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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의에 주리고 목 마른자여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09-11 (월) 19:58 조회 : 15
09032017_주일설교.docx (15.4K), Down : 0, 2017-09-11 19:58:55
설교일 : 2017.09.03.
설교자 : 장찬영 목사
본문말씀 : 마태복음 5:6

5:6(장찬영목사)                                                           9. 3, 2117

 

                         행복하여라, 의에 주리고 목 마른자여

 

1.

, 오늘 나눌 말씀은 예수님의 팔복에 대한 네 번째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배고픔목마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will be filled.

 

우리는 먼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주리다(hunger)목마르다(thirsty)라는 단어의 원어를 알아보면 좋을 것입니다. 먼저, 주리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페이논-테스(peinon-tes)인데, 우리가 추측하는데로, 이 배고픔은 그냥 배가 고파서 음식을 찾을 때 느끼는 시장기 정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심히 배가 고파 굶주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페이논테스의 허기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한 구절이 바로 [탕자의 비유]입니다

15:16-17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지금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상태... I am starving to death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목마르다(thirsty)라는 헬라어는 딥손-테스(dipson-tes)인데, 이 역시 잠시 목이 말라 물을 찾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목마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딥손테스의 갈증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한 구절은 [마라의 쓴물] 사건입니다.

15: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 광야로 들어왔을 때, 사흘 길을 걸었지만 물을 얻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도 광야에서 사흘 길을 걸었는데 물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때의 갈증이 딥손-테스의 갈증입니다....  , 이 두 단어인 주리고목 마르다가 이런 뜻이라는 것은, 에 대하여 이러한 정도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네 번째 말씀을 가만히 보면, 앞에서 다루었던 세 가지의 복 있는 사람과 비교해서 그 문장의 패턴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두 번째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고..., 세 번째가 온유한 자가 복이 있기에, 네 번째 말씀은 의로운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 예측되는데, 그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세상에 의로운 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어떤 사람을 향해 그 사람 의로와요 또 어떤 사람의 이름 앞에 의사(義士) 라는 칭호를 쓴다 하더라도 그것은 세상의 의요 사람의 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합니다.

3:10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

그렇다면 예수님이 본문에서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서 쓰신 는 사람이나 세상이 추구하는 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쓰신 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디카이오쉬네(dikaiosine):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옳으심인데, 이 의미는 사람이나 세상의 의 즉, 정의의리가 아닌 이라는데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디카오쉬네의 히브리어 단어가 쩨테크(jetek):의를 증명하다, 의를 보여주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의는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언약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거룩하고 옳으신 말씀이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그 말씀이 실행되고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정확하게 본 사람이 바로 제자 요한입니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래서 예수님의 오늘 말씀은 세상의 의나 사람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에 대한 강조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말씀을 받는 우리에게 이런 묵상이 가능하게 됩니다... 바로 나는 하나님의 의가 아닌 다른 의에 주리고 목마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의.... 이것은 먼저 역사적인 배경으로, 다른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던 유대인들을 향한 주님의 엄중한 경고라 할 수 있습니다, 소위 그들은 스스로를 향하여 의롭다라고 여긴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주리고 목마름의 배경은 율법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은 최고의 가치였고, 그 율법을 지키고 수호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변질된 가치(였고) 변질된 열심이었습니다. 율법에 미치다보니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지키도록 하는, 그야말로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으로 자기를 비추어 본질이신 하나님을 알도록 도와준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본질인 하나님의 의는 사라지고, 그 의를 지키도록 도와주는 율법이 본질의 자리를 차지하여, 다른 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와같이 율법이라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의가 아닌 다른 의가 되었다면, 그래서 그렇게 거기에 주리고 목말라 했다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 그 동안 내가 주리고 목말라했던 것, 아니 지금 내가 주리고 목마른 것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사도 바울 이후에 기독교를 집대성했던 사람이 있는데, 바로 성 어거스틴(St. Augustinus)입니다. 이 분이 쓴 책이 그 유명한 고백록(Confessiones)입니다(책 그림). 이 책은 책 제목 그래도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떠나 다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어떤 모습인지를 어거스틴은 자신의 삶을 통해 얘기합니다... 그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았으므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 그날까지 편안할 날이 없다 , 세상의 어떤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단 어거스틴만의 고백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역시도 빈 공간의 허무감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수긍을 하고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주리고 목말라야 할 하나님의 의가 아닌 다른 의를 추구하게 하는, 하나님의 의를 가로막는 영적인 정체는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이것의 정체를 정확하게 간파했습니다.

10:2-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것은 사실 아주 무겁고 무서운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열심히 있는 자를 자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정체가 무엇이냐?... 바로 자기 의(own righteousness)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역시 자신이 이렇게 자기 의에 붙잡혀 살아왔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열심이었지만, 그렇게 말씀을 잘 알았는데, 어느 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성령의 빛에 거꾸러져 자기를 보니, 그 모든 것이 다 자기의 의 였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한국의 성도들은 물론 목회자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목사님을 뽑는다면,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사랑의교회]를 섬기셨던 옥한흠목사님이 그 중의 한 분 일 것입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옥목사님의 묘지가 있는 [사랑의교회] 안성 수양관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해결되었지만, 옥목사님이 작고하시기 직전인 20086월에, 후임자인 오정현목사님께 보낸 편지가 공개되고, 그 편지가 옥목사님의 진짜 편지였음이 밝혀지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편지를 대하면서 그 편지가 꼭 후임자인 오정현목사님께 보내는 편지로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편지는 바로 저를 비롯한 모든 목회자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한 부분을 읽어드리겠습니다.

 

.... 그리고 얼마 전에는 나의 가슴을 찢어 놓는 일이 또 있었다. 나는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한 달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어느 사이트에 들어가) 그 기사와 기사에 대한 반응이 얼마나 뜨거운지 댓글을 좀 읽어 보라고 했다(중략)... 그러나 막상 인터넷을 열고 들어가자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오 목사와 함께 사랑의교회는 물론 나까지 싸잡아서 저질적인 표현으로 비난하는 글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 목사를 변호하는 글들은 불과 몇 개 되지 않았다.

 

오 목사가 바른 소리를 했는데 그처럼 동네북이 되었다면 내가 방패막이가 되어 함께 무덤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비판자의 지적처럼 오 목사는 목사로서 이 사회의 밑바닥 민심을 너무 읽지 못한 경솔한 소리를 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 목사와 만나 다음 몇 가지 질문을 통해 너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너의 정체가 정말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는 내 속에 소리 없이 쌓이는 불신의 먼지를 털어 낼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이 왜 저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을까요? 이것이 어느 개교회의 어느 목사님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마치 우리 주님께서 저에게 너의 진심이 어디 있는지, 너의 정체가 정말 무엇인지 다시 확인해야겠다 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편지를 읽는 내내 마음의 중심이 떨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저를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자기 의는 마귀가 사용하는 가장 절묘한 속임수입니다. 수 많은 목사들과 지도자들,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교회들을 무너뜨린 것이 바로 이 자기 의입니다. 평생 주의 일을 하게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에 빠지게 하고, 서로 이간질하게 하고, 오해하게 하고, 미워하게 하고, 비교하게 하고, 용서 못하게 하고, 결국 주님으로부터 떠나게 합니다.

 

적지 않은 목사들이, 적지 않은 성도들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의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교회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 의에 대한 과시오, 자기를 드러냄이요, 내가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아직도 내 존재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놀랍게도 우리도 경험하지만, 자기 의에 빠지면, 어떤 찬송도 기도도. 성경구절도, 심지어 어떤 말씀도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진실로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자기 안에 도사리고 숨어있는 이 교묘하고 간사한 자기 의를 보면서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그래서 자신에게 절망을 선언하는 자입니다. 이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깊은 사람입니다.

 

 

4.

그러나.... 사실 이러한 자기 의가 자신의 삶 속에 얼마나 뿌리가 박혀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자기 의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오히려 자기 의를 가진 다른 사람이 생각나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자기 의와 꼭 동반되는 현실적인 단짝이 있습니다... 바로 정죄함입니다.

 

자기 의라는 것은 자기가 옳고 자기가 선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에, 그렇지 않는 다른 사람을 꼭 희생제물로 끌고 들어와 동기부여를 하게 합니다. 도무지 맘에 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자연히 사람들을 싫어하고 비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죄는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산상수훈의 말씀을 삶에 가져갈 때 경계해야 할 것으로 말씀하셨던 자의 의의 또 다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7:2-3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한국을 행해 동방의 빛이라고 했던 인도의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타고르(Tagore)가 경험했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늙은 하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기분이 많이 언짢았는데 종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습니다. 하루종일 마음을 추스리며 분노를 다잡고 있었는데, 저녁 무렵 즈음에야 종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주인인 타고르에게 와서 아무 변명이나 말을 하지 않은 체, 곧장 창고로 가서 빗자루를 꺼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이 마당을 쓸기 시작했습니다. 타고르는 화가 치밀어서 그 늙은 하인의 빗자루를 빼앗아 마당에 내동댕이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장 그만 두시오! 여기가 당신이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으면 오지 않는 그런 곳인 줄 알아요? 그런 생각으로 사니 평생 남의 집 종으로 살지. 당신같은 사람은 일할 자격도 없으니 내일부터는 오지 마시오. 당신은 오늘로 해고입니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빗자루를 들고 묵묵히 마당을 쓸려고 했답니다. 타고르는 한층 더 핏대를 올리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지금 나를 무시하는거지. 그만두라는 말 못 들었어요? 늙었다고 봐 주었더니. 내가 바보지. 당장 끌어내기 전에 내 집에서 나가요! 그러자 노인은 숨을 고르며 말했습니다. 빗자루를 든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인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 동안 제가 이런 일이 없었쟎아요?아무 말씀도 못 드리고 이렇게 뒤늦게 나타난 것은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그런데 주인님, 어젯밤에 제 딸아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노인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깡마른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는 노인을 보면서 타고르는 마치 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타고르에게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자초지종을 알지도 못한 체,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누군가를 정죄하는 순간, 얼마나 사람이 옹졸해지고 교만해지고 심지어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그 날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그 사건은 타고르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게 되었고, 그날 이후부터 그는 마음 속에 늘 어떤 사람에 대한 일을 들었을 때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말을 새기며 살았다고 합니다.

 

한번 저를 따라 해 보시지요? 그럴 수 있겠구나... 저는 이게 목회의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근데 그게 잘 안 되는거예요. 자꾸 그 사람의 속 마음이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이것이 맞는 게 아니예요. 자꾸 나한테 내가 속아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내 안에 나의 의가 충만하기 때문이예요... 근데 한 동안 이게 중단되고 있어요. 몸이 아프니까 마음이 아프니까... 그래서 가난한 마음이 되고 애통하는 마음이 되고, 온유한 마음이 되니까... 확실히 자기 의가 줄어요. 근데 조금만 회복되면 내 안에 또 나의 의가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거예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사랑하는 여러분, 사실 우리 모두는 다 세상에, 성공에, 내가 원하는 것에, 주리고 목마른 자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의를 가지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살아왔던 거예요. 그러니 늘 배고프고 늘 목마른 거예요. 그러니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든 어떤 누군가를 정죄하는 거였어요. 이런 우리에게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세요.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우선순위를 가져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이 얼마나 너의 삶을 복되게 하는지를 내가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인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이 배부름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배부르다는 헬라어 단어는 코르타조(Kortazo) 인데 이것은 넘치도록 부어주신다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말씀이 생각나시지요? 바로 주님이 베풀어 주셨던 오병이어 사건입니다14: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또 어떤 말씀이 떠오르시지요?

23: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언가에 배고프세요? 무언가에 목마르세요?.... 이제 한번 고백해 보세요. 주님, 나는 주님으로 인해 배고프고 주님으로 목말라하겠습니다. 그러나 주님, 여전히 나의 의를 드러내는 저의 본성을 아시지요? 그러니 주님, 제가 매순간 주님의 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6: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을 성찬의 테이블로 초청합니다.... 마지막 찬양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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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설교일 : 2017.09.17.
본문말씀 : Matthew 5:8
설교자 : Rev.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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