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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4-06-02 (월) 07:08 조회 : 5477
06012014주일설교_성찬.pdf (350.3K), Down : 6, 2014-06-02 07:08:11
설교일 : 2014.06.01.
설교자 : 장찬영 목사
본문말씀 : 고린도전서 11:23~27

고전11:23-34(장찬영목사)                                                  

6.1, 2014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1.

미국 듀크대학에서 총장을 역임했던 제임스 클리브란드(James Cleveland)박사는 그의 나의 13살 성년식을 할 때, 어머니에게서 성찬에 대하여 처음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받은 감동이 수십 년이 지났으나, 늘 새로워 그는 졸업식을 할 때 마다 그의 어머니와 나누었던 성찬에 대한 얘기를 모교에 대한 사랑과 비교하여 말하였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성찬에 참여했던 제임스에게 어머니께 성찬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제임스야,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을 먹고 마시며 나를 잊지 말라고 부탁하셨단다. 제임스야, 나는 주님의 제자란다. 나는 주님을 잊을 수가 없어. 그래서 과거 수십 년간 한 번도 주님의 부탁을 잊지 않고, 반드시 성찬식에서 떡과 포도주를 마시며 주님을 기억했단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부탁한다. 너도 부디 이 성찬의 의미를 잊지말아다오. 그래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환경 속에 있든지 늘 주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바로 성찬은 그 주님이 너와 함께 한다는 증거란다. 이 성찬을 통해 너는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될 거란다."

 

참 훌륭한 어머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아이들이 졸업을 하거나 진급을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 자녀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믿음의 전승, 그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가정과 자녀들에게 이어져 가기를 축복합니다.  

 

, 개혁교회의 전통에 아주 중요한 신학적 용어가 있습니다. 은혜의 방편(方便)’(means of grace)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편' ‘수단이라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 그 은혜를 담아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세 가지 방식을 통해 당신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기 위함입니다. 또 기도와 사역, 헌신 등 모두가 주님께 드리면서 동시에 우리가 그로부터 은혜를 받기 위함이기에, 이 은혜의 방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방편,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Proclaim of the Word)입니다. 이른바 말씀을 통해, 무엇보다도 선포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먹이십니다. 길고 고단한 인생의 순례에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일정하게 매일의 양식이, 또 매 주일마다 주어진다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40년 광야생활에서 주셨던 만나’(our daily bread)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인 것입니다.  

 

말씀의 선포에는 개인의 말씀묵상이 있을 것이고, 나아가 강단에서의 말씀선포, 설교가 있습니다. 설교는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편입니다. ‘설교는 하나님 말씀의 선포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평가하기 전에, 먼저 선포된 말씀을 가슴으로 받는 열린 마음이 선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상관없는 영양실조와 편식에 걸리게 됩니다.  

 

둘째는, '세례'(Baptism)입니다. 이 세례 예식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특별히 유아세례의 경우 더 그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 머리위에 뿌려지는 물방물이 무엇인지,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그 어린 아이는 세례를 통해 이제 자기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선언받고, 하나님의 가족 안에 입양된 것을 확증받게 됩니다. 이 예식이 은혜가 되는 것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선물이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는 이 세례예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 은혜의 감격은 여전합니다. 이제 하나님과 가족, 회중 앞에서 이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선언함으로,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살겠다는 선언이요, 고백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전달되는 세 번째 통로, 방편이 바로 오늘 나누게 될 성만찬’ (Communion)입니다. 우리는 매월 첫 주 마다 성찬 예식을 거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합니다. 이 성찬은 단순히 고정화된 예식이나 엄숙한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은혜가 아니라, 우리의 온몸과 마음, ..의를 통해 경험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이것을 행하기 전에, 먼저... ‘성만찬이 도대체 무엇이며’ ‘성만찬 예식을 거행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말씀을 통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2.

, 먼저 용어에 관한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이를 성만찬(聖晩餐)’ 혹은성찬식(聖餐式)’ 혹은 줄여서 성찬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거룩한 만찬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기독교회는 각자의 전통에 따라 서너 가지 다른 표현을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 개혁교회의 전통에서는 주의 만찬’(Lord's Supper)으로, 성공회에서는 유카리스트’(Eucharist), 로마가톨릭에서는 미사’(Mass)라고 부릅니다. 이것들을 묶어 공통적으로 부른다면, ‘Holy Communion이라 합니다.

 

문자적인 뜻은 거룩한 교제와 교통입니다. 사도신경에....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과 바로 이 이 성찬이 이루어지고 있다 라는 말입니다.

 

,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 사이에,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거룩한 연대감이 형성되는 예식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런 깊고 거룩한 연대가 이루어지게 되는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자녀들 사이의 모든 차별과 구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한 가족으로 묶어주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신비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기념’(memory)하고회상’(remember)하는 예식이 성찬인 것입니다... ,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예수님과의 친밀감’(intimacy)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주님의 만찬’, ‘Holy Communion’이라 부르는 성만찬에 참예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지금껏 성찬예식을 시행하는 것일까? 아무리 보아도 잘게 자른 빵 조각들과 아주 적은 양의 포도주 정도인데 왜 우리는 이것을 만찬’(晩餐/supper)이라고 부를까요? 그것도 왜 거룩한 만찬성만찬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사실 피상적으로 보면 차려진 것은 왜소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빵조각과 포도주가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곳에 초라하게 차려진 식탁을... 3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하늘의 눈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이 한 줌의 작은 떡과 포도주는 광야의 고단한 길을 걸어가는 외로운 여행자에게 새로운 기력’(氣力)을 공급해주는 힘이며,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그 나그네에게 저 멀리 뵈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목적지를 뚜렷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력’(視力)을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광야의 교회는 전통적으로 광야와 사막을 지나는 나그네와 대상(caravan)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아무 조건없이 떡과 포도주를 제공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찬식은 순례의 길 위에 있는 하늘 나그네들에게 기력과 시력, 동시에 참 쉼을  제공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찬예식이 엄숙하고 슬픈 분위기로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이 로마 군인들에 사로잡히게 된 그 날 밤에, 그의 제자들에게 비애에 찬 어조로 말씀하시고 있는 광경을 연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에 대한 한국교회의 오랜 풍습은 이런 슬픈 대담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성찬을 할 때마다 예수님의 불행한 운명을 슬퍼하고 비통해야하는 것일까요?

 

물론 성찬은 주님의 고난받으심과 죽으심에 깊이 연결되어 있지만, 이를 행할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고난받으심과 죽으심이 아니라, ‘고난과 죽음을 이기고 사신 부활하신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성찬의 궁극적 의미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성찬을 통해 우리가 가슴을 치고 울어야 하는 대상은 예수님이 아니라, 아무 소망이 없는 나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삶에 지쳐 그 고난과 죽으심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는 나와 나의 자녀들이 바로 그 대상인 것입니다.

 

, 성찬은 이런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늘 원수의 목전에서 부끄럼을 당하는 우리를 위해, 이제는 그 원수의 눈 앞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로의 초청인 것입니다.

23: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You prepare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그렇기에 성찬식을 잘 이해하려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성찬의 분위기를 나름 가장 잘 표현한 영화가 바로 ‘passion'(수난)이라는 영화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엄숙하고 슬픈 모습이 아닌, 제자들을 향해 무언가 전하시고자 하는 가장 따뜻하게 아름답게 연출된 장면이 바로 이 성찬의 장면인 것입니다.

3.

, 그럼 성찬에 담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몇 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1)첫째로, 성만찬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로서 하나님께 세상 속에서의 감사를 고백하는 예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만찬 예식은 위태로운 세상 안에서’ ‘감사의 공동식사를 상징하는 예식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무서운 세상인지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사방에 위험과 위협이 숨어있고 언제 어디서라도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 대지 밑에는 무시무시한 마그마가 끓어오르고 있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같은 세상에 당신의 제자들을 보내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십시오.

10:3 “갈찌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바로 이런 위험천만한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여 감사의 공동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마틴 루터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자유’(Freedom of Christian)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런 위험천만한 놀이를 하게 만든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무엇에 이끌려 죽음과 위험이 편만한 이 땅 한 가운데서 마냥 즐거워하는 감사의 공동식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압니다. 그들은 믿습니다. 그들의 모든 것이 - 삶과 죽음, 영혼과 육체 - 그들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실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을 거역한 세상의 멸시와 조롱 속에서도 게의치 않고 온전히 방주를 지어가는 노아와 그의 가정을, 그리고 그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 유일한 평화의 시간, ‘감사의 식탁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 식탁에서 어떤 담화가 오고 갔을까요?.... 이것이 바로 예수님 잡히시기 전 날, 목요일 밤에 제자들과 나누었던 식탁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노아와 가족들은 자신들의 생명이 창조주시며 마침내 그들을 구원해 주실 구원자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위태로운 세상 안에서 진정 감사의 공동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과 파멸의 대홍수 한 복판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정말 멋진 성찬식이 방주 안에서 거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찬의 초청인 것입니다

 

2)두 번째, 성찬식은 우리를 보게 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찬예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기 원한다면 잡히시던 날 그 밤에라는 긴장감 넘치는 문구를 곱씹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로마 군인들에 체포되는 그 밤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Passover meal)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자신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알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유대인들로서 예수님은 어떤 생각으로, 잡히시기 전 날, 이 유월절 식사를 기념하고 있었을까요? 유월절 식사는 외부로부터의 심각한 위험 속, 즉 잡히시기 전 날 속에서 진행되었던 식사였습니다. 바로의 폭정과 압제, 비인간적인 착취와 고단한 노예생활을 종지부 찍는, 즉 이런 위험들에서 해방과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을 기념하는 예식이 바로 유월절 식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해방의 유월절 식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제자들 안에는 주님의 죽으심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한 위험한 생각과 일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당신의 죽으심을 말씀하는 주님의 얘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제자들 안에 있었던 팽팽한 긴장감들, 뿌리 깊은 불신과 의심들, 가시 돋친 말들과 안절부절못함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의 성찬이 진행됩니다. “이것은 나의 몸이다. 이것은 나의 피다그런데 그 당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받아든 최초의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열 두 제자를 대표하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한 비열한 인간이었고, 장자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한 치사한 인간이었고, 가장 많이 사랑받았던 요한은 벌거벗은 체로 도망갔던 철부지였고, 다른 제자들 역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한 비열한 인간들이었습니다.

 

, 우리가 성만찬 테이블에 나올 때 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불신과 배신, 비열과 변덕의 마음의 나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찬 테이블로 나올 때마다, 그 비열하고 속물근성으로 가득한 내 내면을. 이런 나에게 자기 생명을 기꺼이 바쳐 차려주신 은혜의 식탁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에게 자기의 고귀한 생명을 주시는 그 예수님의 식탁이 바로 성찬의 초청인 것입니다

 

3)셋째로, 성찬은 받아주는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성찬식에서 예수님은 떡을 가지시고, 감사하시고, 찢으시고,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떡을 가지시고 먼저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그가 지금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는 빵과 포도주는 창조의 선물들이기 때문입니다.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은 우리의 노력과 애씀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전도자의 고백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2:24) , 양식과 음료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박한 선물’(simple gift)입니다. 그 선물을 성찬식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나눠주고 계신 것입니다. 나눠 주시되 모두에게 차별 없이 나눠주심으로써 그들 모두가 동일하게 사랑받는 하나라는 사실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우리가 서로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일은 언제나 함께 가야 합니다. 성만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시는 것처럼, 우리 역시 다른 동료 크리스천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펼쳐진 손과 팔을 기억하시고 우리 역시 이런 저런 일로 우리와 간격이 생긴 동료 크리스천과 교우들을 향해 아무런 조건 없이 손과 팔을 내밀어야 합니다. .

간혹 성찬을 받을 때... 우리는 관계가 껄끄러운 편하지 않은 그 사람을 피해 다른 사람에게 가서 분급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그럴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그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찬은 그 자체로 화해와 용서가 일어나는 곳인데, 스스로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성찬 자체를 무시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4)넷째로, 성찬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식입니다. 최초의 성만찬에서 예수님은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것은 나의 몸이요 나의 피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찬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자녀들 가운데 현존하시고 임재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바깥으로부터의 위험뿐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위험에 직면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과 임재보다 더 큰 위로와 힘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앙생활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들은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의 때일 것입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증표보다는, 그의 오랜 침묵과 부재의 그림자가 더욱 짓게 드리운 현실입니다. 개인의 경우뿐 아니라 인류 역사와 피조세계를 둘러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국 땅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필 이번에 죽은 아이들의 상당수가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는, 즉 믿음의 가정에서 일어났다는 기사를 보면서.... ,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던 것인가? 라는 하나님의 부재와 외면에 대한 신앙적 고뇌를 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인생의 연약함 속에서, 성찬의 식탁은 우리에게 주님을 다시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의 때가 이어지는 성찬의 은혜를 통하여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이신 그 사랑을 비로소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일어나 주님의 성찬의 테이블로 나아와 그의 떡과 그의 잔을 들면서 영원한 약속과 영원한 양식을 붙들게 됩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의 임재와 현존을 경험하고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나의 몸이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이것을 행할 때마 다 나를 기념하라”....이제 여러분을 성찬의 테이블로 초청합니다.

 

성찬 후, 마지막 찬양입니다. 나를 버리고 주의 길을 가는 것...”(내려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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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e Two Boats
설교일 : 2019.11.10
본문말씀 : Luke 5:1-8
설교자 : Rev. Eung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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