 우리의 고통을 드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당신도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오늘 성경에 담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위로요 신실한 약속이다.

이제 이 위로와 약속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소망과 믿음의 고백을 담아 찬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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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e people who lowered a paralytic through the roof
설교일 : 2018.09.16
본문말씀 : Luke 5:17-26
설교자 : Rev. Kyung Lim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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