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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화평케 하는 자여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10-02 (월) 20:19 조회 :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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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7.10.01.
설교자 : 장찬영 목사
본문말씀 : 마태복음 5:9

5:9(장찬영목사)                                                             10. 1, 2017

 

                              행복하여라: 화평케 하는 자여

 

1.

팔복을 깊이 묵상하면 할수록 팔복의 말씀들이 마치 파노라마와 같이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심령이 가난한 자에서 시작된 팔복은 2)애통하는 자로, 그리고 3)온유한 자로, 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5)긍휼이 여기는 자로, 그리고 마침내 6)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보는 자의 삶까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본 사람은 율법 아래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어떤 율법적인 행위나 법으로도, 또 양과 염소의 피로서도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어, 창세부터 감추인 하나님의 비밀이 바로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그 동안 율법이 행하였던 짐승의 피로 우리가 정결케 되는, 죄의 문제가 해결함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친히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흠없고 순전한 피를 통해, 즉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의 비로소 정결케 되고,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함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리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5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속량(구원)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그래서 오늘 팔복의 일곱 번째 말씀은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불려주셨을때에, 우리 안에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것인....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라는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는다면, 이 말씀은 지난 시간에 이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본 자가 어떤 축복된 삶을 살게 되는지에 대한 말씀으로 연결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화평케 하는 자라는 말에서의 화평케 하는이란 단어는 헬라어는 에이레노-포이오스(eileno-poios)인데, '평화'를 뜻하는 '에이레네' '행하다, 만들다'을 뜻하는 '포이에오'의 합성어로, 그 뜻은 평화를 만드는 자(peacemaker)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과 같이 평화에 목마른 시대를 살면서 이렇게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하게 되지만, 화평케 하는것 역시 앞에서의 팔복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지나 태생적인 것이 아닙니다. 화평케 하는것은 애초부터 사람에게 없는 하나님의 성품이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인 것입니다. 그것은 이 평화에 대한 히브리적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화(에리레네/Eilene)의 히브리 단어가 바로 샬롬(Shalom)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샬롬은 그냥 peace라고 얘기하기에는 그 뜻이 깊고 역사적이고 심호합니다.

 

아시는대로 샬롬은 히브리인들의 전통적인 인사말이며, 무엇보다 이 샬롬이란 말은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메시아와 연결되어 있어서, 그 뜻이 '평화'뿐 아니라, 구원(Salvation)으로도 번역되어, 주님이 주시는 완전한 평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화평케 하는 자는 본질적으로, 이 땅 위에서 나름 평화를 이룬 사람들이나 또는 평화에 대한 상을 받는 등의, 사람들에게 쓰이는 단어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사람들이 추구하고 이루는 평화는 다 제한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하고 있습니까?

54:10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찌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에이로스-포이오네)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화평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완전한 평화가 바로 장차 오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가르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9: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2.

사실, 오늘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은 앞에 있는 여섯 말씀과는 달리,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긍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씀들은 처음부터가 충격이었지요. 그런데 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는 환영받는 말씀입니다.

 

이유는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랍비문학]을 통해,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며 평화에 이바지했던 이들을 칭송하였고 그들을 거룩한 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역사가 워낙 외세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아 평화가 가장 큰 소망이었기에, 이것은 민족적인 염원이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그러나 만약 예수님의 말씀이 유대인들에게 부응하는 그 말씀, 즉 나라와 백성들을 지켜서 화평케 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것이라면, 이것은 결코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말씀을 왜 주셨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화평케 하는 자가 대한 한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십니다. 어떤 누구도 진정한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설령 그가 사람들이 그렇게 염원하는 평화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정작 자신은 평화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화평케 하는 자의 한계이며 아이러니인 것입니다.

 

팔복 말씀을 드리면서 소개해드렸던, 뉴욕 맨하튼의Redeemer Church를 섬기시는 팀 켈러(Tim Keller) 목사님이 쓰신 내가 만든 신(Counterfeit Gods)에 보면(책 그림)... 현대 선진국의 복지제도 입안자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학자였던 비어트리스 웹(Beatrice Webb)의 글을 인용합니다. , 지금 유럽의 모든 선진국과 미국의 모든 노동조합법, 근로자의 복지, social security, 은퇴, 보험, 요양시설, 병원시스템 등의 입안이 이 사람에게서 나왔는데, 이 사람의 고백입니다.

1890년이었던가? 한 때 나는 나의 일기장에 인간의 타고난 선과 평화에 내 모든 것을 걸었다.라고 썼다....  35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닫지만, 인간내면의 악한 충동과 본능은 영원하다. 아무리 사회가 바뀌고 제도가 바뀌어도 부와 권력에 끌리는 마음의 변화는 요원하다....  이것은 그가 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후 고백한 글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년에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씁니다. 인간의 악한 충동을 제어하지 않는 한, 지식이나 과학, 복지는 아무리 쌓여도 소용없다. 인간은 결코 선하지도 평화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 그는 인간이 추구하는 선이나 평화가 얼마나 제한적이며, 자기 중심적인지를 정확하게 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 진정한 평화가 없음을 보면서, 화평케 하는 자라는 말씀 앞에, 가난한 심령,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이 평화의 본질인 샬롬과 그 샬롬이 깨어진 이유와 그 샬롬의 회복에 대해서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샬롬은 어떻게 깨졌을까요? 이것을 깬 주범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은 그 주범을 라고 선언합니다.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들어오면서 샬롬이 깨진 결과인 죽음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망은 어떤 것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사망은 우리의 심장이 멈추고 뇌의 기능이 멈춘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나와서 살아야 하는 하나님과의 이별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를 지어서 그렇게 된 것일까요? 또 어떤 행동을 했길래 그것을 라고 부를까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에덴동산에서의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선악과를 먹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허락없이 과일 하나를 먹게 된 것을 가르킨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에게 생긴 유혹에서 시작합니다.

3:4-5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그 유혹은 먼저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과의 약속의 파기였고, 행위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과 같이 되어존재적 금기였던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것을 라고 선언합니다. 죄를 히브리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 , 과녁에서 벗어났다로 정의하는 것은 인간이 마땅히 있어야 할 하나님 안에서 자리를 떠난 모습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왜 선악과를 동산의 중앙에 만드셔서 마치 아담이 그것을 먹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 그렇게 하셨는지에 대해서 얘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뻔한 함정이 아니라, 선택의 자유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피조물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 안에서의 올바른 선택의 자유를 주시고, 그로 인한 선물인 하나님과의 평화, 화목, 샬롬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 하는 자나누고 이간질 하는 자평화를 깨는 자거짓평화를 만드는 도둑이요 살인자였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그에 대해 지칭하는 말들입니다.

 

결국, 첫 인간인 아담은 하나님의 주신 선택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그는 에덴동산에 쫒겨나 하나님과 단절되게 되고, 사망이라는 끊임없는 불안과 염려, 미움과 살인 그리고 깨어진 평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3.

바로 그렇게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진 상태, 이것을 하나님과의 단절 이라고 했고, 성경은 이 상태가 바로 하나님과 원수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원수 되는 일, 평화가 깨진 일이후, 인간이 마음속에는 평화가 없어졌습니다. 어느 누구도 진정한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것을 철학에서, 도덕에서, 권력에서, 물질적인 부에서, 명예나 인기에서 찾아보려고 했지만, 어떤 누구도 참 평화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애초부터 하늘과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어떤 평화도, 어떤 안식도 일시적이요 제한적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고전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첫 번째 사람이 아담이라면, 하늘에서 나신 둘째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고전15:45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생명 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나중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가 되셨습니다.... 나중 아담은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이러한 놀라운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5:10 우리가 곧 원수되었을 때에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엘리레네/샬롬) 되었은즉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의 화평케 하는 자 누구를 의미할까요? 먼저는, 바로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성경은 이것을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2:2 (예수님)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And he is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and not for our's only, but also for the sins of the whole world....이것이 하나님의 비밀,.. 구속의 계획이셨던 것입니다.

 

 

4.

, 이제, 화평케 하는 자가 예수님 자신이시고, 또한 오직 예수님의 화목 제물되심을 믿는 사람들임을 알았다면, 이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은 바로 그 그런 사람들을 당신의 아들이라고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확하게는 영어로도 for they will be called sons(children) of God입니다. ,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려질 것이다 입니다.

무엇보다 유대인들이 오늘 말씀에서 놀랐다면, 그것은 바로 이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하나님이 아버지란 말인데, 당시까지 유대인 사전에는 이런 표현이나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토기장이와 진흙 창조주와 피조물 주관자와 복종자의 관계이기에, 하나님의 이름조차도 부르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 아들이란 말은 아버지의 상속권을 가진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의 의미는 하나님과 동등한 속성을 가진 존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10: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아버지에 대한 말씀을 계속하시다가...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그러자, 유대인들의 반응을 보세요. 10: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오늘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화평케 하는 이인 나를 믿는 너희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려질 것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들(sons of God)이란 단어가 예수님 오기 전까지 성경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는... 첫 사람,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따라서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가 아무리 선하고 경건해도 결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길이 열렸음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나중 아담되신 예수님께서 죄로 원수되었던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화목케 하사 아버지와 아들 되게 하신 것입니다.

1:12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다 죄와 율법 아래 사로잡혀, 마귀의 자녀였고, 불순종 자녀였고,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창세전부터 감추인 이 놀라운 비밀의 말씀을 안 우리는 이 삐뚫어지고 변질된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빚진 자의 삶을 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2:15이는 너희 하나님의 아들들이 흠 없고 순전하여, 비뚤어지고 변질된 민족 가운데서 책망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 너희는 세상에서 빛들을 비추는 자들이라

 

놀라운 것은 이런 나의 존재를 깊이 인식하여 심지에 새기고, 이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깨달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화평케 하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일컬음을 받는 자들의 특권입니다. 여러분, 팔복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당신이십니다. 그분이면 족합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분으로 채워지면 됩니다. 오늘 그분이 여러분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을 성찬의 자리로 초청합니다. 마지막 찬송...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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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행복하여라: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여
설교일 : 2017.10.22.
본문말씀 : 마태복음 5:10~12
설교자 : 장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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