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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무엇 때문에 행복한가?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07-31 (월) 18:58 조회 :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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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7.07.30.
설교자 : 장찬영 목사
본문말씀 : 마태복음 5:1~12

5:1-12(장찬영목사)                                                           7.30, 2017

 

                               나는 왜, 무엇 때문에 행복한가?

 

1.

지난 시간동안 목회하면서 저에게 다가온 가장 큰 이슈, 즉 화두를 짧은 한 단어로 지칭한다면 무엇이었을까 한다면 그것은 행복(happiness)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 개인도 마찬가지고, 제가 목회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5학 때에, 교회에 가자고 전도하던 반 친구에게 거기 가면 행복하니?라고 물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럼, 행복하지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행복하다는 교회에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어렸지만, 저에게는 그만큼이나 행복이란 단어가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저는 행복한 교회에서 중학교 1학년 때 가장 행복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제 인생을 다 드린다고 고백했고, 당시 가고 싶어 했던 학교를 뒤로하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후에 졸업을 하고 전도사가 되고, 또 목사가 되어서 교회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때에 저에게 비춰진 교회와 교인들의 모습은 제 기대와는 달리 행복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저의 목회의 화두 역시 행복 이란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제가 썼던 책에는 그리고 심지어 논문에도 유독 이 행복이란 단어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단상집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라는 책의 표지에도 장찬영목사의 행복서신이 소제목이었습니다. 이후에 [제자도]에 대한 책을 썼는데, 아예 그 제목을 [행복한 제자도]라고 이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제가 쓰고 있는 행복이란 단어가 주님이 말씀하신 행복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추구하고 경험하고 싶었던 이 행복이란 단어는 제 인생이나 목회의 화두가 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여 주셨던 당신의 모습이요, 그분의 삶의 정점이요, 또 그분의 성품이요, 그리고 그 분이 우리에게 가장 전하고 싶으셨던 메시지 중의 메시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팔복(八福)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민족만큼 이 복에 대해 한을 가진 백성은 많이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복을 받고 싶었는지, 집집마다 벽에, 대문에, 방에, 물건에, 이불에, 옷에, 젓가락에, 숫가락에 심지어는 이름에도 ()이란 단어를 넣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단어가 낯설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짧은 시간에 부흥한 것 역시, 가난한 시절에 어찌하든 이 복을 받겠다간절한 염원이 한 동기가 되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기가막힌 예수님의 행복론팔복은 의외로 오늘날의 크리스챤들에게 잘 묵상되지 않은 말씀 중의 하나이고, 목회자들 또한 잘 전하지 않는 말씀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설교자로서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단편적으로는 전한 적은 있었지만, 이 말씀을 세세히 또는 연속적으로 전한 적은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 1)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이 팔복의 내용이 부담스럽고 두려워지는 말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음이 온유한 자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면, '정말 나는 온유한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과 같은 내용을 설교하려고 하면'내가 과연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을 사람이 될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내가 추구하기에는 너무 수준이 높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2)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말씀이 성품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품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품의 변화에 대해서 내려놓은 지 이미 오래된 성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도 이 성품의 변화를 고집하십니다.

 

3)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이것은 아주 근본적인 것으로, 그 동안 혹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행복의 조건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의 조건이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주 솔직한 말씀 앞에서의 자기 대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언제부터인가부터 저 역시도 이 팔복이 부담이 되었고, 무엇보다 지난 겨울부터 찾아 온 갑작스런 변화에 처한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는 그래도 여전히 행복한가? 아니 나는 왜, 무엇 때문에 행복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자신이 없고 부담되지만, 교회로 돌아가면 꼭 이 말씀을 미루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오늘부터 팔복과 가능하면 계속해서 산상수훈을 놓고 주님이 말씀하시던 그 동산으로 함께 올라가려고 합니다. 부디 주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2.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이스라엘 방방곡곡에서 구름떼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였습니까? 바로 앞에 있는 4장 후반부를 보면 갈릴리에서도 오고, 데가볼리에서도 오고, 예루살렘과 유다 지방에서도 오고, 심지어 요단강을 건너서 이방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무리들을 이끌고 갈릴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으셔서 입을 열어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첫 번째 말씀인 51절에는 흥미로운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문자적으로 보면 마치 제자들만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학자들은 산상수훈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주신 말씀이지 다른 무리들하고는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도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제자들이 나아온지라에 대한 너무 문자적인 해석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수님의 이 산상수훈의 말씀은 제자가 되지 아니하면, 아니 최소한 제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결코 들리지도 순종할 수도 없다는 것에는 동의해야 합니다. 제자주님을 따르는 자 주님께 헌신된 자 주님을 위해 훈련받는 자 주님의 마음을 아는 자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는 최소한 그런 자가 되어야, 아니 최소한 그런 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주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순종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 두 주 동안 소개해 드린 하나님의 사람, [오스왈드 챔버스]가 쓴 산상수훈의 첫 머리에서 나오는 질문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을 생각할 때 구세주보다 교사로 먼저 생각하지는 않는가?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피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 예수님을 훌륭한 교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의 의견이요, 자기의 생각을 완성시켜주는 정보 정도가 될 수 있습니다. 굳이 그 말씀을 선택하거나 순종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나의 주님이라면 다릅니다. 그것은 순종과 결단만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여러분 모두도 다 행복에 대한 조건이 있을 것입니다. , 여러분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무엇이었고 무엇입니까? 또 이런 행복에 대한 책들은 누구나 한두 권 즘 읽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내용들은 거의 대동소이한데, 행복의 조건은 대부분 불행이나 고난에 대응하는 자세, 평생에 걸치는 배움의 태도, 성숙한 인간관계, 시간과 물질의 관리, 육체적 건강과 정서적 건강의 밸런스 등입니다. 어떻습니까?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조건으로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의 구주이신 주님이 말씀하신[행복의 조건]보다 세상 사람들이나 학자들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에 더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챔버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에게는 절망만 안겨준다. 이것은 바로 주께서 의도하신 바이다. ...무엇을 의도하셨다는 것일까요? 나를 구주로 믿는 자와 교사로 생각하는 자를 말씀으로 걸러내시기 위한 의도라는 것입니다. , 내가 추구하는 행복은 조건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나는 왜, 무엇 때문에 행복한지를 걸려내기 위해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말씀에서 충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좋은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그 동안 생각하고 추구해 온 [행복의 조건] 정도의 수준이 아닌, 아니 그것들과는 너무도 다른, 때로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3.

5 1절에는 흥미로운 말씀 한 마디가 또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앉으셨다는 표현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산에 올라갔기 때문에 그랬다 생각하면 간단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그렇게 평범한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서 앉으시니라는 것은 이동이나 행동에 대한 표현이 아닌, 어떤 동기부여나 이유를 설명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 문화와 풍습에는 산에 올라가 앉는다라는 표현에는 어떤 랍비나 율법사 혹은 아주 중요한 사람이 어떤 권위를 가지고 가르침을 주기 위해 자리를 잡는다라는 의도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평상시의 예수님께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을 가르켜 산상수훈(山上垂訓/Sermon on the mount)로 명명하여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굳이 평지에서, 호숫가에서, 어느 집에서 말씀을 하실 수 있는데 굳이 주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라는 것은 그분의 진지한, 평상시와는 다른 권위있고 아주 중요한 [의도적인 복선]이 깔려 있음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말씀을 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권위가 있는지를,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어떻게 그분을 만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았던 제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요한입니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그렇다면 예수님이 산위에 올라가 앉으셨다는 이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산위에 올라가 말씀하시는 주님 앞에 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만 산에 오르셔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이제 나도 그 주님을 만나기 위해,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산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정신없이 사는 게 힘이 들어도, 아무리 우리를 낙망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는 일이 있어도... 우리도 주님을 따라 산에 올라가 주님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나들목교회를 섬기시는 김형국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만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썼습니다(책 그림). 그 책에서 저자는 주님을 만나지 않는 이상 변화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 아래, 2000년 전 주님이 만나 주셨던 다섯 사람의 삶을 들어서 얘기합니다. , 여러분은 어느 삶에, 어떤 인물에 속하시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1) 첫째, 누구도 모르는 고통 가운데 있는 당신: 나인성과부 - 과연 누가 나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도대체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 겁니까? 세월이 약이라는데, 지내보면 그렇게 좋은 약이 아닌 것 같아요... 고통의 순간에는 세월조차 너무나 천천히 가거든요.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이제 내 자신을 포기하게 되네요. 울지 말라구요? 당신이 함께 한다구요? 그게... 무슨 뜻이지요?

 

2) 둘째, 숨어서 우는 외로운 당신: 사마리아 여인 -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아무도 내 마음 속 아픔과 고민을 알아주지 않아요. 이 외로움은 부모나 친구와도 나눌 수가 없네요... 예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찾아오실까요? 설마... 아니겠지요. 내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나요? 우리 부모나 친구도 나를 부끄러워하는데, 나 같은 사람을요?

 

3) 셋째, 무한경쟁, 전쟁 같은 삶에 무너진 당신: 삭개오- 내 인생, 이만하면 괜찮지 않아요? 솔직히 아무나 이런 자리에 오는 게 아니쟎아요? 내가 성공에 눈이 멀었다고요? 이만한  짓은 다 하고 살지 않나요? 이걸로 나를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세상이 다 그렇다구요. 나만 이런 게 아니라구요... 아니요, 사실 저는 안 괜찮아요. 지쳤어요. 남들이 모르는 저의 내면이 있어요.

 

4) 넷째, 껍데기만 남은 종교 생활에 길을 잃은 당신: 니고데모- 종교는 있지요? 가끔 마음의 위안도 받습니다. 그게 그냥, 그럭저럭 하고 있죠. 어차피 사는 게 다 이렇지요 뭐, 다른 사람은 안 그런가요? 오늘 밤엔 영화나 한 편, 아니면 술이나 한 잔... 다시 태어나야 한다구요? 그게 뭔가요? 사실 저는 죽은 다음엔 관심없어요. 그냥 무()가 되겠지요. 그냥 지금 삶에 충실할께요.

 

5) 다섯째, 아무 의미없이 바쁘고 피곤한 당신: 베드로 - 내가 누구지요? 내 가치는 도대체 뭘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렇게 사는 게 전부는 아닌 것 같은데, 지쳐만 가네요.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이제는 아무 의미를 찾지 못하겠네요. 고기낚는 내가 사람 낚는 나로 바뀐다고요? 모르겠어요. 항상 똑같은 나를 사람들은 성실하다고 하는데... 저는 이제 성실이란 단어에 지쳤어요

 

(다섯 가지를 함께 한 화면에 보여주십시오) ...,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세요?

 

마지막 CHAPTER 6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당신을 만나신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앉으신 것은 바로 오늘, 나를 만나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삶 속에서, 지난 한 달의 시간 속에서.... 그분 앞에 앉았던 적이 언제이셨습니까? 인생에는 이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리아가 언니인 마르다에 비해 예수님께 칭찬 받은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앞에 앉아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모습을 좋은 편(good part)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But one thing is needful: and Mary has chosen that good part, which sha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현대인의 성경에는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으니 아무에게도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4.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묵상하고 싶은 것은, 본문에 나오는 '복이 있나니'(행복하여라)라는 말씀의 (행복)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makarios)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마카리오스'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행복(사람들의 행복의 조건)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3:14-15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makarios)이 있으리라

 

20:35b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makarios)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딤전6:15b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God, the blessed and only Ruler, the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 복되다(행복하다) 라는 말씀의 성경적 뜻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happy, happiness 보다는 Bless, Blessed, Blessing이라는 단어가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시는대로 happiness의 원어가 happen(우연히 일어나다)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복, 행복은 하나님이,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복에 감격하고, 그 복(행복)이 우리 삶의 행복의 조건이 됨입니다. 그렇기에 팔복에서 나오는 복은 이 땅에서 얻어지는 복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성품이요, 동시에 그 예수님을 온전히 따를 때 우리 안에 나타나는 거듭난 이의 성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이것은 누군가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본성이나 좋은 부모로부터 받은 좋은 성품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러이러한 성품을 갖게 될 것이라는 선언적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성품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세상이 주는 복과 행복에 대해서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 예수님 자신의 성품이 나의 것으로 받아 들여졌을 때, 내 안에 나타나는 새롭고 거룩한 성품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불가능한 행복(makarois)를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행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바라볼 때, 내 안에 추구하고 만족하던[행복의 조건]에 눈을 뜨게 되고, 더 이상 그것을 부러워하거나 좇아가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아름다우신 성품이 내 안에 자리 잡게 되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나의 주님께서 주신 팔복의 말씀을 천천히 읽어보십시오.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가정에서 일터에서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나는 왜, 무엇 때문에 행복한가?의 정직한 질문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신, 주님의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찬양하십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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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Only for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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