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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근거: 희망의 밭을 사라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4-12-12 (금) 04:19 조회 : 3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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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4.12.07.
설교자 : 장찬영 목사
본문말씀 : 예레미야 32:6~15

32:6-15(장찬영목사)                                                         12.7, 2014        

                            기다림의 근거: 희망의 밭을 사라    

 

1.                                            

오늘은 대강절 둘째 주일 아침입니다. 지난 주 우라는 기다림의 축복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고, 오늘은 이어, 그렇다면 그 기다림의 축복을 소망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기다림의 근거; 희망의 밭을 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 군목으로 출전했다가 독일군에게 붙잡혀 포로생활을 했던 제임스 맥도날드 목사의 증언입니다. 포로생활이 길어지면서 군인들은 힘들어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자해하거나 도망하다가 벌을 받는 일들이, 또 수용소 안에서 물건을 훔치고 싸우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포로병이 부서진 라디오를 조립해서 수용소 안에서 몰래 영국 국영방송인BBC 방송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그 친구가 맥도날드 목사를 깨워 합군이 노르만디 상륙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은 소리없이 전 수용소 포로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소식을 들은 날 이후부터, 더 이상 수용소안에는 자해하거나 도망하는 길, 물건을 훔치거나 싸우는 일들이 없어졌고, 그들의 모습은 더 이상 포로의 꾀재재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만날 때마다 하이파이를 하며, 의미있는 웃음을 보냈고, 독일군들이 아무리 총을 겨누어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소용소안에서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얼굴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왜 그렇까요? 바로 곧 풀려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렇게 목숨과 연관되어 있지 않더라도, 아니 그저 일상의 삶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일지라도 그것이 희망이라는 단어와 연결만 되어 있어도 우리는 행복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한국에서 신학교 다니던, 교육 전도사시절, 아는 분의 소개로 안산에 있는 삼립 마가린 회사에 매 월 한 번씩 가서 직원예배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면 교통비를 조금씩 주셔서 책을 사보곤 했는데, 한 날은 교통비 대신, 당시 동전으로 긁게 되어 있는 lotto를 주시는데, 그게 A4 용지만한 것을 통째로 주시는 겁니다. 그 날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면서 얼마나 흥분되고 기대가 되는지, 그래도 명색이 도사 전 단계인 전도사인데 전철 안에서는 긁을 수가 없고, 학교로 와서 먼저 채플에 가서 겸손히 기도를 드린 후에, 기숙사 방에 돌아와 온 정성을 다해 한 장씩 긁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별거 아니 것 같아도, 당시 만 원짜리부터 천 만원짜리까지 똑같은 액수가 세 개가 나오면 당첨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희망을 복권과 동전에 싣고, 얼마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긁었는지 모릅니다. 콜링받고 신학교 들어올 때 보다 더 기대되는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때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때 그 시절에는 그게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참 재미있는 것이...이 신학교 때 복권의 희망이, 경상도 시골 첫 목회지에서 만났던 한 남자 집사님을 통해 그대로 재현이 되었습니다. 당시 여씨 성을 가진 채석장에서 일을 하시고 조그만 밭을 일구시던 집사님이 등록을 하셨는데, 이분이 제 목회에서 처음 만났던 남자 집사님이십니다. 근데 이분이 주일예배 오실 때마다 예배 전에 먼저 저에게 오셔서 제게 기도를 부탁을 하는 것이, 당시 주택복권을 꺼내놓으시고 축복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얼마나 축복기도를 간절히 드렸는지 모릅니다. 사실 말이 안 되지요. 그런데 그때 그분들에겐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후, 저의 간절한 축복기도에 불구하고 한 번도 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없어졌습니다.

 

사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희망을, 어떤 소망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우리는 한번 우리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희망은 어떤 것일까? 라는 것입니다.

 

2.

오늘 읽었던 본문은 우리에게 한 소망을 붙잡고 살았던 사람 한분을 소개합니다. 바로 예레미야라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라는 이름의 뜻은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의미가 독특합니다. 하나는 여호와께서 높이신다는 뜻으로 결국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살았기에 하나님이 높이신다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한편 또 다른 뜻은 여호와께서 던지신다는 뜻으로 이 세상에 내 팽개쳐진, 소망이 끊어진, 아무 의미없이 주사위가 던져진, 첫 번째와는 완전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 이름을 가지고 있다니... , 그 사람의 결국의 삶이 어디에다 희망을 두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름인 것입니다.   

 

사실 예레미야가 살았던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희망의 등불이 거의 꺼져버린 절망의 시대였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처럼, 여호와를 높여야 할 이스라엘은 마치 던져진 주사위처럼 내 팽게쳐진 존재였습니다.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레미야는 조국의 멸망을 예언하다가 시드기야 왕에게 체포되어 투옥됩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있는 예레미야에게 조카 하나멜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뭐라고 하느냐? 밭을 사라는 것입니다.

 

,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레미야는 그 밭을 삽니다. .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어떻게 하면 땅을 팔아서 돈으로 만들까 하는데 여념이 없었는데, 그런 와중에 예레미야가 땅을, 밭을 사는 것입니다. 또 무엇보다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국의 멸망을 예언한 사람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 시점에서, 아무 쓸모없이 보이는 땅을 샀을까요? 이것이 오늘 우리가 갖는  question 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이같은 행동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도대체 예레미야가 소유한 이 기다림의 근거, 희망의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저는 이것을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1) 첫째, 그는 자신의 이 기다림의 근거,   희망의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었습니다.

6절 보면,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7절을 보십시다. "보라 네 숙부 살롬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게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아마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듣고 나서 '그 땅을 사야 되겠느냐?' 고 사람들에게 의논 했다면 누구든지 반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먼저 사람에게 의논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합니다... , 8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 여호와의 말씀인줄 알았으므로 I knew (realized) that this was the word of the Lord.

 

, 그는 이스라엘이 비록 바벨론의 포로가 될지라도 그것이 이스라엘의 끝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지금의 이 땅을 기필코 회복시킬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는 알 수 있었을까요? 여기서 알았으므로의 원어가 'YADA'(야다)인데, 이 말은 지식적인 배움의 앎이 아닌,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적인 앎을 얘기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오랜 습관을 통해 체득 된 것입니다. ,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였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기다림의 근거를, 그 희망의 끝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었기에, 아무리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은 끝났다고 말해도 그는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땅을 사라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알았기에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 땅을 샀던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비논리적으로, 비합리적으로 때로는 미신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에게는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던 희망을 미리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기다림, , 희망의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었던 것입니다. 1:39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And Mary said, Behold the handmaid of the Lord; be it unto me according to thy word.

 

사랑하는 여러분, 밭을 사십시오..... 말씀의 밭을 사십시오.

 

2) 둘째로, 그는 자신의 기다림, 희망의 근거를 공동체에 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희망, 그 기다림의 근거를 어디에 두셨을까?....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 목적이 그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계속적인 염려를 낳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녀가 아닌,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는 기준인 의()를 찾는 것이 어떤 무엇보다 중요한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기다림, 희망의 밭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되었다면, 이제 그 희망은 나만의 희망이 아닌, 즉 자기중심적인 삶에서부터 나와 공동체적인 희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장 비극적인 인생은 자기 하나만을 위하여 사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좋은 믿음이란, 시작은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공동체적인 동기로 나가는 믿음입니다. 타자를 위한 섬김의 삶은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희망인 것입니다. 혹자는 왜 그래야 합니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삶이 바로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멜의 밭을 샀던 동기도 바로 그렇습니다. 예레미야가 곧 있을 멸망을 뻔히 알면서도 밭을 산다는 것은 돈을 그냥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희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자기 민족들이 도전을 받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10-12절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주고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를 내가 취하여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증서에 인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당시 관습에 의하면, 땅을 사면 두 개의 증서를 작성하는데, 그 중 하나는 인봉하여 보관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매매증서는 인봉치 않고 개봉했습니다. 이유인즉슨,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증서를 조인하는 의식도 시위대 뜰 앞에서 했습니다.

 

그는 절망 가운데 빠져있는 자기 동족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완전히 버리시지 아니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침내 공동체가 회복되는 것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실 개인과 공동체는 너무도 중요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 어항에서 관상용 물고기를 길러보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경험을 돌아보시면,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고기들이 예민해서 어항을 잘 관리해 주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가만보니까, 아무리 비싸고 예쁜 물고기라도 어항 상태가 안 좋으면 곧 병이 나고 죽습니다. 반대로 좀 시들시들한 물고기라도 어항이 깨끗하고 물이 좋으면 회복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어항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잘나가고 똑똑해도 교회가 병들어 있으면, 아니 교회를 병들게 하면 곧 그 사람도 어느 날부터 비실비실해 집니다. 생기를 잃어버리고 병이 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상처받고 온 사람일지라도 교회가 건강하면 곧 회복이 됩니다.

 

공동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건강하고 공동체가 잘 되야 안물이 나옵니다. 공동체의 통이 사람의 통입니다. 충신집에서 충신이 나고, 효자집에서 효자가 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밭을 사십시오 .... 공동체의 밭을 사십시오! 손해를 보실 마음으로 그 공동체를 섬기십시오. 요구보다는 책임에, 권리보다는 희생에 더 민감하십시오. 공동체의 밭을 사기위해 값을 지불하십시오. 믿음은 받을 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섬길 때 성장합니다.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간절히!

3) 셋째로, 그는 자신의 희망의 근거를 다음세대에게 두었습니다.

좀 시간이 지났지만, 1991년에 JFK'라는 영화가 히트를 친 적이 있습니다(영화 포스터).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만든 영화였는데, 당시 이 역사적인 사건을 맡았던 한 젊은 검사가 생명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수사를 중단하라고 종용했습니다. 그때 이 검사 역할을 케빈 코스트너가 맡았는데, 그의 말이 한참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수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그것은 불의가 승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미국은 불법과 불의가 지배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나는 나의 자식들에게 그런 나라를 물려 줄 수 없다..." 그 젊은 검사는 정의가 사라지고 꿈이 상실된 나라를 아이들에게(후손) 물려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생명을 걸고 정의와 꿈을 지키기로 결심한다는 장면입니다.

 

예레미야는 멸망하는 조국의 마지막 시간에 있었습니다. 조국이 멸망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기 때문에 필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그와 그의 동족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물려줄 조국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포로가 되어 당해야 할 고통과 서러움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물려줄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오묘하신 섭리를 깨닫게 하려고 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신뢰를 갖게 하고 싶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예레미야는 바룩에게"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분명히 포로생활 70년이 지난 후에 후손들이 돌아와서 토기에서 그 매매증서를 꺼내서 보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때 후손들은 이스라엘의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었다는 것을 보고 전율할 것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땅을 사는 이런 믿음으로 살았던 우리 선조가 있었구나! 경악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비록 자신들의 세대는 이렇게 서러움을 당하고 결국 이방인에 의해 멸망을 당하지만, 후손들은 절대로 이런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 무엇을 전해주시기 원하십니까?

 

저는 지난 1년 반, 우리교회에 부임하면서 계속 기도했던 것은... 만약 주님 우리에게 우리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관 센타를 허락하신다면 그것은 우리아이들이 사용하는 공간적인 건물의 의미로만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앞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실 센타가 우리의 자냔세대들 만이 아니라 이제는 건강한 지역사회와 장년세대들을 선도하는 다목적 센타가 되어 [1세대와 3세대가 함께 하는 상징적인 건물]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렇기에 이것은 공간적인 의미 이전에 다음세대, 우리들의 자녀들을 향한1세대들의 마음이요, 소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우리는 그 센타의 머릿돌에 이런 글을 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 곳에서 행복하게 뛰놀겠지만, 먼 이국땅에 태평양 건너 이민 가방 몇 개 달랑 들고 온, 너희 부모들은 말도 안 통하는 이 땅, 이곳에, 믿음의 공동체인 주님의 교회를 세웠단다. 너희의 부모들은 비록 이 땅의 여러 교회를 전전하며 김치 한번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눈치보며 살았지만, 너희들은 아니기를 눈물겹도록 바라기에, 그렇게 소원하던 교회도 짓게 되었고, 여기에 너희들의 공간을 짓게 되었구나. 마음껏 놀아라. 이 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러니 눈치보지 말고 기죽지 말고 떳떳하게 살아라. 너희들은 말도 통하고 문화도 익숙하지 않느냐?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라. 너희 부모들은 믿음으로 살았단다. 부디 너희들은 이 풍요로운 땅에 살지만, 네 부모, 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믿음만큼은 잊지 말아다오. 이것이 너희들을 향한 우리들의 유일한 희망이란다. . .

 

밭을 사십시오! 우리 자녀들의, 후손들의 믿음의 밭을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와 그 후손들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4.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부터가 교회절기로 대강절 즉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강림절기의 시작입니다. 왜 온 세계가 온 땅이 12월만 되면 난리입니까? 성탄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세상은 주님의 오심에 희망을 걸고 기다리고 기뻐하고 난리를 치는 것입니까? 세상은 온통 자기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 이 땅의 것을 위해  성탄의 희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기 예수님이 만약 다시 이 땅에 오신다 해도 여전히 그분은 사람들의 숙소가 아닌, 차라리 짐승들의 숙소인 마굿간을 택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에게는 어떤 기다림이, 어떤 희망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갖고 있고 그 기다림의 희망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입니까? 정말 옳은 희망입니다, 정말 신나는 희망입니까? 정말 살리는 희망입니까?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는 희망입니까?   

 

그 기다림 속에 어떤 희망의 밭을 사시겠습니까? 세월이 지나도 변치않는, 오늘도 여러분을 인도하는 하나님 말씀의 밭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결론인 여러분이 섬기는 공동체의 밭을 사기시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지나가도 우리의 믿음을 갖고 이 땅에 살아갈 후손들을 위한 밭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양하십시다. “마라나타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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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e work of God
설교일 : 2020.02.16
본문말씀 : 1 Samuel 3:10-21
설교자 : Rev. Eung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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