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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여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10-23 (월) 19:37 조회 :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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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7.10.22.
설교자 : 장찬영 목사
본문말씀 : 마태복음 5:10~12

5:10-12(장찬영목사)                                                        10. 22, 2017

 

                             행복하여라: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여

 

1.

신앙에는 말씀에 대한 인식의 단계가 있습니다. , 그렇구나 인생이 이런 거구나 예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라는 영적 깨달음입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묵상하다가, 기도하다가, 혹은 일상의 삶을 살다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말씀이, 예수님이 깨달아지는,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것입니다. 이 인식의 단계는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여도 꼭 통과해야 할 과정입니다. 신앙은 어떤 추상적인 영적 체험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이 삶에 들어오는 성육신과 거듭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상식이나 학문적 추론, 과학적 가정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I keep asking that the God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glorious Father, may give you the Spirit of wisdom and revelation so that you may know him better..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공동변역에서는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spiritual wisdom and insight)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이것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고전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 But God has revealed it to us by his Spirit.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ep things of God.

 

그래서 이렇게 성령님을 통한 인식의 단계를 거쳐 신앙이 성장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고전13:11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When I was a child, I talked like a child, I thought like a child, I reasoned like a child. When I became a man, I put childish ways behind me.

 

이 때에 비로소 우리가 찾게 되는 것이 두 가지인데, 먼저는 소명(Calling)입니다. 소명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부르심에 대한 질문입니다. ,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왜 내가 세상에 태어났고, 왜 이것을 하는지.... 그런데 이것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래서만 몰두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내 안에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를 만드신 분이 누구신지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인지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소명calling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찾게되는 것이 사명(Mission)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왜 이 땅에 왔는지, 즉 내가 아무 의미없이 그냥 던져진 존재가 아니고, 누군가가 나를 보낸 분이 있다는 것을, 나를 부르신 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이 땅 위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아니 최소한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이것을 사명이라 하는 데, 이를 mission 이라고 하는 것이 참 의미가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것 자체가 선교라는 것입니다.

 

이 두 질문은 하나님에 대하여 진지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살면서 갖게되는 인식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계시와 지혜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존재에 대한 인식삶에 대한 인식을 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과정은 한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의 영역과 상황에서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제 삶에 들어오신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 이른 시간에 예수님을 인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없었으면, 저는 상당히 어렵고 불행한 시간을 보냈었을 것입니다. 어렸지만, 소명사명이라는 것에 대해서 작은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입니다. ,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구나. 나는 어쩌다 그냥 태어나고, 어쩌다 어른이 되어서 죽는 존재가 아니구나 말씀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서 알면서 삶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신학교에 입학해서 또 다시 이런 인식의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왜 나는 신학을 해야하지? 왜 나는 목사가 되어야 하지? 의 질문은 19살의 나이로는 벅찬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군대생활, 결혼, 아이를 낳고, 유학을 하고, 목회를 하고 지금까지 오면서, 그때그때마다 저는 말씀의 인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심지어 황홀한 것인지를 매순간 깨달을 수 있었고, 이로인해 주어진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물으며 달려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만 보면, 인생이 그러합니다. 마치 롤러코스터 같습니다. 때로는 심지어 널 뛰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도 우리교인 중에는 장례식도 있었고, 몇 분이 수술을 받기도 하고,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직장을 잡은 분도 있고, 영주권을 받은 분도 있고, 손주를 본 분도 있고, 영적으로 회복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저런 일을 당할 때 마다, 믿음을 가지고 산다고는 하지만 당황스러울 때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 주에 한국에 머물 때에, 선배 목사님 한 분이 저를 찾아 주셨습니다. 평소에 늘 존경하던 목사님은 저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장목사님,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쟎아요...(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여러분, 아시는대로 이 사자성어의 배경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중국의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인이 가장 아끼던 재산 1호인 말이 있었는데, 그만 외양간을 넘어 나간 거예요. 사람들은 낙담한 노인에게 이제 어쩌냐고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노인은 괜찮다고, 이게 복이 될지 누가 알겠냐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을 나간 말이 다른 말들을 데리고 들어온 거예요. 사람들은 이제 큰 부자가 되었다고 축하의 말을 했지만, 노인은 아니라고, 이게 나중에 좋지 않은 일이 될지 누가 알겠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의 외아들이 말이 많으니까 말을 타고 놀다가 말에서 떨어져서 그만 한족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외아들이 그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상심이 크냐고 했지만, 노인은 이 또한 좋은 일이 될지 누가 알겠냐고 합니다.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북쪽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마을의 모든 젊은이들이 전쟁에 징집되어 전사했지만, 노인의 아들은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된 탓에, 징집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현재 좋지 않아 보이는 일들이 앞으로는 복이 될 수고, 지금의 좋게 보이는 일 또한 자중에 화가 될 수 있으니,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자신의 처한 상황 때문에 죽겠다고 끝났다고 하지도 말고, 또 잘나간다고 교만해 하고 잘난 체 하지 말라는 의미 아닙니까?

 

그런데 목사님이 이 사자성어를 쓰면서 이렇게 얘기 하시는 거예요. 장목사님, 제가 40년 넘게 목회하면서 보니...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 빼놓고는 모든 것이 새옹지마 더군요. 그러니 이 땅에서 우린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합시다.

 

알고 있었던 말씀도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듯이, 말씀에 대한 인식의 과정은 우리의 삶이 마칠 때 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매 순간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에 대한 깊은 계시와 지혜의 영, 통찰력이 없으면, 우리는 쉽게 중단하고 후회하고 포기하고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배도 우리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이 은혜가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무엇보다 저와 여러분의 이같은 영적 목마름이 옳은 것은 우리가 이것을 물어보는 대상이 너무도 선하시고 옳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질문을 나보다 못한 사람이나 비슷한 사람, 혹은 조금 나은 사람을 통해 답을 얻는 사람은 없습니다. 작은 위로는 되겠지만, 답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개 질문하고 답을 찾는 이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면 상황은 다른 것입니다. 이분이 팔복 , 이 땅에서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2.

그러나 사실 팔복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진정한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는 자를 누가 복이 있다 하겠습니까?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이런 사람들은 바보 같고 빼앗기는 사람들이지 결코 행복한 사람들 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긍정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오늘 마지막 여덟 번째 복은 더 합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팔복의 말씀을 결론지으십니다. 아무리 때문이라고 하지만, 욕먹고, 매 맞고, 오해당하는 삶이 어떻게 행복합니까? 차라리 이 길은 피해야 할 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 이것이 옳구나 하는 인식의 시간이 옵니다. , 그 말씀이 그런 말씀이었구나하는 영적 깨달음이 옵니다. 거듭남의 시간이 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의 키입니다.

 

, 오늘 본문을 보면 10절에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11절에서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를 같이 나란히 기록함으로써 의를 위한 핍박예수님을 위한 핍박을 같은 선상에 놓고 있습니다. , 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당시, 이 말씀을 듣던 제자들이나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예수님을 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세상의 가치나 자기 자신이 더 에 가깝다고 여겼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다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배부름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세상의 의나 자기 자신의 의는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배부름이 아닌 배고픔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배고픔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상실이라고 합니다. 상실이라는 단어만큼 인간의 내면을  잘 표현한 단어가 흔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실제로 잃어버려서 상실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가 태어나면서부터 상실 , 허기지다 배고프다라는 것입니다.

 

수년 전에 작고하신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소설가인 박완서씨가 2010년에 마지막으로 쓴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책 그림)에서... 그녀는 굴곡진 한국 역사로 인해 비록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지 못했지만, 그래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까지 했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막 베틀에 앉아 내가 꿈꾸던 비단은 한 뼘도 짜기 전에 무참히 중턱을 잘리고 말았다. 전쟁은 그렇게 무자비했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다른 인생을 직조할 수 있었지만 이 역시 내가 당초에 꿈꾸던 비단은 아니었다. 어떤 것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이 대목을 가지고 방속작가인 유선경씨가 자신의 책 [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에서 이렇게 사족을 달았습니다.

 

(박완서의 고백처럼) 모든 인생에는 아쉬움이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자의든 타의든 모든 인생에는 부족과 허기가 있다. 그리고 그 구멍은 어떤 방법으로도 채울 수 없다. 그건 일종의 불록 쌓기와 같다. 저 마다 다른 크기와 색깔을 가진 블록을 가지고 벽을 쌓아올리는데 한 군데가 빈다. 이 빈 공간이 상실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빈 데를 채우고 싶어 하기 마련이라 맞지 않는 블록을 가져다 억지로 깨워 맞추려고 한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이성에게 받으려 하고, 이 사람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저 사람에게 받으려 하고, 남편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자식에게 받으려 하는 등 말이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인생의 존재와 삶에 대한 상실과 배고픔을 아셨고, 이것이 진정으로 채워지기 위해서는 세상의 의나 자기의 의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음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의 상실과 허기짐의 구멍을 깨달은 지성인들의 접근은 어떤 것일까요? 극작가 유선경씨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빈 데는 비워둔 체로 가는 거다. 인생은 그런 거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름 긍정이 되시기도 할 것입니다. 한 노 소설가와 한 젊은 극작가의 주고받은 인생에 대한 고찰이 나름 우리로 하여금 사색적으로, 관조적으로, 철학적으로 인생을 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빈 데는 비워둔 체로 가는 거다. 인생이 그런거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아는 말씀의 인식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핏 동의는 되지만, 분명 그 종착점이 다른 세상의 의자기의 의가 주는 체념과 절망적 인생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고,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떠하십니까? 인생은 그렇게 상실이니, 상실한 체로 살아가라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에서 수고하고 지쳤느냐? 내게로 와라 내가 너에게 참 안식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냥 인생을 지친 체로, 비워 둔 체로, 상실한 체로, 살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당신이 채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나를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배가 더 이상 빈 배가 아니듯, 예수님의 부활 후, 주님의 무덤은 더 이상 빈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만 있는 다락방은 빈 공간이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신 다락방은 성령충만한 기도의 자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빈 데는 비워둔 체로 사는 것이 인생인 것으로 알고 살았는데, 아니면 세상의 의나 나의 의로 채우면 채워지는 줄 알고 살았는데, 어느 날 예수님을 안 이후, 오직 예수님이 나의 빈 공간을 채울 수 있고,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상실과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분임을 인식하고 나니...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되는 삶의 신비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더 이상 상실배고픔이 아니요, 그렇게 나둔 체로 사는 게 인생이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로 채워지는 채워짐배부름의 인생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3.

사실 오늘 말씀은 웬지 복음이 없는 선교지나 복음이 없는 북녘 땅이 생각나게 하고, 그래서 그런 땅에서 예수님을 전하면서 고난을 받고 핍박 받는 장면이 연상됩니다. 혹은 복음이 전해지면서 당하였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이 떠올려지고, 혹은 여러분 중에는 이렇게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위하여 살다가, 욕을 먹고, 핍박을 받았던 과거가 기억되는 말씀입니다.

11-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그런데.... 사실 다른 선교지나 핍박받는 사람들은 나두고, 오늘 이 시간, 이 말씀을 받는 여러분 중에 예수님 때문에 이런 핍박과 고난을 받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것도 예수님 말씀처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의 고난말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핍박이나 고난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 예수님이 주셨던 다른 말씀이 생각납니다....

 

10:34-36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그래서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역설 중의 역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을 따르는 자 즉, 예수님이 오직 우리의 상실과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이심을 고백하고 인식하는 자의 진짜 내면의 변화된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스스로 답하기가 어렵다면,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전도하면서, 어떤 말을 하십니까? 최소한 교회에 나오게 하고, 예수 믿게 하려면, 예수 믿으면 좋아....혼자 있어봤자 뭐해. 교회에 좋은 분들 많아.... 아이들에게도 좋고.... 이민생활에도 도움이 되고, 그것만이야....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셔. 집에 문제가 있쟎아. 아이들도 문제이구.... 병도 낫게 될 것구, 우환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 가정도 기업도 좋아질거야. 예수 믿으면 복 받는거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큰 영광과 명예는 아닐찌라도, 삶의 안전과 안정, 성공과 평안에 대해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말씀에서 주목하는 것은 세상의 가치나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가치,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고 그 의가 내 삶에 들어왔을 때의 변화입니다. 그 순간.... 내 안에 놀라운 혁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상대적이고 유한한 가치 속에서 살던 내가 어느 순간, 절대적이고 영원한 가치를 발견했을 때에 나는 그분을 위해 어떤 댓가도 치를 수 있다는 마음과 결단, 그리고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천국비유가 있습니다....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이것은 소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발견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니, 당신은 당신이 발견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아느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을 전해야 할지 모릅니다.  

 

만약 당신이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은 당신에게서 돌아서고 당신을 핍박할 것입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로부터도 왕따를 당하고 욕을 먹고, 심지어 미쳤다는 얘기도 듣게 될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 동안 당신이 알고 누리던 세상의 가치와 당신이 자랑하던 당신의 가치와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그런데도 당신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시겠습니까?...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러한 일을 당하면 당신은 그 때 비로소 당신이 진짜 그리스도인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주님이 주시는 행복이 세상이 주는 행복과 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유한한 이 땅에서가 아니라, 영원한 그분의 나라에서 그 분이 주시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이것은 실제로 초대교회 때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전할 때 쓰던 대화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팔복의 마지막 말씀은 이런 절대적이고 영원한 의와 가치를 갖고 이 땅에서 사는 자를 향한 마지막 축복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12a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Rejoice, and be exceeding glad: for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가진 믿음이 종교가 아닌 참 신앙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믿는 분이 어떤 분이며,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깊이 인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내가 그분의 자녀요,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복입니다.... 찬양하십시다. 멀고 험한 이 세상 길(3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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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e Life of a Witness
설교일 : 2017.12.03
본문말씀 : John 1:6-15
설교자 : Rev.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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