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511건, 최근 2 건

주님의 만찬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7-09 (월) 01:05 조회 : 206
설교일 : 2018.07.08
설교자 : 신경림 목사
본문말씀 :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

 

 

주님의 만찬 (고전 11: 23-26)

오늘 성찬주일. 성찬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 십자가와 함께 기독교를 가장 잘 대표한다. 십자가는 다른 이단들이 갖다가 사용하기도 하지만, 성만찬은 정말 기독교에 유일한 예식이다. ? 인간을 위해 살과 피를 준 신은 더 없으니까. 연합감리교에서는 세례와 성만찬을 Sacrament, 성례(거룩한 예식)로 정하고 있다. 그 뜻과 의미를 잘 알고 참여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혹시 잊어버린 분도 있을지 몰라서 오늘 함께 생각해 보려한다.

내가 어릴 때 한국에서는 부활절과 성탄절등, 특별한 절기에만 했다. 본래 그래야 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교회사를 배우다 보니, 초기에는 목회자들의 수가 너무 부족해서 교회마다 성찬을 집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교사나, 교단 지도자, 혹은 이웃교회 목회자등, 안수받은 분들을 초청하는 특별 절기에만 성찬을 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하다보니 그것이 전통처럼 되어서 오랫동안 부활절과 성탄절에만 성찬을 해 오다가, 이제는 한 달에 한번 하는 교회들도 많아졌다. 매일하는 교회들도 있고, 백악관 앞에 있는 성공회에서는 매일 정오에 성찬 예배를 드린다. 성찬은 자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찬 예문으로 쓰이는 오늘 본문에 보면 성찬을 할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우리의 역할이 두개의 동사로 집약되어 있다. 성찬을 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라. Rememberproclaim!!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선포해야 할까

우리는 보통 성찬할 때 예수의 죽음에 focus를 둔다. 전에는 성찬시에 웃어도 안되고, 완전히 장례식장에서 조문하는 분위기가 강조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의 뜻일까? 성찬은 예수께서 로마 군인에게 잡히시기 직전에 제자들과 함께 식사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사랑하던 이 제자들을, 이 철없고, 많이 부족하고, 두고 떠나기에 너무나 걱정되는 제자들을 앞에 놓고 예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감이 교차했겠지. 그러면서 그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하고 싶었을거다. 꼭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기억해서 그 험하고 위험한 세상에 힘이 되고, 나침반이 되고, 보호가 되고, 예수잃은 슬픔과 상처에 위로와 치유가 되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거다. 어느 부모가, 아니 우리 중에 어느 누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나면서, 자기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고통 당했는지를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하라 하고 싶을까? 그러므로 제자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예수의 뜻은 자신의 고통과 고난, 처절한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에 담긴 그의 은혜와 사랑이었을거라고 믿는다. 지금은 대부분의 신학자들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요한은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 성찬에 대한 기사가 기록된 요한복음13장의 시작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다 잘 될 때에만 사랑하는게 아니라, 죽으면서도 사랑하고, 고통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사랑하는 이 마음, 죽은 후에도 다시 살아나셔서 계속해가는 이 사랑, 정말 끝까지 가는 이 사랑을 예수는 우리가 기억하고 그 때마다 힘을 얻기 바라셨다.

이 사랑에는 인간의 잘못과 배신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이 마지막 주님의 만찬에는 가롯 유다도 참석하고 있었다. 배신자 유다의 참석을 네 복음서 기자가 모두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뭐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예수는 유다의 배신을 알고 계셨다. 또 알고 계심을 모두에게 분명히 나타내셨다. 식사 중에 그는,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라고 하심으로 자기가 배반당할 것과, 자신이 그걸 알고 있다는 것과, 그 배반자가 그 식탁에 함께 앉아있다는 것을 분명히 주지하셨다. 주님은 인간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사랑받을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 잘할 때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당신을 팔아 넘길 때에도, 그리고 그 배신으로 가슴이 찢어질 때에도, 그럼에도 사랑하심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이시고, 그런 사랑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여러분, 예수님 배반한 적 있나? 예수를 모셔야 할 내 마음에 다른 것들을 채우고 있다면 그것이 배반이다. 예수의 뜻을 먼저 물어야 할 때, 내 생각과 내 판단을 앞세우면 그것이 배반이다. 예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이 정도는” “한번쯤은 괜찮겠지하며 내가 원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배반이다. 주일, 주의 날을 나의 날로, 또 자녀들의 날로, 일을 위한 날로 둔갑시키는 것도 배반이다.

우리는 흔히 유다를 쉽게 매도하며, 우리는 절대 유다처럼 예수를 배반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유다는 왜 자기가 모든 것을 걸고 따르던 예수를 배반했을까? 은 삼십냥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은 삼십냥은 배반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고, 그의 배반은 예수에 대한 기대가 깨어짐으로 시작되었다 본다.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예수, 당대 최고 권위자였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언변과 말씀, 더군다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유다는 그를 따르기 위해 자신의 직업도, 가족도, 자기 커리어도 다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그런데 예수가 붙잡혀 죽을것을 말씀하셨을 때 그의 절망과 실망이 얼마나 컸을까? 후회와 분노까지도 있었을듯. 이것이 그의 배반의 뿌리였다. 예수가 나에게 이런, 이런 일을 해줄줄 알았는데, 그런 일이 안 일어날 때. 예수 믿으면 좋은 직장도 얻고, 가정에 문제도 해결되고, 아이들도 잘 자라고, 병도 고쳐지고, 노후 문제도 해결되고, 마음에 평안도 생기리라 기대했는데, 그런 일들이 안 일어날 때, 우리는 예수에 대해 실망하게 되고, 때로는 원망하며, 심하면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가룟 유다처럼 예수를 떠난다. 교회를 떠나던, 마음으로 떠나던, 예수를 떠난다. 가룟 유다의 배신도 이랬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지 않는 예수는 더 이상 그에게 주님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를 팔아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를 떠남이, 예수를 버림이, 예수에게서 끊어짐이 예수에 대한 배반이다. 유다가 만찬 중간에 일어나 나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를 떠나는 그를 보게 되는데,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므로 파멸로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져도, 주님이 자기에게 아무 것도 해 주는 것이 없다 느껴져도, “이제 끝이다싶을때라도, 예수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사실 11 제자의 마음도 편안하지는 않았을거다. 걱정과 불안은 물론이고, 예수를 따르기로 했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과 혼란, 그리고 나아가 지금 예수를 버리는 것이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을지 모른다. 왜 안 그랬겠는가? 그러나 예수 곁에 남아 성찬에 참여했던 11제자는 파멸을 피할 수 있었다.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아무리 힘들어도, 그리고 아무리 나쁜 마음이 든다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를 붙들어야 한다. 예수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끝까지 예수를 붙들어야 한다. 그래야 회복되고, 그래야 살 수 있다.

가룟 유다를 보면서, 또 잘 잊어버리고, 걸핏하면 실망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 변하고, 조금만 힘들면 다른데를 기웃거리는 제자들을 세상에 두고 가시며, 예수는 마지막 당부를 하신다. Remember.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을 기억하라. 너희 때문에 나의 몸이 찢기우고, 내 피가 모두 흘러 소진되어도, 끝까지 사랑하는 내 마음을 기억하라. 너희의 잘못과 배신을 알면서도 버리지 않고, 내치지 않고, 변함없이 사랑하는 나의 사랑을 기억하라. 잘났던 못 났던, 무조건 사랑하는 내 사랑을 기억하라.

예수는 우리가 성찬을 할 때마다 이 사랑을 기억하고 은혜를 경험하기 바란다. 세상에 어떤 다른 신도 이런 사랑을 보인 신은 없다. 이것이 기독교의 특성이요, 본질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성찬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는 데에는 자격이 필요없다. 그러나

성찬을 받기 전에 우리가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아시는 것이니라.” 불행히도 이부분을 생략하는 교회들이 많아졌다. 예수의 사랑만 부각시키고, 우리 스스로에 대한 성찰은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고쳐져야 한다.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지은 죄를 고백하고, 그 후에 성찬을 받아야한다.

그래서 어떤 교단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성찬을 받지 말라고 하는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죄를 지은 가룟 유다가 예수의 만찬에 참여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을 때 그는 결국 자멸하고 말았다. 성찬은 은혜의 수단이요, 은혜의 자리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일수록 성찬에 참여해야 한다. 죄를 고백하고, 잘못을 회개하고, 성찬에 참여할 때에 우리는 예수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고 은혜받은자로, 용서받은 자로 다시 한 번 일어나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성찬을 믿음 약한 자들을 위한 목발, Crutch”라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 성찬에 빠지지 말고 참여하여 늘 은혜 가운데 머물 수 있기 바란다.

성찬에 참여하며 또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우리가 받은 그 엄청난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치매와 건망증의 차이: 뭘 가지러 계단을 내려가다가 뭘 가지러 가는지 생각이 안 나는건 건망증, 내려가던 길인지, 올라가던 길인지가 생각 안나면 치매. ^^ 우리의 신앙 생활은 건망증 수준인가, 아니면 완전 치매 수준인가?

제자중에 이런 사람. 취직만 시켜주면 정말 열심히 일하고, 그 은혜 평생 안 잊는다고 너무 간절히 원해서 취직시켜줬다. 취직하고나니 그렇게 열심히 했던 약속들을 다 나몰라라. “그럴 수도 있지하며 살고 있는데, 갑자기 연락해서 또 취직시켜 달라고. 그러더니 끊었던 안부를 하루에 서너번씩 해 가면서 또 그 은혜 평생 갚겠다고 약속 했다. 안 들어주고 싶었지만, 도울 수 있는데 안 도우면 안 되니까 또 들어줬다. 그랬더니 당장 그 다음날부터 안부가 끊어졌다. 그러다 잘 안 되니 또 살려달라고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가 있을까, 기가 막히다 못해 너무 속상했다. 내가 잘못 가르쳤다고 하는 죄책감까지..

그러다 문득, 그 역겨운 모습에서 익숙한 점을 발견했다. 하나님께 대한 나의 모습뭐가 필요하면, 급하면, 막 기도하고, 살려 달라하고, 살려 주시면 내 맘대로 살고, 때로는 내가 열심히 해서 된 줄로 착각하고, 제대로 감사하지도 않고그러다가 급하면 또 막 살려 달라하고살아나면 또 그 은혜 슬슬 잊어버리고충격이었다. 난 늘 누구의 은혜나 도움이든, 거기에 보답하며 살려고 해 왔는데, 나 자신을 살펴보니하나님에게는 정말 뻔뻔하게 했음이 보였다

성찬을 받으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받은 은혜!! 받으면 당연하고, 못 받으면 불평할게 아니라, 이미 주신 은혜,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움을 주신 분들의 은혜를 잊지말고 감사해야 하듯이, 우리에게 살과 피를 주신, 생명을 주신 예수의 은혜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되겠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싶은 것이 있다. 성찬은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의 행위다. 혼자서 성찬하지 못한다. 주님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로서 주님의 살과 피를 share, 나누는 것이, giving and receiving이 성찬에 필수적인 요소다. 예수는 공동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햇다. 기독교는 개인적인 종교가 아니고, 혼자서 수양을 해서 도를 깨닫는 종교가 아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아담을 창조하시고는 혼자 거하는 것이 좋지 않다라고 판단하시며 파트너를 만드셨다. 예수도 세상에 사실 때 혼자 사역하지 않고, 제자를 택해서 함께 살고, 함께 사역. 제자도 한 명만 택하지 않고, 12명이나. 두세명이 하기에는 사역의 양이 많아서? 아니. 한명만 있어도 되고, 한 명도 없어도, 예수 혼자서도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지만, 12명이나 뽑아서 꽤 큰 공동체를 이루셨다. 사람이 많아지면 맘에 안드는 사람도 끼게 되고, 서로간의 문제도 더 많이 일어나고, 비용도 많이 들고, 이동하기에도 훨씬 더 복잡했겠지만, 예수는 간단하고, 문제가 적은 쪽을 택하지 않고, 굳이 여러명이 복닥복닥, 지지고 볶으며, 삐지고 상처주고, 또 받으며 사는 쪽을 택하셨다. “난 사람들이 모여 이 소리, 저소리 하는게 싫어. 그래서 깨끗하고, 조용하게, 혼자서 예배드리고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는데, 그것이 틀렸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하나님과 예수의 뜻은 아니고, 기독교의 본질도 그렇지 않다. 하나님도, 예수도 공동체를 매우 중요하게 말씀. 공동체를 떠난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장 큰 계명을 주실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 이 두 개를 주셨다. 늘 함께 사는 것에 대해 말하시고, 사랑, 인내, 용서, 화해, 연합에 대해 강조하셨다.

그리고 예수는 먹고 마시는걸 좋아했다. 특히 함께 식사하는걸 좋아했다. 각계 각층의 다양한 사람들과 식사, 죄인들과 세리 같이 다른 사람들이 절대 같이 식사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이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난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을 즐기셨다. 부활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도 함께 식사하셨고, 특히 부활하신 후 밤새 노력했지만 아무 고기도 잡지 못하고 돌아오는 제자들을 위해서, 아침을 차려놓고,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부르신 후 음식을 집어주며 함께 식사하셨다. 예수님 잃어버리고, 고기잡이, 즉 사업에서도 실패하고, 밤새 고생한 제자들을 불러 함께 식사하신 예수님성찬에 대한 우리의 첫째 역할은 모든 교인들이 함께 모여 떡을 떼고, 포도즙을 마시며 예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다.

두번째 역할은 proclaim, 전하는 것, 선포하는 것이다. 무엇을?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라죽으심이란 죽음 그 자체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완성된 예수의 구원의 역사 전체를 말하는 것. 예수가 왜 세상에 오셨는지, 어떻게 인간을 구하셨는지,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등을 전하라는 것이고, 그가 오실 때까지라는 말은 예수가 부활했으며, 다시 오실 것을 의미한다. 성찬 예문에도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거룩한 성례라고 쓰여있다. , 성찬은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활의 예수가 살아 역사하시는 현재, 그리고 의의 최후 승리가 이루어지는 미래까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과거의 만찬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참여하는 오늘의 주의 만찬을 기억하고, 경험하며, 예수가 다시 오실 때 베푸실 하늘의 만찬도 기억하고, 또 선포하는 것이다. 성찬 분급시, 분급하는 주의 종들이 주의 몸” “주의 피라고 하는 말에는 이 모든 의미가 다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받는 사람은 그 선포에 동참하는 뜻으로 아멘이라 응답한다. 그리고 성찬 후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고백하는 것은, 주의 만찬에 초대받아, 지금도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나가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며, 책임있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요약하면, 성찬의 두 기둥은 기념하는 것과 전하는 것,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책임이다.

오늘의 성찬에 참여함으로 우리의 잘못과 배반을 다 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용서와 은혜를 기억하기 바란다. 주님의 살과 피를 감사함으로 받음으로 이 순간도 역사하시는 그 놀라운 은총을 경험하기 바란다. 그리고 ,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사랑과 하나님의 최후 승리를 세상에 전하는 증인으로 책임있게 살기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베푸시는 하늘의 만찬에 모두 참여하게 되기를 축원한다.

 

 

 


   

총 게시물 511건, 최근 2 건
번호 설교일              제목 본문말씀 설교자
511 2018.11.18  Where do you find your happiness? Matthew 13:44 Rev. Kyung Lim Shin
510 2018.11.18  행복은 어디에 마태 복음 13:44 신경림 목사
509 2018.11.11  The Forgotten Identity John 1:14 Rev. Kyung Lim Shin
508 2018.11.11  잊혀진 정체성 요한 복음 1:14 신경림 목사
507 2018.11.04  'After reaching the mature age of 40' 2 Kings 2:1-14 Rev. Kyung Lim Shin
506 2018.11.04  마흔 즈음에 왕하 2:1-14 신경림 목사
505 2018.10.28  Reformation Sunday Matthew 11:29-30, Ephesians 2:8 Rev. Dr. McAllister-Wilson
504 10.21.2018  The testimonies of our lay people James 1:12 3 Lay people
503 10.21.2018  평신도주일 간증 야고보서 1:12 평신도 3인
502 2018.10.14  Plan G!! Matthew 16:21-27 Rev. Kyung Lim Shin
501 2018.10.14  Plan G!! 마태복음 16:21-27 신경림 목사
500 2018.10.07  'Must be born again to enter the kingdom of God' John 3:1-8 Rev. Se Jin Bae
499 2018.10.07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 요한 복음 3:1-8 배세진 목사
498 2018.09.30  'The Actively Working Faith' Luke 24:13-27 Rev. Sun Hyung Jo
497 2018.09.30  '작동하는 믿음' 누가 복음 24:13-27 조선형 목사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

제목 : Where do you find your happiness?
설교일 : 2018.11.18
본문말씀 : Matthew 13:44
설교자 : Rev. Kyung Lim Shin
하이게이밍
클럽골드카지노
top카지노
탑카지노
안전놀이터주소
온라인카지노
우리카지노

HOME

교회소개

환영의글
담임목사 소개
비전과 사명
섬기는 사람들
예배시간&오시는 길

말씀

주일예배설교
수요예배설교
새벽예배설교
목양칼럼
읽는말씀(English&Korean)
Bible Time
성경필사

양육

유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한국학교
하람 청년부
소망대학
Troy Hope
KKCA

선교

선교통신
케냐선교
중국 · 연변 · 북한선교
몽골선교
방글라데시선교
태국선교
페루선교
아이티선교
북미(미국)
우크라이나선교
기타선교권

나눔터

공지사항
찬양영상
사진 게시판
새가족 사진게시판
새땅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