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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봅시다!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8-02-18 (일) 23:09 조회 : 448
설교일 : 2018.02.18
설교자 : 신경림목사
본문말씀 : 눅 10:1~20

손해 봅시다! (10:1-6, 17-20)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사순절은 부활절을 맞기 위한 준비 기간이다. 이 기간을 의미있게 지낼수록 부활절은 우리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 기간을 대충 지나면, 부활절이 매년 치르는 행사에 그치고 만다. 지금부터 부활절까지 6주 동안 우리 모두 솔직한 자기 성찰과 진정한 회개를 거쳐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기를 바란다.

사순절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참회하는 기간. 즉 사순절의 중요한 주제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다. 예수는 우리를 위하여 고통과 모욕을 받아들이고, 끝내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그 목숨을, 생명을 주셨다. 우리에게 목숨을, 생명을 주신 그 분께 우리는 무엇을 드릴까? 무엇을 드려야만 하나? 무엇을 받으시기 원하나?

예수께서 어느 날 70명을 따로 세우시고, 그들을 파송하셨다. 예수의 사역 가운데 가장 대대적인 파송식이었던 걸로 보인다. 본인이 친히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보내시며: 예수가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평소 모습과 다르게, 완전 조직적으로 파송을 하셨다. 이걸 보면 이 파송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같다.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낸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양이 이리 가운데로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찢기든지, 죽든지, 아무튼 완전 절단 날 것이 틀림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기 사람들을 양으로, 이리 가운데로 파송하셨다.

우리 아들이 12학년때 유럽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 인솔하는 학교 프로그램이라 안전하고,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처음 아들을 엄마없이, 외국으로 보내는 마음은 그렇게 편안하지 않았다. 공항이 가까와 올수록 걱정이 증가되었다. “돈 모자라지 않겠니? 더 줄까? 전화 카드 넣었니? 타이레놀은? 옷은 충분히 넣었니?” 아들이 드디어 못 참고, “MOM!!” 소리쳐서야 간신히 조용해 질 수 있었다.

자기 제자들을 자신보다 먼저, , 예수님 없이, 각 마을로 보내는 예수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예수의 행동은 나의 행동과 정반대였다. 필요한 걸 다 챙겨가라하고, emergency를 대비해서 더 챙기라 하고, 성공하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챙기라고 하시는 대신 예수는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가 원했던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예수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삶의 방식은 이 세상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것이다. 제자들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예수는 그 제자들을 같은 이리나, 아니면 이리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호랑이나 사자로보내시지 않았다. 그럴 수 없어서? 아니. 우리가 같은 이리로 살기를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힘으로 이기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더 많은 소유와 자원으로 성공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은 어린 양이다. 예수의 정체성과 똑같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또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우리 기독교인들, 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나아 가는가?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양의 모습인가? 아니면 이리의 모습인가? 이리 중에서도 더 힘세고더 강한 이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공하는 이리가 되려고 다른 이리들보다 더 영악하게 살고 있는지는 않은가?

몇해 전 터키방문. 미국 국회의 터키 담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가게 되었는데, 나는 터키 상황을 한국 선교사님들에게서 미리 듣고 싶어 이즈밀이라는 곳으로 먼저 갔다. 여기서 들은 이야기와 경험을 나누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누겠다. 아무튼 거기서 이제 수도 앙카라로 가야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박해 받을 때 숨어있었던 성지 중 하나인 카파도키아를 꼭 들리고 싶었다. 카파도키아 현지 여행사에 연락해서 내가 도착하면 차와 영어 가이드를 제공하기로 하고, 돈도 미리 지불했다. 나는 내가 무식해서 용감하다는걸 종종 느끼는데 그 때도 마찬가지. 밤 버스를 타고 밤새 가는데, 버스가 설 때마다 안내가 터키말로만 나옴. 어떤 정거장인지도 모르고, 몇분동안 정차하는지도 모르니 먹을걸 살 수도 없고, 화장실도 갈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카파도키아에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 오면서부터는 버스가 설 때마다 사람들에게 버스표를 보여주며, 여기냐고, 나 내려야 하냐고, 손짓, 발짓 해야했다. 간신히 제대로 내려서 여행사를 찾으니 차는 준비되었는데 영어 가이드는 없다고. 너무 기가 막혔다. 어떻게 왔는데? 또 앙카라까지 갈 때도 그 모양으로 가야 하는데. 평생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르는데. 가이드 없으면 아무 설명도 못 들을 상황. 속상해서 영어하는 사람 나오라 해서 따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잘 따져서 드디어 내가 이겼다. 영어 가이드가 제공되었다. 승리에 도취된건 잠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순교자들이 숨었던 굴들을 보기 원했으니 분명히 내가 교인인 줄 알텐데, 영악하게 따지고 이겨버렸으니 이를 어쩌나. 선교지에 와서 선교는 못할 망정 기독교인의 안 좋은 모습을 보였으니 이를 어쩌나. 가이드가 하는 말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내게 워싱턴 교회 한 장로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장로님 내외를 비롯해서 십여명이 Native American, 미국 원주민들 호피와 나바호 민족이 사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곳 선교에 뜻을 두고, 현장을 배우려고 처음 찾아간 것이었다. 호피분들이 사는 마을에 들어가니 그 분들이 만든 작은 도자기와 수공예품들을 길에 내 놓고 파는 것이 보였다. 우리 모두 흩어져서 이것 저것 보고 있는데, 한 장로님 내외가 서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려 가봤다. 부인 권사님이 속상하다고 하면서 하소연: “장로님이 자꾸 이 이가 빠진 화병을 사자고 해서요. 20불이나 하는데 이왕이면 제대로 된 걸 사야 하는데 장로님이 자꾸, ‘이거 우리가 안 사면 못 팔거 아니야라고 우기니 속상하다.” 그 말을 듣는 우리 모두 부끄러워졌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 저것 비교해 보면서 가격 대비 최고의 품질을 찾고 있었기 때문.

가파도키아에서 그 때의 일이 생각났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리의 방식은 손해보면 안 된다. 어떻게든 이익을 얻어야 하고, 가능하면 많이 얻어야 하고,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더 가져야 하는 것이 이리의 방식이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에게 어린 양으로 살라고 한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는가? 이 험한 세상, 정신 안 차리면 손에 들고 있는 것도 뺏기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에게 잘 이길 수 있는 호랑이나 사자의 힘을 주셔야지 어떻게 어린 양으로 살라고 하실 수가 있는가? 맘에 안 들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다른 것 다 젖히고라도 우선,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주신 분이다. 누가 우리를 위해 목숨을 주면, 그 사람의 부탁을 무엇이든 안 듣겠는가? 안 들으면 나쁜 사람, 배은 망덕한 사람이지. 예수에게 우리의 목숨은 못 드리더라도, 그 분의 부탁은 들어드려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분의 죽으심을 기억해야 하는, 이 사순절 기간 만이라도?

70명을 파송하기 전에 예수께서 구체적으로 하신 말씀이 6장에 기록되어 있다.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어떤 사본에, 아무에게도 실망하지 말고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구구절절 맞는 말씀. 하나 하나 마음에 찔림을 준다. 그러므로 한 절도 빼지 말고 다 마음에 담고 지켜야 한다. 지금 시간상 요약을 해 보면, 원수, 우리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모욕하는 사람들, 즉 우리에게 잘못하고, 괴롭히고, 상처주고, 정말 싫은 사람들에게 무조건 잘 하라는 것이다. 어느정도 잘해야 하면, 남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것보다 extra로 잘 하라는 것.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너희에게 잘하는 사람에게만 잘하는 건 죄인들도 그리한다.” 그러니 너희는, 나의 사람들은, 그것보다 잘해야, 남들 하는 것보다 더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다. “나쁜 일을 안 하면 된다는 생각. 남을 해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 이 생각을 예수는 여지없이 깨신다. 성경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거지 나사로가 부자의 집 대문앞에 버려져 거기 살면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걸로 먹고 살았다. 그런데 부자는 죽어 지옥에 갔다. ? 헌데 투성이여서 집에서 버림받고, 남의 집 대문 앞에 버려진 나사로. 부자 입장에서 보면 그런 사람이 대문 앞에 하는 것이 얼마나 눈에 거슬렸겠는가? 요즘 같으면 경찰에 신고햇을거다. 충분히 쫓아낼 이유와 권한있는데도 그러지 않고, 남은거라도 먹으며 목숨을 부지하게 했는데, 왜 지옥에 간걸까? 여기서 우리가 받아야 하는 멧세지는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 흔히 내 평생 남에게 못할 짓 하지 않고, 큰 죄 지은 것 없고하면서 이만하면 되지 않았냐고 생각하는데, 아니라는 것이다. 이리의 기준으로는 충분하지만, 어린 양의 기준으로는 부족하다. 예수가 우리에게 부탁하는 것은, 기대하는 것은,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뺨도 돌려대며, 겉 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벗어주며, 구하는 자에게 주며,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하지 않는 것이다. 즉 손해보는 것이다. 또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하고,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우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즉 바보같이 살라는 것이다. 지라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들지만, 안 그러고 싶지만, 우리를 위해 목숨을 주신 예수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이것이다. 드려야 한다. 당연히 드려야 한다. 힘들어도 드려야 한다.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여기 반전!!!!이 있다. 이리 가운데 어린 양으로 나갔던 70명이 예수께 기뻐하며 돌아왔다는 것. 귀신들도 항복하더라고 하면서. 예수도 맞장구: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손해보고 바보같이 질거라 생각했지만, 어린 양 작전이 귀신을 이기고, 사탄을 추락시켰다. 당연히 질 줄 알았는데, 결론은 이리들은 물론, 귀신과 사탄까지 이겼다. 의는 승리한다. 반드시 승리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역사상 수없이 많은 증거를 보이셨다.

금년 사순절, 우리 손해봅시다. 걱정하지 말고, 용감하게, 손해봅시다. 손해를 당하는게 아니라, 어린 양 작전으로 손해를 스스로 선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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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e people who lowered a paralytic through the roof
설교일 : 2018.09.16
본문말씀 : Luke 5:17-26
설교자 : Rev. Kyung Lim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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