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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온유한 자여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09-11 (월) 20:01 조회 : 17
주일설교_08272017_1.docx (16.0K), Down : 0, 2017-09-11 20:01:08
설교일 : 2017.08.27.
설교자 : 장찬영 목사
본문말씀 : 마태복음 5:5

5:5(장찬영목사)                                                             8. 27, 2017

 

                               행복하여라, 온유한 자여

 

1.

가끔 한국에 계신 목사님들이나 교우들이 저희교회를 방문할 때 놀라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아마도 그 중의 하나가 저희교회 부지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익숙해져 있다보니 그렇게 크다는 생각을 못하는데, 그분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 설교준비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별히 오늘 말씀인 세 번째 복인,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좋아하겠구나... 좁은 땅에 비해서 인구가 많다보니 땅이 귀하고, 또 오랜 시간을 통해 땅을 차지하는 것이 재산을 불리는 일 순위가 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에 대한 조건이 온유한 자라는 데서 우리는 약간의 실망감을 갖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이 온유함이라는 말이 그렇게 좋은 인상만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온유함의 사전적인 뜻은 마음씨가 따뜻하고 부드러움, 크게 대가 세지 않고 모가 나지 않음이지만, 이 단어가 풍기는 이지미로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고, 과연 이 마음으로 땅을 받을 수 있나 하는 말씀이 석연치 않기 때문입니다. , 말씀과 삶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삶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간파한 분이 계십니다....이 분은 뉴욕의 맨하튼을 중심으로 하는 리디머(Redeemer) 쳐치를 섬기시는 팀 켈러(Tim Keller) 목사님이십니다. 이분이 최근에 쓴 책 Counterfeit Gods인데, 직역하면 가짜 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인생의 소위 성공을 위해 모인 젊은이들에게 너의 우상을 제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짜 행복이 없음을 얘기하며 도전합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내 안에서 만들어져 온, 내가 만든 하나님이 있어서 참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내 삶으로 가는 것을 막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 책은 한국어로는 내가 만든 신으로 번역되었습니다(책 그림).

 

절망에서 헤어나 전진하려면 우리 마음과 문화에 자리한 우상을 분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짜 신들의 악 영향에서 벗어나 해방되는 길은 참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 뿐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시내 산과 십자가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분을 만나면 진정으로 당신을 용서해 주신다. 능히 그러실 수 있는 분은 주님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만든 신은 반드시 나를 배반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인간의 성공신화도 부족함이 없는 풍족한 소유와 소비로도 내 영혼의 헐벗음을 면치 못하게 한다. 결국 참 하나님으로 대치하지 않으면 계속 대상만 바뀔 뿐이다.

 

우리가 오늘 예배드리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내가 만든 가짜 하나님에게 마음의 위로를 받고, 내가 원하는 것을 간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참 하나님이신 그분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위로이며 행복이고, 그래서 그것이 진정 그분이 말씀하신 것이라면, 이것을 능히 내 삶으로 가져갈 수 있고, 그렇게 살 수 있다는 믿음에서, 우리는 오늘 예배드리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2.

, 그렇다면 먼저, 온유한 자에 대한 말씀이 어떤 배경에서 왔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사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어서 그는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은 [시편 37편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는 것에 많은 성서학자들이 동의합니다. , 이 내용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새로운 말씀 보다는, 구약의 시대부터 쭉 깔려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이 다시 확인시켜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시편 37편이 무엇보다도, 불의한 자의 압제와 그들의 불공평한 탈취가 일어나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동시에 그런 가운데서도 그것에 절망하거나 원망하는, 노를 품지 아니하고, 잠잠히 하나님의 주권을 기다리는 자에게 베풀어주시는 말씀이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복인, 땅을 차지할 것이다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37:7-8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이런 차원에서 예수님이 본문에서 말씀하신 단어 온유라는 단어는 먼저 헬라어로 프라우스(Praus)라는 단어로 온순하다, 착하다라는 기본적이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뿌리인 히브리어 아나(anaw)의 뜻은 고난당하다, 굴복하다, 자기를 낮추다입니다. , 예수님이 지금 산 위에서 하신 온유한 사람의 뜻은 성질이 온순하고 착한 사람의 외형적 모습이 아닌, 고난과 괴롭힘 속에서도 자기를 낮추고 기다리는 사람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온유한 자의 원뜻이 고난과 괴롭힘 속에서도 자기를 낮추고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이런 자에게 주시는 복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과 시편 37편에 나오는 고대 히브리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을 연결해서 묵상해 보면... 이 말씀이 전통적인 히브리인들의[토지법]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우리의 묵상을 넓혀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토지법]의 핵심은 땅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대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25:23b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그리고 이 대 전제 아래, 어느 누구도 땅을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없도록, 하나님은 [희년제도]를 주셔서, 50년째 되는 해에는 자신의 땅 문서를 일차적으로 포기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레위지파를 뺀 모든 백성은 일정량의 땅을 배분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대가 바뀌고 전쟁과 내란을 겪고, 말씀이 희미하게 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토지에 대한 원칙을 잃어버리게 되고, 백성 사이에는 빈익빈 부익부의 토지불법매입이 생기게 되고, 자연스럽게 힘없고 가난한 자의 생계수단이 되는 토지를 빼앗기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긴 것입니다.

 

바로 주님은 이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이 온유한 자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너무 나이브 하시구나. 말씀은 좋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러한 반응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별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의 시대에는 땅을 통해 부를 독식하고 축적하는 자들이 급증하면서, 그에 반해 고난당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세상의 축소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역사적으로 가장 길고 힘들었던 암흑과 침묵을 깨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오심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But when the fulness of the time was come... 

 

, 그런데 그렇게 때가 차서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유한 자의 복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오늘이라고 하는 빈익부 빈익빈의 갭이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오늘 말씀을 꼭 필요할 것입니다.

 

 

3.

, 본문에서 예수님은 지칭하시는 온유한 사람이란, 이런 역사적인 배경과 당시의 시대를 바탕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두 가지의 뜻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들어라. 온유한 자는 먼저 이런 사람이다. 그 사람은 세상을 보니 도무지 악인이 성행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지고, 이제는 땅 마저 빼앗겼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주권은 여전히 역사하시기에,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묵묵히 기다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는 먼저 (timing)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37편 뒤 부분을 다시보면,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이해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때(시간)를 기다리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3 주께서 저를 웃으시리니 그 날의 이름을 보심이로다 But the Lord laughs at the wicked, for he knows their day is coming. 

 

18여호와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The days of the blameless are known to the LORD.

    

물론 하나님의 시간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온유함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의 첫 번째 기적,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2:4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Dear woman, why do you involve me? Jesus replied, My time has not yet come.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 환란에 대한 말씀인 마태복음 25장에서 이같이 마지막 때를 사모하고 분별하는 자에 대한 비유를, 마치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는 것에 비유하십니다.  

25:1-5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신부의 기다림은 신랑을 만날 때 완성됩니다. 신부의 순결은 신부의 기본 자격이지만, 순결이 신랑을 위한 기다림의 순결이 아니라면, 그것은 또 다른 모습의 자기보챔과 우월감의 또 다른 모습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신부의 관심은 오직 신랑되시는 그분의 오심입니다. 그 때에 모든 서러움과 괴로움, 오해와 사람들의 이목에서 자유하게 되고, 신랑 안에 참 자유와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신랑이 오신다. 분명히 오신다, 더디어도 오신다... 이것이 온유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에는 두 가지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신랑의 오심에 대한 신뢰 (동시에) 신부로서의 자기 포기입니다.

 

,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한 사람의 두 번째 의미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신랑의 오심을 기다리는 신부에게 필요한 온유함의 두 번째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르켜 자기 권리의 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신부가 자기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랑을 위한 자기 권리의 완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부의 모든 권리는 신랑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오늘날 사랑이라고 미명아래 일어나는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또 같은 형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싸움의 근원은 사실 권리 싸움이라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더 이상은 합의나 조율이 되지 않기에 급기야는 가장 많은 민사와 심지어 형사 소송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몸이라고 하는 교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단에서 가장 많이 드는 비용이 교회 안에서의 소송문제입니다. 사실 여기에서의 가장 큰 이유 역시 권리 싸움입니다. 이 싸움과 갈등이 대부분 오래 지속되고,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어느 한 편도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법적인 판결이 났다해도 거의 죽을 때까지 원수관계로 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유한 사람의 두 번째 의미가 자기 권리를 포기라는 것이 사실 낯설게 들리고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권리 싸움이나 갈등의 와중에 있는 분이라면 더 더욱 그럴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께 자신의 주장이 옮음을 도와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 분에게도 주님의 도우심이 있기를 기도하면서, 무엇보다 오늘 이 말씀을 먼저 받을 수 있는 분은 지금, 자신의 권리를 잃어버리고 빼앗긴 분들이 해당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가장 많았던 민사/형사 소송은 땅 분배와 재산분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법을 광야에서 처음 만들었던 이유는 광야에서조차 땅과 재산으로 인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경우를 대비한 법이었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 이 민감한 땅과 재산 문제에 대해서, 그런 가운데 비수같이 오고 가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자기 권리를 찾는 것은 커녕, 땅 조차 소유하지 못하게 된 소위 실패한 자들에게,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지금 나는 나의 권리를 갖고 있다고 할찌라도 이 땅에서 겪게 되는 자기 권리의 포기당함 을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본질인 결핍과 혼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이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이런 주님의 말씀을 받아드릴 수 있을까요? 바로 하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세상의 땅을 소유하고 자기 권리를 소유한 사람들에 비해 하늘을 바라 볼 기회가 훨씬 많습니다.... 사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자기의 권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성취욕과 인생의 열심을 동원해 땅을 차지하는 것이 세상의 순리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 그대로 차지(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록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그리고 자기의 작은 권리 마저 포기당한 사람은 결국 애통하는 마음이 되어,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결한 신부가 되어 신랑오실 ''를 기다리며, 마땅히 자기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마저 포기한 자인 그 온유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당신의 을 은혜로 받게 되는, 말 그대로 부여받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럼 언제 이것을 깨달을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내게 임할 때입니다. 그 동안 내가 이 땅 위에서 그렇게 주장하고 외쳤던,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 했던 나의 자존감, 나의 권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얼마나 하잘 것 없고 작은 것지를 알게 될 때... 그리고 그 자기 권리의 옳음이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나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주님만이 모든 권리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그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땅의 삶을 다 마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 모두가 그 나의 권리를 위해 왜 그렇게 치열하고 고통스럽게 살았는지를, 그리고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불편하게 힘들게 살아왔는지를. 비로소 그 영광스런 주님의 빛 아래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론토대학교, 위클리프 콜리지의 성서학자인 글렌 테일러(Glen Taylor) 교수는 이 본문을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팔복의 온유한 자에 대한 말씀을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가 마침내 하나님의 땅을 받을 것이다

 

4.

실제로,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 히브리어 뿌리는 에레츠(Ele-ch)인데... 이 단어는 세상의 땅의 의미보다는 하나님 나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을 가장 적절하게 번역한 단어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처소입니다.

14:2b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I go to prepare a place for you.

 

, 예수님이 말씀하신 문자적인 땅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영생(eternal life)의 관점인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이미 시편 37편을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현실적인 나는 땅을 빼앗긴 체로 살고 있지만, 누군가를 원망하고 불평, 저주하지 아니하고, 그 마음을 지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자, 그 사람은 마침내 영원한 땅을 허락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잠시의 승리와 만족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어떤 복을 받습니까?

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이 되어 자녀대대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 온유한 사람의 행동을 보십시오

37:26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있다고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니까, 애통하게 되고, 애통하니까 하나님의 때와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니까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이런 인생이 불가능 할까요?...아닙니다. 이런 인생을 사셨던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자기의 권리가 내려놓게 되는 부끄러움을 다 내려놓으시고, 하나님의 주시는 온유한 자가 되셔서 사셨던 것입니다.

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이 온유한 마음으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귀하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그 모든 것을 맡기심으로 가장 순결한 신부의 인생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부활을 통해 다시 살리시고 높이심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당신의 우편에 앉는 가장 영광스런 기업으로 주셨던 것입니다. 진정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자기의 권리가포기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영원한 나라, 그리고 자녀 손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찬양하십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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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설교일 : 2017.09.17.
본문말씀 : Matthew 5:8
설교자 : Rev.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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