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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지경을 넓혀 주소서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8-27 (월) 03:29 조회 : 168
설교일 : 2018.08.26
설교자 : 신경림 목사
본문말씀 : 누가복음 10장 25~37절

우리의 지경을 넓혀 주소서(누가복음 10: 25-37)

 

오늘 본문에는 적어도 다섯종류의 사람들이 소개됩니다.  예수, 강도, 주막주인 외에.  율법교사,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 강도 만난 사람.


율법교사: 어떤 번역에는 lawyer라고도 나오는데 당시에는 종교적인 법조인이나, 일반 법조인이나 구별이 없었다고 하니, 율법이나 상식, 윤리에 대해 가장 높은 지식을 가진 professional, 전문가라 할 수 있겠다. 


제사장: 당시 제사장은 지금의 목회자는 저리가라로 높은 지위와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란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먹고 살 걱정 안 해도 되고, 좋은 대우를 받는, 즉 아주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레위인: 종교적으로 최상의 위치에 있는, 즉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사마리아인: 당시 사람 취급을 못 받는, “unclean”, 부정하다고 정의되는 기피 대상의 사람이었다. 


, 이 사람들이 각각 한 일을 보자.  한 일이 중요하냐 하면, 이 사건 전체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율법교사: 예수를 시험하려 했다고 성경에 써 있다.  말로는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겠냐고 묻고 있지만, 그가 정작 한 행동은 예수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이런 일들 한다.  말로는 교회를 위한다고 하면서, 교회를 시험에 들게 하고, “내가 당신 위해서 하는 말인데..”라고 하면서 그 사람으로 잘못하게 유도하거나,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함으로써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예수는 걸려 넘어지지 않으시고 되물으셨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율법 전문가에게 율법에 대해 물으시고, 한 수 더 떠서 그의 해석까지 요구하셨다.  그는 유창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함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는 그의 지식에 A 학점을 주셨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고 그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셧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영생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행해야 함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이 율법 전문가는 맞는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절반의 완성이었다.  뭘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으니, 또 예수께서 그게 맞다 하셨으니 이제 하고 가서 행하면 되는데, 이 율법 전문가는 안 가고 버티고 앉아 또 다른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의 의도를 성경은 옳게 보이려고.”라고 표현했다. , 그는 행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일은 하기 싫어하고, 옳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미 자기 마음 속에 답을 가지고, 상대를 걸려 넘어지게 하려고 한다.  이런 대화는 나도 안 좋아한다. “목사님, 여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어 내 생각을 말하면, “그런데요…”하면서 자기가 준비해 온 답을 말한다.  속이 다 보인다ㅎㅎ 예수도 이 율법 전문가의 속을 다 들여다 보셨다.  그래서 그런데요..”할 기회를 주지 않으시고, 비유를 말씀하신다.  앞으로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 ㅎㅎ  비유를 보자.


이 비유에 나타나는 제사장은 어떤 일을 했나? 강도 만난 사람, 즉 가진 것 다 뺏기고, 맞아서 죽게된 사람, 으슥하고 위험한 곳에 버려진 이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아이폰보고 걷다가 못 본 것이 아니라, 분명히 보고, 피하여 지나가 버렸다.  자기 할 일 때문에?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한 행동은 피하여 지나갔다. 

레위인도 똑같이 피하여 지나갓다.  유대인의 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두 사람, 가장 종교적인 두 부류의 사람들이 똑같이 피하여 지나갔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피를 흘리고 잇고, 거의 죽은 사람이 사람을 구하려고 손대면 당연히 옷을 다 버리게 될거고, 그러다가 그 사람이 죽으면 누명을 쓰게 될지도 모르고, 나의 일에 차질이 오는 것이 너무나 자명하고, 도와줘봐야 생색도 안 날거 같고, 아무도 보는 사람없으니, 안 도와주고 피해서 가도 아무도 모를 상황에서 좋은 직업 가진 사람도, 좋은 믿음가진 사람도 피해서 갔다. 


그런데 이 패턴이 그 다음 사람에 의해 깨어진다.  그는 거의 죽게된 사람을 보고,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그러는 동안 자기 옷은 엉망진창이 되었을것. 그리고 나서 이 사람을 자기 짐승에 태운다.  한번에 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의식이 없는 사람, 기름을 발랐으니 미끄럽기까지 했을 이 사람을 나귀나 낙타에 올리려니 얼마나 어려웠을까.  밑에서 받쳐서 올리다가 실패했을 것이고, 위로 끌어 올리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어떻든 그는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을 태워서 주막에 데리고 간다.  그쯤만 해도 대단한데, 하루밤을 지낸 그는 주인에게 돈을 주며 그 사람의 간호를 부탁한다. 더 들면 자기가 돌아올 때 갚겠다고까지 하면서 


여기서 비유를 마친 예수는 그 율법 전문가에게 묻는다.  네 생각에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겟느냐?” 여기서 우리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포인트가 있다.  우리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해 말할 때 흔히 묻는 질문은 누가 네 이웃이냐?” 이다.  , 누가 우리의 이웃인지 우리가 정의하고, 우리가 판단한다.  그런데 지금 예수의 질문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를 묻는다.  , 여기서 누가 이웃이냐는 우리가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강도 만난 사람이 정의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그 사람의 이웃이라 해도, 그 사람이 아니라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비유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나는 이 비유의 주인공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니고, 강도 만난 사람이라고 본다.  예수는 강도 만난 사람의 입장에서 이 비유를 말씀하고 있다. 


강도만난 사람은 누구인가? 이상하게도 이 사람의 인종이나 부류는 나타나 있지 않다.  예수님의 실수였을까?  아니겠지. 사실 제사장과 레위인 다음에는 일반적인 유대인이 나타나는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므로 강도만난 사람을 일반적인, 평민 유대인이라고 하셨어도 되는데, 굳이 이 사람에게는 어떤 label도 붙이지 않으셨다.  사마리아인인지,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고, 더군다나 강도들이 옷을 벗겨 가 버렸다고 하심으로서 도저히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모르게 해 버리셨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인종이나 종교, 교육, 빈부등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그 사람에 대해 하신 말씀은 그 사람이 당한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 즉 억울한 일, 불행을 당해서 죽게 된 사람, 고통 당하는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이것만을 말씀하셨다.  이것만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 또 도울까 말까 판단할 때, 이것만 보라는 뜻이다. 

이 말씀으로 예수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갖고 있던 경계를 허무셨다.  그들에게는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사마리아 인이냐가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예수는 그 경계를 허물어버리셨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지경을 넓히셨다.  우리 야베스의 기도 좋아한다.  사업체에도, 가정에도 많이 걸려있는 기도문.  주면 너무 좋아한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지경을 넓히려면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그래야 지경이 넓어진다.  우리의 경계(boundaries), 우리 교회의 경계, 어떤가? 


어떤 집에 가면 그 집만의 독특한 버릇이나 습관이 있다.  그런데 그 집 식구들은 그게 독특한지 모른다.  독특하다고 말하면, 그렇게 말하는 내가 독특하다 생각한다.  배목사님: 자기는 표준말한다고 자꾸 그래서 난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는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왜 그렇게 생각? 그 집 식구들은 다 그렇게 말하니까.  보는게 그거고, 듣는게 그거면 우리는 그게 표준이라고 여기게 된다.  누구나 다.  교회들마다 스스로의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게 반드시 표준은 아닌 경우들이 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안다.  외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우리 교회도 외부 강사들을 좀 초청해서 다른”, “외부의이야기들을 듣게 하고 싶어서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하는 분들이 계셔서 내가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예산때문이라고윤 장로님 쳐다보지 말기를. ㅎㅎ 윤장로님이 그러시는게 아니니그런데 난 꼭 그래야겠다 생각하면 무식하게 용감해진다.  그래서 내가 비행기 티켓 사 주며 강사를 모시기도 했다.ㅎㅎ 사실 훌륭한 강사들을 나만큼 많이 아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으니 나 있을 때에 우리의 지경을 좀 더 넓힐 수 있으면 좋겠다.

우선 소유의 지경이 넓혀지는 축복이 여러분에게, 또 우리 교회에 임하기 바란다.  내꺼, 내 돈, 내 땅, 우리 교회 건물, bank account로 경계를 정하지 말고,

예산의 경계도 허물어야 지경이 넓어진다.  물론 교회 예산을 책임있게 운영해야 하지만, 교회의 사명에 예산을 맞추어야지, 예산에 교회의 사명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예산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사용하면 반드시 채워지게 되어 있다.  교회는 예산에 컨트롤 당하는 행정 공동체가 아니라, 믿음으로 예산을 컨트롤하는 믿음의 공동체로 서야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예산대로 잘 집행되고 있다고 기뻐하고, 일년 결산에서 마이너스 안 되었다고 안심하는 교회가 아니라, 예산을 세우지 못했던 일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까지 다 감당하는 교회다. 


나는 웨슬리에서 미국 사람들과 27년간 함께 일하고 있다.  예산에 대해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보다 훨씬 철저하다.  어떤 일을 하든지, 필요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예 시도를 안 하려고 든다.  그런데 학교 건물들이 낡아가니 할 수 없이 과감하게 증축을 하기로 결정한 적이 있었다.  여러 회의를 거쳐 결정하고, 건축회사와 계약도 다 했다.  그걸보고 난 출장을 떠났는데, 뉴스를 들으니 갑자기 미국에 subprime mortgage crisis,이차 금융권 위기가 닥쳐 주식이 폭락하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돈이 많은 학교가 아니라서 후원자들의 후원에 많이 의존하는데, 이런 위기가 오면 후원들이 다 끊어지기 때문에 증축은 커녕 학교 운영도 힘들어지게 될 생각을 하니 앞이 까마득했다.  나도 이러니 총장은 어떨까 싶어, 이메일을 보냈더니, 잠을 못 자고 있다고 답이 왔다.  그 동안에 나는 기도하는 중에 이런 마음이 생겨 총장에게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걱정말자.  웨슬리는 괜찮을거다.  하나님은 좋은 신학교, 즉 사명을 잘 감당하는 신학교를 필요로 하실테니, 우리가 사명을 잘 감당하는한, 하나님께서 우리 학교를 지키실 것이다.” 며칠 있다가 학교로 돌아왔더니 총장이 Joint Planning Meeting을 소집했다.  이사 대표들을 비롯해서 핵심 운영진들이 다 모였다.  각 학교마다 교수들을 줄이고, 직원들을 해고한다는 소식이 계속 들리는 상황이었어서 모두 가슴 졸이며 침울한 가운데 미팅이 시작되었다.  총장의 입만 쳐다들 보고 있는데, 총장이 이렇게 말했다.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면 대부분 짐을 버려 배를 가볍게 해서 빠져 나가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우리는 짐을 버리는 대신 전속력으로 폭풍우를 빠져 나가기로 한다.  아무도 해고하지 않는다. 장학금도, 프로그램도 줄이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신학교로서 해야 할 일을 더 열심히 함으로써 이 위기를 넘기기로 했다.  하나님이 도우실거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계획했던 것들은 모두 다 해 내었고, 어떤 프로그램들은 후원금이 예상보다 더 들어와 돈이 남기도 했다.  우리는 그 위기를 어떤 학교보다 잘 넘겼고, 우리 교수들과 직원들에게는 믿음이 생겼다.  요즘도 중요한 회의 때 가끔 이야기한다.  우리가 사명을 잘 감당하는한, 하나님이 우리학교를 지키실거다.”  하나님께서 예산의 경계도, 두려움의 경계도 허물어주셨다.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를 묻는 율법교사를 향한 예수의 결론적인 말씀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였다.  이와 같이란 경계를 허물라는 것이다.  인종의 경계, 남녀의 경계, 빈부의 경계, 교육의 경계, 직업의 경계, 종교의 경계를 모두 허물라는 것이다.  ?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우리의 잣대를 가지고 누구는 돕고, 누구는 안 돕지 말고, 누구는 받아들이고, 누구는 밀쳐 내지말고, 어떤 인종,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지, 불행한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 병든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우리는 이웃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그들의 이웃인지, 아닌지는 그들이 판단한다.  우리 교회, 그런 사람들의 이웃인가? 교회밖의 사람들이 우리를 그들의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이와 같이 행하라는 말씀은 그들이 우리를 이웃이라고 생각하게 행동하라는 말씀이다. 


얼마전에 교인이 아닌, 예수를 믿지도 않았던 분이 돌아가셨는데, 그 분의 장례식을 교회에서 했으면 한다는 청이 들어왔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만의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창조하셨고,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그들을 기다리시기 때문에.  살아서 교회에 오면 더 좋겠지만, 죽어서라도 교회에 오면 하나님께서 반기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또 예산의 입장에서 보면 디트로이트의 모든 불신자들이 우리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될 수도 있지만, 난 우리 교회가 불신자들의 장례식을 해 주는 교회로 소문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 뛰었다.  불신자들이, 그들의 가족들이 장례식 해 달라고 올 수 있다면, 우리 교회는 진정 그들의 이웃이 될 수 있을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전도 안 해도, 사람들이 오고 싶어하는 교회가 될테니까.  전도지 천 장 돌리는 것보다 훨씬 나을테니까.  혼자 가슴뛰고 있는데, 그 분들이 마음을 바꿔서 그만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나는 우리 교회가,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로 더 이상 의논이나, 논쟁하는 교회가 아니기를 원한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의 이웃이 되기 위하여 교회 밖으로 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인간이 쌓은, 교회의 경계를 허물기 원한다.  디트로이트의 경계를 허물기 원한다.  나는 우리 교인들이 직장에서 제일 월급이 낮고, 제일 하찮은 일을 하는 분들이 우리를 이웃이라고 여겨주는 사람들이 되기 바란다.  사업체에서, 직원들이 이웃이라고 여겨주는 고용주, CEO들이 되기 바란다.  장학금도 교인들 자녀들만 주지 말고, 이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주면 좋겠다.  지경을 넓히자.  지경을 넓혀 주소서,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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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Where do you find your happiness?
설교일 : 2018.11.18
본문말씀 : Matthew 13:44
설교자 : Rev. Kyung Lim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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