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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과 금보다 귀한 믿음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6-27 (수) 00:48 조회 : 275
설교일 : 2018.06.24
설교자 : 권병훈 목사
본문말씀 : 사도행전 3장 1~10절

은과 금보다 귀한 믿음

3:1-10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는 유명한 성악가인 이용훈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성악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너를 노래하는 사람으로 창조했다. 네가 노래할 때 내가 기쁘다. 이제 나를 위해 노래할 수 있겠니? 그는 그 음성에 아멘으로 응답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음악을 공부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미국과 유럽의 유명한 오페라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활발하게 활동하던 2008년 성대파열이 일어났습니다. 성악가로서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입니다. 병원에서 파열된 성대 사진을 보는데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저게 바로 너의 욕심이고 너의 마음이란다 이용훈 교수는 자신이 처음 성악을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 회개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의사는 당장 수술하고 재활을 받아야 한다고 판정했지만, 한국에 돌아와 기도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깨끗이 고침 받은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새벽기도회 때 하나님이 저를 치유하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환부만 뜨거워진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님이 만지셨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나는 입만 벌릴 뿐, 주님이 노래하시는구나! 그 이후에 이용훈 교수는 자신은 찬양 선교사이며, 오페라 가수는 도구일 뿐입니다. 제 꿈은 노래를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이 증거되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에게는 노래보다 명성보다 하나님이 더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를 통하여 그리고 사도가 행한 첫 번째 기적의 사건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시간에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그때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날 때부터 걷지를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업어다가 성전 앞에 내려놓으면 이 사람은 성전에 오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는 목적으로 성전에 올랐고 이 장애인은 구걸하려고 성전에 올랐습니다. 각각의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성전 앞에서 만났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서 제자들은 이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아픔에 공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만들어줍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얻을까 바라는 그 사람에게 진정한 소원,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보게 하였습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며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구제와 봉사기관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물론 어려움당한 이들을 돕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역의 방향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복음을 전하고 잃은 영혼을 되찾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에 관하여도 세상과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일해 주도록 요구하기도 하고 지역사회의 봉사를 최우선적으로 하는 교회를 방송에서 주목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사역하시는 동안 기적을 통해서 배고픈 자를 먹이기도 하셨고, 병든 자를 치료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께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의 계획과 베드로의 생각이 달랐던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주는 곳은 아닙니다. 다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때로는 그들이 바라는 것을 믿음의 가치로 바꾸어 주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성숙한 성도들의 믿음인 줄로 믿습니다. 성숙한 믿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1.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이 사람은 장애 때문에 스스로 일어서거나 걸어 다닐 수 없었습니다. 육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기 혼자서 활동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직장이나 생업을 가질 수 없었고 결국 남에게 구걸하여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매일같이 그 자리에 나와 있으면서 성전으로 나오는 사람일 경우 선한 마음과 자선하는 행동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구절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마음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3절에 보면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5절에 보면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이라는 것입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는 이 사람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미문을 통해 성전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보지만 그들이 왜 들어가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통속에 담겨지는 돈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이 장애인을 바라봅니다. 4절에 보면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라는 것입니다. 주목했다는 말은 그냥 무심하게 쳐다봤다는 말이 아닙니다. 희랍어 원어로는 '아테니사스'로 되어 있는데 이 말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보았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보았다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사도행전의 다른 곳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 10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하늘을 자세히 쳐다보았다고 말씀하는데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보았을까요?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 55절에 보면 스데반이 순교 당하면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이때 쳐다 본 것도 같은 단어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났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이 사람을 쳐다 본 것은 막연히 쳐다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보았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에전에 서울대학교 병원의 호스피스 선교회에 예배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호스피스 사역을 하는 분들 가운데에는 오히려 자신의 건강을 염려해야 할 정도로 노쇠한 분이 있었습니다. 예배 후 다과를 나누면서 제가 물었습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그때 그 분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상을 돌아다니며 환우들의 손을 잡아주고 사랑의 눈으로 쳐다보기만 해도 그 분들이 위로받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말이 전해지지 않아도 진심을 담은 눈빛만으로도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구걸하는 소리를 듣고 그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구걸하는 소리를 듣기는 듣되 건성으로 듣고 대개 못 본척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이 사람의 영혼의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춰 주목해 보았던 것입니다. 한 영혼을 살리고자 하면 주목해서 그 영혼을 지켜 본 것입니다.

그러면 보는 것만으로 변화가 일어날까요? 예수님은 사람들이 방황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목자 없는 양 같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 많은 병자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굶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같은 것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믿음의 눈으로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믿음입니다.

무언가 받을게 있는가 해서 바라보는 그 사람에게 베드로는 내게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장애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애인의 손을 잡아 줄 때 베드로의 믿음이 그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며 손을 잡아 줄 때 장애인의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걷게 된 줄로 믿습니다.

 

한 목사님이 신학교 다닐 때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나도 앉은뱅이 한 번 일으켜봐야 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역에 갔더니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성경과 딱 맞아 떨어집니다. 그 목사님은 구걸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선포하고 싶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의 눈이 의식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사람을 업고 뒷골목으로 가서 일어나라, 일어나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변화도 안 일어났습니다. 다시 업어서 원래있던 자리에 데려다 놓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은퇴하신 박종순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인생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5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질병과 가난,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절망하여 주저앉은 인생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은 절망에 주저앉아 있는 인생을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키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이 기적이 일어난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놀라게 될 때 베드로는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13). 즉 장애인을 일으킨 이적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에 기인한 것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간증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장애인이 기적을 경험하는데 사용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 쓰실 때에 우리의 손과 발을 당신의 것으로 들어서 쓰십니다. 현대의 목회 임상학에서는 서로 손을 잡아주고 환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는 일이 굉장한 사랑과 동정심과 용기와 힘을 북돋아주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과 은혜의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고 붙잡아 주시고 일으켜 주시는 은총,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주일 예배가 끝나면 밑에서 인사를 하면서 교우들과 악수를 합니다. 손을 잡고 인사하는 짧은 시간이 저에게는 많은 영적인 교감을 하게 합니다. 거칠은 손을 잡으면 마음이 안쓰럽고, 차가운 손을 잡으면 온기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교우들이 다 내려오고 나면 그날 악수하지 못한 분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날 손을 잡지 못한 분들을 생각해보면 교회에 오지 못한 분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절망과 좌절에 쌓여서 미래의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다시 일어날 용기와 은총의 손길, 동정과 자비의 손길이 되어 주십니다. 베드로가 잡아 준 손은 베드로의 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었습니다.

 

3.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입니다.

오늘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이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 외에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어려움입니다. 그는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지만 성전에는 들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장애인이 성전 입장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육신적으로 고통스러운 것도 안타깝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난 이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8절에 보면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선 이 사람은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몸만 일어 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 안으로 들어가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치유 이적을 바라 본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을 때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9절과 10절을 보면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아무도 하지 못했고 또 할 수 없었던 일을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냈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이 치유된 것만 놀랍게 여깁니다. 그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능력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합니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중세시대에 교황이 유명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를 불러서 화려한 금으로 장식된 성당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성당을 본 아퀴나스가 이제 우리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라는 말을 못하겠네요라고 하면서 이어서 그래서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소리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요구했던 대로 은과 금을 받았더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은과 금은 없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되고 그 이름으로 새로운 삶의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 성도가 전해주어야 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은과 금이 없어도 됩니다. 그런데 꼭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세상을 향한 긍휼의 마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과 권세인 줄로 믿습니다.

영적으로 주저앉아 있지 않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손 잡아주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일어서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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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Where do you find your happiness?
설교일 : 2018.11.18
본문말씀 : Matthew 13:44
설교자 : Rev. Kyung Lim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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