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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심령이 가난 한 자여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08-08 (화) 03:28 조회 :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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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7.08.06.
설교자 : 장찬영 목사
본문말씀 : 마태복음 5:1~12

5:3-12(장찬영목사)                                                           8. 6, 2017

 

                            행복하여라: 심령이 가난 한 자여

 

1.

우리교회가 협력하는 선교사님 중에, 터어키의 송정렬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수 년 전에 소아시아를 방문했었는데, 그때 송선교사님의 인도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의 하나인 라오디아게(Laodikeia)교회가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돌무더기와 옛날의 모습을 복구한 기둥만 남아있는 곳이었지만 감회가 새로웠습니다(라오디게아 그림 1,2,3). 이 곳은 예수님 이전부터 상당한 상업과 금융의 도시였고, 유명한 옷감의 원산지였던 도시였고, 의학적으로 이미 그때에 안약을 만들 정도로 상당한 부와 권세, 향락을 누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때 그 돌만 남은 터 위에서 주님께서 그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주신 계시록 3 17절의 말씀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3: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자칭 부자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할 정도로 물질적인 부를 누렸지만, 정작 주님은 그들을 향해 너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자(The wretched, pitiful and poor)라고 했고, 그들은 가장 뛰어난 눈병을 치료하는 의학기술을 자랑했지만, 주님은 그들을 향해 실상은 눈이 먼 자(The blind)라고 책망하셨고, 그들은 그곳에서 생산하는 멋지고 아름다운 의복을 입고 있었지만, 주님은 그들을 향해 벌거벗은 자(The naked)고 하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날 현대인들이, 아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조차도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면 주님께서 라오디아게 교회에게 말씀하신 단어들일 것입니다. 곤고함, 가련함, 가난함, 눈이 먼 자, 벌거벗은 자... 그런데 그 중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가난(poverty)일 것입니다.

 

일전에 한국의 거의 모든 방송에 출연해서 시청률을 올리던 [행복 전도자]로 소개되었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가 한번은 방송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청중들은 환호했습니다. 가난해지지 않도록 결심하십시오. 가난은 행복의 적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가난에서 나오십시오 아마 이 한 마디가 현대인들의 그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가난은 우리의 행복을 위협하는 처럼 보입니다. 아니 악은 아닐지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주님께서 이 가난이라는 용어에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복인 마카리오스(makarois)라는 단어를 쓰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아예 심령이라는 말을 빼고 얘기합니다...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돈이나 부, 그로인한 권세와 지위를 우상처럼, 마치 [행복의 필수 조건]으로 생각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정말 매력 없고, 맥 없는 말씀처럼 들릴 것입니다. 그래서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그의 책 산상수훈에서 당시 청중들의 충격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때 주의 말씀을 듣는 자는 틀림없이 경악하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시 사람들에게 저주로 여겨졌던 것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도 큰 충격이었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어렸을 적부터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증거는 모든 면에서의 물질적인 번영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것을 완전히 뒤집어 반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쓰신 이 가난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를 알게 되면 더 더욱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충격, 경악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본문에서 쓰신 헬라어는 프토코스(ptokos)라는 단어였습니다. 근데 이 단어의 의미는 인생을 살면서 물질 때문에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는 정도의 그런 일반적인 가난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사람들에게 굽실거리면서 동냥을 하는 거지의 형편을 이야기 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혹이나 쉽게 들을까헷갈릴까하여, 의도적으로 산 위에 올라가 앉으셔서라는 이유를 가지시고, 그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유명한 설교가요 선교사인 스탠리 죤스가 어느 날 횡단보도에 서 있었답니다. 그는 사람들이 도로를 건너는 것을 보고 무심코 따라 건너려 했는데, 그때, 곁에 섰던 어떤 여자가 그의 팔을 붙잡으면서 말리는 것입니다. 빨간 불이예요 스탠리는 미안한 듯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기 건너가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러자 그 여자는 그의 눈을 응시하면서 이렇게 한 마디를 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보지 말고 신호등을 보세요.순간 스탠리는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지만, 그 순간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는 자신이 평생에 바라보고 가야할 것이 무엇인지 마음에 확실히 새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사람들을 보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보고 따르는 것입니다

 

 

2.

, 먼저 바라봐야 할 주님의 말씀은 심령한 가난이란 단어일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일까요?... 이것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될 마음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 자기의 영적 가난을 깊이, 뼈저리게 자각하므로 하나님의 도움을 갈구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무력함을 철저히 깨닫고 자신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기의 마음을 온전히 비우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하여 실망하여 자기의 소유와 존재에 대해서 무력함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낮아지는 마음입니다. 낮아지는 마음은 깊어지는 마음의 시작입니다. 낮아지고 깊어질 때, 우리는 그분을 온전하게 그리고 순전하게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에 대해, 영성학자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는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재주나 능력이 있는 자 아닌 깊은 자를 사용하신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이 친히 설명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비유로, 어느 날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갑니다. 바리새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건한 자요 능력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본심에는 사실 하나님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과 자기가 가득 차 있는 자였습니다. 겉으론 거룩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마음의 중심에는 보챔이 심하여 얕은 종교생활을 했던 자였던 것입니다.

 

반면 세리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자기가 어떠한지를 알기에 성전 앞자리로 가지도 못합니다. 자신의 삶을 보니, 너무도 부끄러워 성전 뒷 구석에서, 하늘도 보지도 못한 체,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누가는 그런 세리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보니...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기도 밖에는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내면을 숨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선 자신의 물질과 부를 자랑할 수 있지만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리와 물질, 권세, 이 모든 것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었음을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영적으로 빈털터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낮아진그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하셨고, 낮아진 그의 심령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어졌기에, 그 같은 이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도, 여러분에게는 여러 가지 일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직장이나 가정, 건강에 닥친 문제나 어려움을 잘 해결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반면 그렇지 못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는 내가 그것을 잘 해결하였어도, , 이것이 내 능력이 아니구나...를 알고, 또 설령 안 되었을지라도 , 내 힘으로 안 되는구나. 주님의 도움이 필요허구나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낮아지고 깊어짐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축복을 경험하는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오늘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3.

, 또 하나의 묵상은 이렇게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복(makarios)천국이 저희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다라는 말씀 속에는 무엇보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말 그대로, 내가 건짐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아무리 보아도 자신에게 구원이 없음을 깊이 깨달은 자는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고백입니다....  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이것은 내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값없이 얻은 사람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경험하기에 이 땅이 전부가 아니구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땅의 삶이 소중하지만, 이 땅의 삶이 결코 영원한 것이라 말씀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가장 먼저 순교의 영광을 누렸던 스데반 집사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7:55-56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하늘이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스데반 집사의 고백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7:57-58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누가 등장합니까? 사울입니다. 사울은 바로 훗날 기독교의 역사를 만든 사도로 일컬어지는 바울의 히브리 이름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회심장면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9:18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주님의 은혜로 비늘이 제거되면서 다시 보게 되는데, 다시보다라는 헬라어가 아나블레포 (anablepo)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아나(Ana/위를)+블레포(Blepo/보다)의 합성어입니다. , 위를, 하늘을 보게 되었다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땅만 보지 않고, 하늘을 보는 축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만 보지 않고 하늘을 보는 그는 이제 주님의 임재와 다스림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 순간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주님의 임재연습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로역정과 같이 고전 중의 하나인 1600년대 로렌스형제의 일기를 모은 책인[하나님의 임재연습]((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라는 책을 기억합니다(책 그림).

 

그는 시골의 한 수도원에서 아무도 하길 원하지 않았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정원을 가꾸고, 허드레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구보다도 깊이 경험했던 분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에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아니라, 나를 다스리고 있는 분이 누구냐로 나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천국 같은 곳에서 살기 때문에 천국이 나의 것이 아니라, 천국의 주인이신 주님을 날마다 경험하기에 천국이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누가복음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린대로, 누가복음에는 심령이라는 말이 빠져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6:20)

 

이것은 마치 가난이 복이라고,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고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거꾸로 뒤집으면, ()는 복이 아니고, 부자는 천국과 거리가 멀다고 하는 말씀을 이면에 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복음의 이 구절에 대하여, 이것은 실제로 돈이 없어 가난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 말씀은 주님께서 실제로 돈이 없어서 어렵게 사는 가난한 자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실제적인 가난이 복이 있다는 것일까요? 무엇보다 먼저, 부자에 비해 가난한 자는 예수님을 쉽게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미국 목사님들이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왜 같은 아시안이고 지리적으로 거의 같은 지역인데 한국교회는 저렇게 부흥하고, 일본은 그렇지 않은지를 묻곤 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또 그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한국교회의 배경에는 가난과 고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도 가만히 우리를 돌아다보면, 언제 믿음이 커졌는가? 언제 주님을 깊이 만났는가?... 바로 가난할 때였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을 때였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시절, 부모님이 부자였을 때, 교회 가자고 했다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 믿었을 것입니다. 돌아보니, 오히려 가난에 처한 것이 주님의 은혜였고, 그 가난 때문에 저는 교회에 나갔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가난이 오늘의 저를 만들고, 그 가난이 예수님을 만나게 하고, 그 가난이 저로 천국을 소유하게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9 23절에서 예수님은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바꾸어 말하면, 가난한 자가 구원 받기가 훨씬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부자를 폄하한 것이 아니고, 지금의 가난이 힘은 들지만, 오히려 이 가난으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난 때문에 낮아지고 비워져, 주님만을 붙잡는 또 하나의 믿음이 아닌, 생존을 거는 참 믿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난에 대한 마지막 묵상은...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가 참 진리라면, 우리는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가난을 선택할 수 있다라는 적용과 결단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것을 묵상하는 데 도움이 주었던 한 분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쟌 지글러(Jean Ziegler) 라고 하는 분입니다(사진).... 이분은 1934년 생이으로 스위스 분입니다. 소르본대학과 제네바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UN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섬기면서, 오늘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세계의 절반이 겪고 있는 기아와 가난의 상황이 인간의 탐욕에서 온 것임을 고발한 분으로 유명합니다. 이 분이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탐욕의 시대](책 그림)는 이 말씀에서 가난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적용과 실천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2010년 유엔의 식량농업기구의 발표를 통해, [현재의 전 세계의 인구는 62억이고, 지구 전체의 농업 생산력으로는 120억 명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음에도, 854백 만 명의 사람들이 심각한 만성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있으며, 5초마다 1명씩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기아로 목숨을 잃는다]는 현실을 발표하면서, 그 원인이 바로 탐욕에 눈이 먼, 소위 선진국 나라들과 자기 배를 채우는 기업들 그리고 자신의 부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체 다른 사람들의 가난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는 지상행복주의자들 때문임을 통렬한 목소리로 폭로합니다.... 들어 보십시오.

 

[오늘날 지구상에는 다섯 살 미만의 어린이들 중에서 1천만 명 이상이 해마다 영양결핍이나 각종 전염병, 오염된 식수, 비위생적 환경때문에 목숨을 잃고... 12억이 넘는 인구가 하루에 1불도 안 되는 수입에 의존하여 삶을 영위하는 극도의 빈곤에 처해 있으며... 절대빈곤에 있는8 5천만 명이 글을 전혀 모르는 문맹이며, 그 중에 3 2,500만 명은 학교에 갈 가능성이 전혀 없으며,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부터 목숨을 잃는 어린이가 매해 1,200만 명에 달한다. 그런데 당신은?]

 

그는 오늘의 시대가 바로 탐욕의 시대라는 것을 극명하게 증거합니다. 그는 우리가 지금껏 몰랐던지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살았던지, 이 지구촌의 기아와 가난은, 비록 내가 가난에서 벗어났더라도, 더 이상 우리가 모른 체하고 피할 수 없는 문제임을 깨우쳐 주려고 했던 것이지만, 이것을 얘기하셨던 분은 사실 쟌 지글러가 아니라, 이미 2000년 전의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주님의 말씀은 가난한 자(그들을 위해 가난을 선택할 수 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로 묵상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이 참 진리일까요? 주님이 우리의 가난을 위해 기꺼이 가장 가난한 자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쟌 자글러가 유엔에서 했던 유명한 말입니다. 기아는 절대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기아로 죽고 있는 어린아이는, 지금 그 아이의 음식까지 먹는 어느 배부른 자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 가난을 같이 감당해 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선교적인 삶으로 초대합니다. 우리가 보는[바이블 타임]에서, 또 여러분 중에는 매월 카드에서 혹은 일정 액수들을 고아들이나 가난한 자들을 섬기고 계시고, 또 속회마다 작은 마음들을 모으고 있고, 휴가를 내서 가는 단기선교 등을 통해 이런 실천들을 합니다. 이 모두가 그들을 위해 가난을 선택하고 혹은 가난에 동참하는 자의 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행복의 조건]에 귀를 열어보십시오. 계속 그 말씀을 가슴에 새겨보십시오... 행복하여라, 심령이 가난한 자여 행복하여라, 가난을 선택하고 가난에 동참하는 자여.... 네 안에 천국이 있으니라....오늘 주님이 주시는 첫 번째 행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제 여러분을 성찬의 자리로 초청합니다. 주님주시는 말씀을 기억하며 모든 이의, 특별히 가난한 이의 떡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조용히,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가십니다.

 

마지막 찬양: 심령이 가난한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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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설교일 : 2017.09.17.
본문말씀 : Matthew 5:8
설교자 : Rev.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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