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423건, 최근 0 건

교회창립45주년기념 -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11-01 (수) 19:55 조회 : 56
10292017_설교.docx (15.8K), Down : 0, 2017-11-01 19:55:22
설교일 : 2017.10.29.
설교자 : 장찬영 목사
본문말씀 : 사도행전 9:8~19A

9:8-19(장찬영목사)                                                         10. 29, 2017

 

                        교회창립45주년기념-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

 

1.

한국에서 한 때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왓칭'(watching) 이라는 책의 저자인(왓칭 책 그림) 김상운씨는 MBC에서 정치부와 경제부, 국제부의 기자로 또 뉴스앵커와 논설위원장을 역임할 정도로 사실과 논리중심으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저자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연이은 죽음을 경험하면서 삶의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나가 그는 사람이란 존재에 대해 눈을 뜨면서, 사람이 단지 눈에 보이는 fsct, 육체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존재 안에 깊이 숨어있는 무한하고 영원한 것에 대한 고찰을 시작합니다.

 

그는 이것을 관찰자의 입장이라고 명명하면서, 인생을 자기 주관적인, 그저 보여지는 fact의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자신을 객관화하여, 좀 더 너그럽고 긍정적으로, 마치 어머니가 젖먹이 아기를 바라보듯이 제 3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와칭이론(Watching Theory)을 제시합니다. 그는 자신의 직장생활에서의 왜곡된 경험을 통해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를 자신의 책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입사한지 2년 차쯤 됐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출근해 보니 무척 깐깐해 보이는 사람이 새 부장으로 왔다. 권위의식으로 꽉 찬 사람이었다. 나는 첫 눈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오자마자 내게 이런 지시를 내렸다. 우리 부서가 앞으로 추진하거나 개선해야 할 점들이 있을거야. 그 결과물을 보고서로 만들어오게. 사흘 간의 여유를 주지. 나는 선배들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며 열심히 보고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부장은 보고서를 받더니 홱 내던지는 것이 아닌가? 어이, 저런 것도 보고서하고 만들었나? 도대체 2년간 뭘 배웠나?.... 이런 일은 계속되었다... 그만둬. 자네는 싹수가 이미 굴러먹은 거 알고 있어... 직장은 생지옥이  되었다. 부장은 내가 인사해도 못 본 체 하였고, 어떤 일도 시키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은 다 퇴근시켜 놓고 유독 나한테만은 퇴근하란 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다함께 회식을 마치고 노래방에 갔는데. 부장은 일일이 순서를 정하여 노래를 시켰지만, 나 한테만은 노래를 시키지 않았다. 그의 눈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동료직원들이 안됐다는 듯 내 얼굴을 흘깃거렸지만, 부장 눈치를 보느라 어느 누구도 내게 말 한디 건너지 않았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왕따를 온 몸으로 느끼며, 부장과 동료들의 무능함과 무관심 속에서, 출근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가는 순간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어디에다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르는 일들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 밤,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돌연 엄청난 통증이 복부에 밀려왔다. 부장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점심시간에 부랴부랴 병원에 달렸갔다. 스트레스와 불안증세가 심하군요. 젊은이가 뭔 일을 당했길래 이렇게 의사는 혀를 차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병을 얻고,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까지 이 직장을 다녀야 하나? 하지만 당장 직장을 바꿀 수도 없었다. 내가 이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대견해 하시는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런 증세는 계속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가 가까워지면 심장은 사정없이 뛰었다. 부장의 그림자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의 얼굴만 떠올려도 내 머리 속은 고통으로 가득 차올랐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그 고통을 억누르려 들었다. 그러나 그러면 럴수록 그것은 마치 호리병 램프에서 빠져나온 지니처럼 더욱 기승을 부리며 피어올랐다. 나는 거기에 파묻혀 버린 체, 온 젊은 시절을 너무도 우울하게 보냈다.  

 

그런데.... 만일 그때에, 내 마음을 비춰주는 속 깊은 친구가 딱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고통스럽지만은, 아니 고통은 어렵지 않게 사라졌을 것이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그렇다. 방관하는 다수의 학생들 가운데 단 한 명만이라도 진정한 찬구가 되어주면 고통은 사라진다. 아니 인생이 그렇다. 한 사람만 있으면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직장에서의 경험만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가정이나 사회생활, 또 교회생활을 통해서도 이러한 일들을 경함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그렇게 아쉬운 것입니다. 근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하인즈 코헛(Heinz Kohut) 박사는 이러한 인간의 실존을 성경말씀을 기초로 하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거울처럼 비추어주는 타인이 필요하다 [거울이론]을 얘기했던 것입니다. 이는 자기를 비추어주는 하나님 말씀 그리고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하나님의 사람들... 그래서 그는 인생은 사람이고 사람은 만남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2.

지난 수요일부터 우리교회는 교회창립 45주년 기념하면서, [교회를 이야기하다]하는 큰 주제로 여러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교회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 저에게 주어진 말씀제목은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이 땅의 개신교는 매년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주일]로 지키는데, 올해는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당시 카톨릭 사제였던 마틴 루터는 1517 1031, 비텐베르그 성당 문에 당시의 교권의 타락과 부패 속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95개 조항의, sola fide'(only faith) 'sola scriptura'(only scripture) 'sola gracia'(only grace)을 중심으로 회복하는 개신교(protestant)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사실 신앙 공동체라는 말처럼, 주님의 몸이신 교회를 잘 설명한 단어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처음 교회, 초대교회는 결코 건물이나 조직, 교단이나 제도, 직분이 아니었고, 마틴 루터가 당시 교황과 카톨릭 교회를 향해 개혁을 외친 것도 교회가 그런 모습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교회는 장소적인 ''(place)의 개념 보다는, 어떤 상태나 상황을 뜻하는 개념으로서, 그리스도안에서의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공동체의 기본요건을 생각나게 합니다.

18:20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두 명, 세 명이 주님의 이름으로 만나지는 그 모습, 그 상태가, 그 자리가 바로 교회요, 그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신앙 공동체, 마틴 루터가 다른 무엇으로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오직 말씀으로오직 은혜로만족하다고 하는 교회의 원형에로의 회복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진정한 교회에 대한 인식인 그리스도안에서의 만남에 대한 은혜를 주기에 충분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은 사울이라는 정통 유대인과 이미 당시 예수님의 제자였던 아나니아라는 정반대의 상황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울은 훗날, 기독교의 역사를 바꾼 사도 바울의 히브리 이름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이 사울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 중에, 그런 그와 예수님의 제자였던 아나니아와의 만남에 대한 말씀입니다.

 

, 8절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강한 빛에 의해 시력을 잃게 된 모습을 설명합니다. 8-9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그리고 장면은 바뀌어 아나니아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가려던 목적지인 다메섹, 다마스커스에 사는 주님을 따르던 사람이었습니다.

8그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성경은 그에 대한 다른 소개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다입니다. 그저 한 단어, 그는 제자다라는 것입니다. 아직 당시에 그리스도인이란 단어가 씌여지지 않았고, 제자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주님을 직접 보고 가까이서 따랐던 자들에게 씌였던 단어임을 본다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제자, 아나니아도 의의를 제기합니다. 이런 반응은 당연하게 보입니다. 그는 이미 사울이라는 인간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스데반 집사의 순교 때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지금 뭘 하려고 여기에 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15절의 말씀으로 아나니아의 지극히 타당한 이의를 일축하십니다.

15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아나니아는 분명 충격에 빠졌을 것입니다. 내가 혹시 잘못 들었나? 무엇보다도 그의 충격은 주님께서 그를 향하여 나의 그릇이다그는 나의 것이다 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내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고, 사울이 있는 장소를 향해 출발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는 나의 것이다 라는 말씀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지난 시간,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던 그 때에, 아나니야야, 너는 나의 택한 그릇이다 너는 나의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 같은 존재도 주님이 사랑하셨는데.... 나는 되고, 그 사람은 안 되지 라는 자기 눈이 아니라, 주님의 눈으로보는 그를 보면서, 그는 말도 안 되는 사울을 향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논리와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울을,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눈으로 응시하며 그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17b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3.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충격을 받아야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사울에게 쓴 호칭 때문입니다. 아나니아가 사을을 향해 뭐라고 하지요? 형제 사을아.... 여기서 아나니아가 쓴 헬라어 단어가 아델포스(adelphos)는 놀랍게도 어머니의 자궁을 가리키는 단어인 히브리어 델퓌스(delphus)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에 처음 등장한 형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후 신앙 공동체인 교회에서는 오늘날 까지 형제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 당시에는 이 단어가 혈연적인 관계의 형제와 자매 안에서만 사용되었던 단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나니아가 교회의 원수요 대적자인 사울을 향해 같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난 자라에게만 쓰는 아델포스라는 단어로 그를 부른 것입니다, , 그는 사울을 한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나 이제야 비로소 만난, 그리스도 안에서의 친 형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순간입니다... 아나니아는 어떻게 사울이란 인간을 향해 형제여 아델포스라로 할 수 있었을까요? 흥미로운 것은 아나니아(Ananias)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란 뜻입니다. , 아나니아는 조금 전 까지 주님을 믿는 형제들의 적대자였던 사울을 향하여,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 ,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나서 이제야 만난 형제로 받아드림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 지를, 자신에게 또 사울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백은 사울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음에 분명합니다. 세상의 모든 만남에는 나름의 자격과 조건, 이유가 있습니다. 오랜시간동안 이런 자격과 조건, 이유에 익숙했던 사울에게 지금 이 형제란 말은 땅이 흔들리는 충격인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순수한고 간절한지 그는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과 논리, 이성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결국 이로인해 사울은 진정한 그리스도인 바울로 거듭날 수 있었고, 이후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까지도 형제로 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세계관은 그 순간부터 새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정이지만, 주님의 제자였던 아나니아가 자신의 부르심을 망각한 체, 그저 사울에 대해 자신의 선입관과 생각 그리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소문 속에서 그를 규정하고, 경계하였다면....그래서 그를 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하나님은 또 다른 이를 통해서라도 사울을 만들어 가셨겠지만, 오늘 우리가 보는 아나니아와 사울의 이런 만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아나니아도 무늬만 주님의 제자일 뿐, 결국 자신 안에 갇혀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 그런데 이제 아나니아가 사울을 향한 생각을 바꾸어 그를 형제로 받아들이며, 그의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 기도한 결과를 본문 18절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8a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지기밖에 모르던, 그렇게 굳게 닫혀있던 사울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성경은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지고서야 그의 시력이 회복되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비늘을 가리키는 헬라어 레피스(lepis)는 실제로 물고기의 비늘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동안 사울의 눈에는 실제로 물고기의 비늘 같은 것이 끼어있었고, 아나니아가 사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함과 동시에, 비늘이 벗어지고 비로소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다시 보게 된지라에 사용된 헬라어 동사 아나-블레포(ana-blepo)는 단순히 다시 보는 시력의 회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위를 향한다는 접두사 아나(ana)'와 본다는 동사 블레포(blepo)의 합성어인 아나-블레포하늘을 본다는 의미입니다.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서야, 비로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땅만 바라보고 살았던 그가 드디어 자신의 존재가 어떠한지를 깨닫고, 드디어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다시 보게 된지라의 영적의미는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보게 되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아나니아가 자신의 선입관과 다른 사람의 소문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사울을 본 것 같이, 이제 사울도 비로소 자신을 그리고 세상만물과 다른 이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거듭남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18-20절이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4.

이것은 아나니아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은 결코 누군가는 돕고 누군가는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진정한 만남은 두 사람 눈을 뜨게 하고, 두 사람 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는 본래 사울을 찾아가라는 주님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울같은 인생을 찾아가고 기도해주고 도와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없는 일처럼 여겨졌던 자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사건을 통해 아나니아 역시도 자신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겨,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지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고든 맥도널드, 빌 하이밸스, 유진 피터스 등의 11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쓴 글을 묶어서 만든 책이 있습니다(책 그림). 근데 이 책의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아니라 리더를 떠난다입니다. 물론 이 책은 영적위기를 겪었던 리더들의 솔직한 고백들과 권면들이지만, 이 책이 던지는 진짜 의미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 나의 삶의 자리, 그곳이 가정이든, 일터이든, 교회에서 리더가 되었다면 이 책의 제목은 이렇게 읽혀져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이 아니라 를 떠난다

 

그리스도안에서의 참 만남을 피해오고 거부하던 내가 그를 교회로부터, 주님으로부터나로부터떠나보낸 장본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아나니아였다면, 나는 사울을 찾아가고 사울을 위해 기도하며 사울을 향해 그의 반응과 관계없이 그를 향해 형제여(아델포스)라고 부르면서 주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

 

한 사람만 있으면 인생은 달라진다 인생은 사람이고 인생은 만남이다라는 김상운씨나 코헛 박사의 고백처럼, 오늘도 주님은 사울과 아나니아의 만남을 통해 처음교회인 초대교회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시며,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예배하는 오늘 아침.... 참 개혁은 큰 교회에서, 큰 사역에서, 큰 집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비늘이 벗겨져 그래서 말도 안 되는 누군가를 향해 아델포스(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참 만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먼 훗날, 인생을 돌아보면... 물질도 떠나고, 명예도 떠나고, 자녀들도 떠나고, 배우자도 떠나고, 그렇게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도 다 떠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안에서의 참 만남을 그리워하게 되고, 그러지 못하고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아쉬워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눈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그 때 비로소 참 만남이 시작됩니다.... 사울과 아나니아와 같은 그리스도안에서의 만남은 이 땅 위에 살 동안 주시는 가장 큰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교회가 신앙 공동체인 이유는 우리 안에 이러한 만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교회안에 이런 귀한 만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찬양하십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총 게시물 423건, 최근 0 건
번호 설교일              제목 본문말씀 설교자
423 2017.12.03  The Life of a Witness John 1:6-15 Rev. Shin
422 2017.12.03  증거자의 삶 요한복음 1:6-15 신태규 목사
421 2017.11.26.  "What will you ask for?" James 1:5-8 Rev. Bae
420 2017.11.26.  무엇을 구할 것인가? 야고보서 1:5-8 배세진 목사
419 2017.11.19.  'Give thanks, my soul' 1 Thessalonians 5:16-18 Rev. Jang
418 2017.11.19.  '감사하라, 내 영혼아' 데살로니가 전서 5:16-18 장찬영 목사
417 2017.11.05.  'Only for the Lord' Romans 14:6-9 Rev. Lee
416 2017.11.05.  오직 주를 위하여 로마서 14:6~9 이훈경 목사
415 2017.10.29.  A church as a faith community Acts 9:8~19A Rev. Jang
414 2017.10.29.  교회창립45주년기념 -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 사도행전 9:8~19A 장찬영 목사
413 2017.10.22.  'Blessings to those who are persecuted because of righteousness' Matthew 5:10-12 Rev. Jang
412 2017.10.22.  행복하여라: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여 마태복음 5:10~12 장찬영 목사
411 2017.10.15.  The Story of a Father's Wasted Love Luke 15:11-24 Rev. Kwon
410 2017.10.15.  낭비된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 누가복음 15:11~24 권태홍 목사
409 2017.10.08.  Like Father, Like Son Ephesians 2:1-8 Rev. Joseph Kim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

제목 : The Life of a Witness
설교일 : 2017.12.03
본문말씀 : John 1:6-15
설교자 : Rev. Shin

HOME

교회소개

환영의글
담임목사 소개
비전과 사명
섬기는 사람들
예배시간&오시는 길

말씀

주일예배설교
수요예배설교
새벽예배설교
목양칼럼
읽는말씀(English&Korean)
Bible Time
성경필사

양육

유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한국학교
하람 청년부
소망대학
Troy Hope
KKCA

선교

선교통신
케냐선교
중국 · 연변 · 북한선교
몽골선교
방글라데시선교
태국선교
페루선교
아이티선교
북미(미국)
우크라이나선교
기타선교권

나눔터

공지사항
찬양영상
사진 게시판
새가족 사진게시판
새땅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