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404건, 최근 1 건

절망해야 소망합니다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7-07-24 (월) 19:55 조회 : 116
07232017_주일설교.docx (15.8K), Down : 1, 2017-07-24 19:55:03
설교일 : 2017.07.23.
설교자 : 장찬영 목사
본문말씀 : 시편 42:1~5

42:1-11(장찬영목사)                                                         7. 23, 2017

 

                                 절망해야 소망합니다

 

1.

최근의 미국의 유력한 의료기관에서 발표한 보고에 따르면 앞으로 암과 심장병에 이어 인류를 위협하는 병은 '우울증'이 될 것이라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우울증이란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에 변화가 생겨 '부정적인 감정'이 나타나는 병"입니다. 현재 의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우울증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발병원인은 내적·외적으로 개인적인 질병, 가족관계, 실업문제는 물론 낮은 행복지수, 높은 스트레스, 약한 사회적 인프라, 사회적인 정치, 경제적인 요인 등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올해 들어 병원에서 심각한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사람이 60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국민 전체로 볼 때 4명 중 1명이 사망 때까지 한 번 이상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꼭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남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꼭 병적인 진단은 아닐지라도 우리 가운데도 이런 우울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인생을 들여 보면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 갑작스런 질병의 출현이나 생각지 못한 사고 등으로 가슴을 쓸어내릴 때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게다가 직장이나 생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하루 하루를 피곤하게 합니다. 직장에서의 관계나 갑작스런 휴직, 가게를 정리해야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일들을 당하게 되면 가슴이 답답해 오고 눈 앞이 캄캄해집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당장 땅바닥을 치는 삶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들에게는 너나없이 삶에 절망을 느끼게 하는 일이 참 많은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마음에 절망과 불안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분문 시편 42편의 저자는 고라 자손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가 누군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다윗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저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늘 시편 42편의 저자가 몹시 낙망하고 불안해 하고 마음이 상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42 5, 11절 그리고 43 5절에서 같은 탄식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고? Why are you downcast, O my soul? Why so disturbed within me?

 

마음이 낙망하고 절망을 하는 것입니다.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4절 끝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These things I remember as I pour out my soul.

 

그런데 왜 그가 이와 같은 낙망하고 불안해 하고 있을까요? 본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지 않지만, 대충 짐작을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선 먼저, 저자는 자기 눈앞에 있는 암담한 현실을 놓고 낙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포로로 잡혀 간 상태이거나 혹은 억류를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었던 예루살렘에서의 행복한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외로이 살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뵐꼬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볼 때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냐? 하나님 믿어도 별 다르지 않네 라고 빈정거리고 야유합니다. 3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 현실적으로는 이런 환경을 벗어나고 싶은데 소망이 별로 안 보입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또 그가 왜 절망합니까? 현실 앞에 무능한 자기 자신을 보고 절망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경  학자는 42, 43장에서 이 시편을 쓴 저자가 라는 1인칭을 무려 51번이나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저자가 라는 말을 이렇게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이유가 자기에게 갇혀 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는 것입니다. 무능한 자신을 볼 때마다 낙망하게 되어 마음이 가라앉는 것입니다.

 

또 왜 이 사람이 절망합니까? 4절에서 보듯이, 옛날과 지금을 자꾸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과거와 지금 자기가 처한 환경을 서로 비교합니다. 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성전에 드나들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난 날의 행복이 더 저자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여러분, 이 저자를 통해서 누구를 보게 됩니까? , 처지가 나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지 않나요. 최소한 꼭 그렇지 않다 하여도 , 인생이란 이런거지 하면서 공감하는 마음을 갖게됩니다. 그리고 , 하나님의 사람도 이렇게 낙망하는구나. 그래, 나도 이렇게 낙망했던 적이 있지 생각이 납니다. 사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노라면, 이런 암담한 현실, 무능한 자아, 그리고 비교되면서 초라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도 목사이지만, 시편 기자처럼 이렇게 낙망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매주 교우들의 삶에 대해 듣고 보게 되는데, 그 중에는 좋은 소식도 있지만,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하루하루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지면서 하나님이 왜 이대로 두실까? 좀 해결 좀 해주시지... 하는 마음으로 무거워 집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저는 목사로서, 아무래도 더 간절히 오늘날의 현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데막상 세상에서 사명을 가져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을 점점 더 닮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나 목회자들의 비행들이 매스컴을 통해 나오면, 한 숨이 나고 어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또 이제 미국이나 한국이나 신학교에 가는 지원자가 없어 신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됩니다

 

게다가 목사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자녀로서의 제 모습을 보면, 낙심될 때 또한 적지 않습니다. 좀 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더 성도들의 아픔에 동참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과 무디고 이기적인 제 모습을 보면 , 삯군이 따로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놀랍게도 성경에 나온 사람치고 낙망을 경험하지 아니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불안해서 떨지 아니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그들은 떨었고, 하나님을 그렇게 섬겼던 그들도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고, 심지어 죽게 해 달라고 했던 이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도 이 땅위에 계시는 동안 그러하신 적이 계셨습니다... 이렇듯, 누구나 이 땅 위에서 사노라면 낙망하는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가 말한 것처럼 불안은 인간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불안 때문에, 그 낙망 때문에, 그 절망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간절히 부른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향해서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믿음의 신비입니다. 분명 세상사람 눈에는 낙망할 만한 일인데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을 찾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초대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이었던 에머슨(Emerson) 이란 분이 참 좋은 말을 했어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일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이다.

 

오늘 시편 기자를 보세요? 너무나 낙망이 되고 불안하기에 5, 11절에서 이런 말을 반복하지 않습니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고?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뭐라고 합니까? 바로 그 뒤의 말씀이.....그렇지만...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내 영혼아, 지금 너무 힘이 들어 낙망이 되니? 바로 그때, 내 영혼의 다른 한편에서 뭐라고 반응하고 있습니까? 그래, 낙망되지만, 외롭지만, 지금 다시 하나님을 보는 거야 내 영혼아, 불안하지? 불안하지만, 다시 하나님을 찾는 거야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진 비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저자는 1절에서 참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아시다시피, 다윗이 살았던 지금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은 건기가 되면 비가 잘 안 옵니다. 더욱이 남부 지역은 거의 사막이기 때문에 비가 안 오는 때는 물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이 시편 저자는 그렇게 가물 때 사슴 한 마리가 목이 너무나 말라서 물을 찾느라고 온 사방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기억하고 연상하는 것입니다.

사슴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간절하겠어요? 물 아니면 죽음입니다. 물을 찾으면 사는 거고, 물을 못 찾으면 죽는 것입니다. 얼마나 절박하겠어요? 그러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물을 찾을 때까지 그는 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기자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주님을 갈망합니다 라고 했던 것입니다. 마치 주님, 나는 절망합니다 그러나 그래서 주님을 갈망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3.

,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갈망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으신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믿음에는 아주 기본적인 공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어느 정도 다니셨으면 수없이 들었을 이야기지만, 오히려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모두에게 반복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 하나님을 갈망하는 법칙, 혹은 방법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있습니다.

 

1)첫째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것은 적당히 성경을 들추고서 한 두 장 읽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펴는 것입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생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리석은 자에게 지혜를 주지 때문입니다. 천지는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말씀을 절박한 심정으로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법칙입니다.

 

이것이 바로 절망적인 마음입니다. 나에게는, 내 안에는 아무 답이 없다는 절망이 필요합니다. 절박하지 않으면 절대로 무릎 꿇지 않습니다. 절박해야, 하니 스스로에게 절망해야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절망해야 소망합니다라는 역설을 믿음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겐, 절망감, 그래서 절박함이 있습니까? 오히려 스스로에 대해서 나름 자신 만만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만약 우리의 예배에 이 절박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은혜를 받아야만 해. 오늘 이 예배에서 내가 은혜 받지 못하면 살 수가 없어. 마치 물을 찾는 사슴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급한 자의 마음입니다.

 

2) 두 번째 공식은, 어떠한 아픔과 문제라도 해결해 주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그 분 앞에 계속해서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그분의 뜻을 알 때까지, 그 분이 이 문제 해결의 키를 가지고 있음을 믿으면서, 실망하지 않고 그분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낙망되고 불안해지면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 일수록 더 그 분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자식을 낳지 못해서 이렇게 상처받고 저렇게 상처받아 한이 목에까지 찬 여인,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아실 것입니다. 성소에 들어가자마자 얼마나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았던지 그 성소 안에서 몇 시간이고 일어날 줄 모르고 중얼중얼 기도하는 것을 엘리라고 하는 선지자가 옆에서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술에 취했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으면 그랬겠습니까?

 

예수님도 마지막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겟세마네 동산에 엎드렸을 때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까? 땀과 눈물에 피가 섞여 내려올 정도로 한 번 기도하고, 두 번 기도하고, 세 번 기도하면서 매달리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구약의 [예레미야애가]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가 얼마나 마음이 힘든지 이렇게 말합니다.

3: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더니, 32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그런데 이것이 뭐냐, 예레미야에게 임한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 이예요. 그런데 이것이 아침마다 새롭다는 거예요. 신기한 거예요. 이게 그렇게 나를 누르고 힘들게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거예요. 왜냐, 주의 성실이 이 고난보다 더 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세 번째 공식은 믿음의 공동체에 나를 맡겨야 합니다

먼저, 신앙생활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먼저 이 공동체가 무엇인지 이해가 안 될지 모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공동체입니다. 가장 중요한 공동체는 주일날 이렇게 원근각지에서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모임입니다. 그리고 우리교회에는 속회라는 작은 공동체가 있어서, 작게는 서너 가정이 많게는 일곱 여덟 가정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둘러 앉아 함께 식사하고 말씀을 나누는데, 이 또한 아주 소중한 공동체입니다. 그 외에 교회 안에는 [성경공부모임]이나 [일대일 제자양육모임], 서로 기도해 주는[중보기도모임]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공동체에 자기를 맡기는 것이 왜 하나님을 바라보는 세 번째 키가 되는냐? 여러분이 이미 경험해 보셨듯이,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일을 만나면 그렇게 홀로 서기가 잘 안됩니다. 간절함으로 말씀을 보고, 끝까지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자기를 공동체에 맡긴다는 말은 그 공동체를 신뢰하고 마음을 열고 존중한다는 말입니다. 놀랍게도 그 공동체를 통해 절망 가운데서 소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하나님이 응답을 경험하기도 하고, 형제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펴 놓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함께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나를 치유하시는 놀라운 손길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교우 중에 제 작년에 다른 주로 이사가신 자매님이 계셨는데, 이미 우리교회 오시기 전에 이미 사업에 문제가 생겼고 그 와중에 몸에 병이 들고, 게다가 남편과 이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떠 맡고 여자의 몸으로 얼마나 외롭고 힘이 들었겠어요? 이곳에 오셔서도 몇 job을 뛰시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청소를 하셨어요. 그러니 혼자서는 몸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실에서 우리교회 한 속장님에게 연락해서 그 분을 돌봐달라고 연결시켜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속회에서 모일 때 마다 그 분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속원 중의 어느 분은 도시락을 싸주기도 하고, 장을 보러갈 때 그분을 위해서 따로 장을 봐 주고, 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해 주고, 주일 날 그 분 옆에서 같이 앉아 예배 드려주고, 하루 쉬는 주일에는 그분을 만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일대일 양육]을 해 주고, 이후에 엠마오캠프에 가도록 어느 분이 회비를 내 주고, 그리고 그 나흘 동안 속회에서 번갈아가면서 어린 아이들을 봐 주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분이 살아났습니다. 얼마나 울고 감사하시는지.... 공동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입니다. 어려움이 오면 사람에게 도망가고 회피하고 자존심을 내세워 사람들 만나기를 꺼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성령님께서 그의 마음을 만지셔서 그럴수록 자꾸 믿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셔서 내 마음을 열게 하시고 자기 문제를 이야기하고 기도를 부탁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동체를 통해 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4.

지난 주일 소개해 드렸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고백한 분이 있습니다. 1900년대 초의 복음주의자로 불과 43세의 인생을 살았던 오스왈드 쳄버스입니다(챔버스의 사진). 이분의 책 중에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 많이 알려졌지만, 그 분의 다른 책 산상수훈에 보면(책 그림), 그는 이런 표현을 합니다.

 

산상수훈은 거듭난 이에겐 기쁨의 궁극적 소식이겠지만, 사실 자연인인 우리 모두에게는 절망을 안겨준다. 이것은 주님께서 의도하신 바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절망에 이를 때에야 비로소 가난한 심령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소유가 아니라 가난이듯이, 예수님을 향한 그럴듯한 결단들에 앞서 자신의 무가치함을 철저히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참 믿음의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절망 가운데서 소망을 갖게 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마지막 11절에서 고백하게 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우리가 이번 달에 묵상하고 있는 [바이블타임]의 성경본문이 예레미야서입니다.

29:11-13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같이 찬양하십시다.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시며

   

총 게시물 404건, 최근 1 건
번호 설교일              제목 본문말씀 설교자
404 2017.09.17.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Matthew 5:8 Rev. Jang
403 2017.09.17.  행복하여라: 마음이 청결한 자여 마태복음 5:8 장찬영 목사
402 2017.09.10.  'Blessings to those who are merciful' Matthew 5:7 Rev. Jang
401 2017.09.10.  행복하여라: 긍휼이 여기는 자여 마태복음 5:7 장찬영 목사
400 2017.09.03.  'Blessings to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Matthew 5:6 Rev. Jang
399 2017.09.03.  행복하여라: 의에 주리고 목 마른자여 마태복음 5:6 장찬영 목사
398 2017.08.27.  'Blessings to those who are meek' Matthew 5:5 Rev. Jang
397 2017.08.27.  행복하여라: 온유한 자여 마태복음 5:5 장찬영 목사
396 2017.08.20.  'Blessings to those who mourn' Matthew 5:1-12 Rev. Jang
395 2017.08.13.  행복하여라: 애통하는 자여 마태복음 5:3~4 장찬영 목사
394 2017.08.06.  'Blessings to all who are poor in spirit' Matthew 5:1-12 Rev. Jang
393 2017.08.06.  행복하여라: 심령이 가난 한 자여 마태복음 5:1~12 장찬영 목사
392 2017.07.30.  'What causes my happiness?' Matthew 5:1-12 Rev. Jang
391 2017.07.30.  나는 왜, 무엇 때문에 행복한가? 마태복음 5:1~12 장찬영 목사
390 2017.07.23.  'Despair Brings Hope' Psalm 42:1-11 Rev. Jang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

제목 :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설교일 : 2017.09.17.
본문말씀 : Matthew 5:8
설교자 : Rev. Jang

HOME

교회소개

환영의글
담임목사 소개
비전과 사명
섬기는 사람들
예배시간&오시는 길

말씀

주일예배설교
수요예배설교
새벽예배설교
목양칼럼
읽는말씀(English&Korean)
Bible Time
성경필사

양육

유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한국학교
하람 청년부
소망대학
Troy Hope
KKCA

선교

선교통신
케냐선교
중국 · 연변 · 북한선교
몽골선교
방글라데시선교
태국선교
페루선교
아이티선교
북미(미국)
우크라이나선교
기타선교권

나눔터

공지사항
찬양영상
사진 게시판
새가족 사진게시판
새땅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