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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4-11-19 (수) 20:43 조회 : 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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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4.11.16.
설교자 : 장찬영 목사
본문말씀 : 창세기 45:1~15

45:1-15(장찬영목사) 11. 16, 2014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1.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의 명작 <레미제라블>에 보면<쟝발장>이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몇 일째 굶고 있는 조카들을 위해 빵 몇 개를 훔치다 감옥에 갔습니다. 그 후 계속 탈옥을 시도하다가 형기가 길어져 무려 19년을 감옥에서 지낸 후 석방됩니다. 석방은 되었지만 오갈 데 없이 거리를 헤매고 있던 그는 미리엘 신부님을 만나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됩니다.

하룻밤을 잘 자고 난 그는 신부님이 자고 있는 틈을 타 은촛대를 훔쳐 나오다 경찰에 붙들렸습니다. 경찰은 그를 데리고 신부님에게 갔습니다. <이거 신부님 것이 맞지요?> 신부님은 한눈에 촛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의 대답은 의외입니다. <. 제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그가 훔친 게 아니라, 제가 준 겁니다. 은그릇까지 가져가라고 했는데 그건 안 가져갔더군요.>

분명히 쟝발장은 은촛대를 훔쳤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자신이 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부님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신부님은 사실보다는<진실>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진실>은 다릅니다. 사실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말하는 것인 반면에, 진실은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인 반면, 진실은 미래에 있을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쟝발장이 은촛대를 훔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사실을 말하는 대신에 가슴속에 품고 있는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난 정말 저 불쌍한 사람에게 은촛대를 주고 싶다. 아니 은촛대뿐만 아니라, 은그릇도 주고 싶다. 난 저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 살길 바란다. 난 그가 다시 감옥에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 이것이 신부의 마음에 있는 진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세이레 동안,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주제로, 창세기의 요셉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모형이요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묵상하게 되고, 동시에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요셉의 인생이 채색 옷에서 시작하여 종의 옷과 죄인의 옷을 거쳐 총리의 세마포를 입듯이, 예수님의 모습도 그러하셨습니다.

2:6-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사시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을 만난 사람들이 다 회복되고 살아납니다. 그분이 만났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소외되고 버림받고 사람들의 사실의 기준에서 보면 하나같이 루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그렇게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분명 우리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를 정죄하는 자들이 다 떠났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시며, 돌아가 이후로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고 살게 되는 것은 이러한 예수님의 진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사실보다 진실을 보아야 하고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만약 사실을 말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정죄하고 손가락질할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붙잡힌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전부라고 여기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본문 말씀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드디어 그의 형제들과 만나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이 십 칠세 때였습니다. 그 후 이십 이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도대체 누가 이 장면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마치 영화의 엄청난 반전처럼, 요셉은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1-2절입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이 요셉의 울음에 우리는 같이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십 년 만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런데 이 반응이 어디서 나왔느냐? 바로 유다의 간청을 들을 때였습니다.

44:33-34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 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형 유다가 이럴 줄 몰랐거든요. 베냐민을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다는 것이고, 형 유다를 통하여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알 수 있었건 것입니다. 감동이 감동을 낳습니다...

, 3절입니다. 3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형들이 놀랍니다. 그것은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린 사람들이 다름 아닌 자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상황에서 요셉이 하는 말을 잘 보십시오...., 먼저 요셉은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4절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무슨 말입니까? <형님들이 이십 이 년 전에 나를 팔지 않았습니까? 내가 바로 그 요셉입니다. 난 그 때 일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판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 사실대로 한다면 형들은 용서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기가 막힌 반전을 보여줍니다... 분명히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고 말했는데... 잠시 후, 그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사실 요셉의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요셉도 놀랐을 것입니다. 바로 8절입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지금 요셉은 자신을 판 사람들은 분명히 그의 형들인데, 요셉은 자신을 애굽에 보낸 이는 그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 ‘형들’에서 ‘하나님’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요?

여기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형님들이 나를 애굽으로 팔아버렸다>는 말은 사실에 기준한 말입니다. 그러나 <나를 애굽에 보낸 분은 하나님>이란 말은 요셉의 가슴에 담겨 있는 진실..., 하나님이 주신 생각과 말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한다면, 형들이 팔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의 진실을 따라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세상을 살 때, 이 둘 가운데 살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생각하고 말하면서 살 것인가>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에 따라 인생의 질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시 말을 내뱉고, 즉시 판단하고 즉시 생각합니다. <형들이 자신을 팔았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의 진실대로 말하는 사람>은 한 템포 멈추어야 합니다. 그는 말하기 전에 먼저 ‘깊이 생각’합니다. 이것을 ‘묵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형님들이 나를 팔 때 왜 막지 않으셨을까? 이 일에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한 끝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를 애굽에 보낸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믿습니다. 겉으로 보면 형님들이 판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사실만 말하면서 사는 사람은 인생을 ‘사람의 관계성 안에서’만 생각합니다. 거기는 형님들과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팔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의 진실을 보는 사람은 사람과 사람의 문제에 ‘하나님 안에서’ 생각합니다. 그는 세상을 인간들만의 세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 인간들의 세상 한 복판에 그 세상을 손에 쥐고 계신 하나님이 계심을 압니다. 언제나 그에게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늘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셨을까?>라고 질문하면서 삽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면서 사는 사람은 행동할 때도 눈으로 본 사실에 따라 행동합니다. 만약 요셉이 그렇게 했다면 그는 <형님들이 날 팔았고, 그것이 사실이니, 그 사실에 따라 형님들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형님들에게 복수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복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3.

사실...<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는 것은 놀라운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는데, 이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집안에서는 가장 귀하고 사랑받는 아들이었지만, 밖에서는 평범한 목축업자의 아들일 뿐이었습니다. 세월이 더 지나면 그도 아버지처럼 평생 목축을 할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애굽 사람도 아니었고, 그의 신분은 ‘노예’였습니다. 더구나 그가 바로 왕 앞에 설 당시 그는 ‘죄수’였습니다. 그것도 안주인을 강간하려다 실패한 ‘강간미수범’이란 죄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여주인이 자기의 잘못을 덮으려고 요셉에게 덮어씌운 억울한 것이기는 했지만, 아무도 요셉의 억울함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누명을 받은 사람의 마음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것도 그것 때문에 수년을 감옥에서 보내었다면.. 그야말로 그가 당한 마음의 고통으로나 그가 처한 환경이나 그 어떤 것을 보아도.. 그런 그가 어떻게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는 엄연히 애굽의 총리로서 바로 왕 다음 가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것을 마치 필름을 거꾸로 돌려본다면... 그가 총리가 된 것은 그가 꿈을 꾸었기 때문이고, 그로인해 형들의 미움을 받아 그가 애굽에 갔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그를 미워했기 때문이고, 애굽에 팔았기 때문이고, 그는 보디발의 집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고, 보디발의 아내로 인한 유혹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에게 억울한 죄를 씌웠기 때문이고, 그는 감옥에 갔기 때문이고, 거기서 술 맡은 관원을 만났기 때문이고, 그가 자기를 잊어주었기 때문이고, 그때 마침 바로왕이 꿈을 꾸었기 때문에 그 꿈을 해석하여 총리가 된 것입니다.

마치 그에게 일어난 일련의 과정은 누가 미리 오래 전에 잘 짜놓은 각본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각본을 만드신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겉으로 보이는 대로 한다면 형님들이 나를 애굽에 보낸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로구나! 이게 진실이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데, 누가 막겠는가? 그러니 어찌 형님들에게 보복할 수 있겠는가?> 이게 요셉의 생각이었습니다.

요셉의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왜 하나님께서 이런 복잡한 과정을 통해 자신을 애굽에 보내셨는가?>를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분명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목적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임을 알았습니다. 칠 년 동안 무서운 흉년이 들 텐데, 그 무시무시한 재앙으로부터 수백만의 백성들의 생명을 건지게 하시려고 자신을 보내셨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사실에 따라 형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짧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생각의 깊이’입니다. 생각의 깊이가 놀랍습니다.

그가 하는 말을 6-7절에서 계속 보십시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목적, 가족과 백성을 구원하려고 자신을 구원의 선발대처럼 보내셨음을 알았습니다.

아틀란타 공항에 적힌 글입니다. "Every stop is a step forward" ..꽤 오래전인데 마침 저는 개인적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뉴욕의 한 까페에 적힌 글입니다. "WiFi is free, future is free"

물론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던 처음 순간부터 이 모든 것을 깨달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을 때, 그는 절망했을 것입니다. 형님들을 증오하고 세상과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갔을 때, 어느 정도 치유되었던 그의 영혼의 상처가 다시 헤집어졌고,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랜 수수께끼가 풀리는 날이 왔습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나를 애굽으로 보내셨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는 날이 왔습니다.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게 되었을 때, 바로 왕이 그를 총리로 세우던 그 날,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아, 바로 이것이었구나. 수많은 사람들, 우리 가족들을 흉년에서 구원해내도록 하시기 위해 날 보내셨구나. 그리고 미성숙하고, 나밖에 모르던 부끄러운 내 모습을 개조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연단을 시키셨구나....”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수수께끼는 금방 풀리지 않습니다. 좀 기다려야 합니다. 요셉은 십 칠년을 기다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인내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질 때까지, 수수께끼가 풀릴 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리며 묵묵히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게 성도의 모습입니다.

, [세이레 특새]가 한 주 남았습니다. 사실 세이레의 새벽은 부담이 됩니다. 특별히 생활리듬이 새벽시간과 친숙하지 않은 분들에겐 더욱 그럴 것이고, 하루 종일 일터에서의 시간을 생각하면 또 자녀들이 어린 분들에겐 더 더욱이 그럴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새벽기도와 담을 쌓고 사신 분들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 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세이레를 시작하게 되면 이 부담이 ‘거룩한 부담’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은혜의 자리’가 주는 신비 때문입니다. ‘자기의 자리’에서 나와 ‘은혜의 자리’로 나오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자기를 바라보면 시선이 당신에게로 옮겨지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소망이 없음을 속히 깨닫고 비로소 믿을만한 분을 부르게 됩니다. 이때 자기를 포기하게 되는 ‘내려놓음’을 경험하게 되고, 마침내 의미있는 삶에로 전환하게 됩니다.

불평과 원망, 결핍과 혼돈에서 감사와 자족, 기쁨과 감동에로 인생의 코드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듣고, 그것을 찬송과 기도로 고백하는 것은 그저 하나의 순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영혼의 깊은 곳에 주님의 약속을 새기는 시간입니다. 생각의 근육이, 영혼의 내공이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바빠도 은혜의 자리를 놓치면 안 됩니다...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안 되는 것이 ‘은혜없는 인생’의 특징입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늘 절기는 생각보다 빨리 옵니다. 그래서 준비하지 않으면 절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지나치기 쉽습니다. 감사절이지만, 감사는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가던 길을 ‘꼭’ 멈추고 ‘잘’ 생각해야 감사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thank’는 ‘think’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산다고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니 듯, 감사를 깊이 묵상하고 고백할 때 비로소 살아도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 한 해, 어떻게 주님이 인도하셨는지, 어떻게 은혜를 주셨는지, 어떻게 보호하셨는지. 말씀을 통한 기도와 묵상의 공통점은 ‘내려놓음’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때 자신이 보입니다. 비로소 주님이 보입니다. 이번 한 주간... 감사를 미리 준비하십시오. 온 맘과 정성을 다해 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 보십시오.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준비해 보십시오.

찬양하십시다.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너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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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Divine Yes'
설교일 : 2019.10.13
본문말씀 : Genesis 13:1-13
설교자 : Rev. Eung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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